과거 ‘여성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신임 외교부 차관보가 해당 사실을 보도했던 기자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전에 나섰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정아무개 차관보는 지난 8월 선임됐다. 차관보는 외교부의 이른바 서열 4위에 해당하는 자리로 장관과 2명의 차관 다음으로 직급이 높다.

2017년 외교부 국장이었던 정 차관보는 기자들과 저녁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외교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정 국장은 “여자는 열등하다”며 “나 때는 여자들이 공부도 못해서 학교에 있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역전이 된 거냐”고 했다. 또 “5년만 지나면 (외교부 내) 과장 자리도 자연스럽게 다 여자가 할 건데 지금 뭘 더 해줘야 하느냐”고도 말했다.

▲지난 7월31일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지난 7월31일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정 국장은 감사관실에 문제 발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과거에는 여성이 뒤처져 있었지만 현재는 모든 교육 과정에서 월등히 우수한 상황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었지 여성 차별과 비하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주무국장이었던 정 국장은 같은 자리에서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이용수씨를 두고도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감사 보고서를 보면 정 당시 국장은 “우리 똑똑한 이용수 할머니, 또 맨날 날 기억해서 빈소 갈 때마다 장관한테 저 양반 왜 또 데리고 왔냐고 하지”라며 “왜 아직 안 잘랐냐고 하지. 아주 고역이야”라고 했다. 보고서는 정 당시 국장이 이용수 운동가를 두고 ‘쓸데 없이 똑똑한 어르신, 날 괴롭게 하는 사람’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정 국장은 학벌 차별 발언도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하 직원에 대해 언급하며 “민사고(민족사관고등학교)에 고대(고려대) 나온 애가 있는 거야?” “아니 고대 가려고 민사고를 간 거야?”라고 말했다고 감사 보고서는 썼다. 정 국장은 또 서울대를 졸업한 한 직원에 대해 “얜 또 서울대 나왔는데 일을 너무 못해. 일 못한다고 전임자가 말을 해주더라고. 그래서 나는 더 일부러 ‘넌 왜 서울대 나왔는데 일을 못하냐’고 막 해줬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2017년 9월18일 세계일보 1면 머리기사
▲ 2017년 9월18일 세계일보 1면 머리기사

보고서는 정 국장이 감사관실 조사에서 ‘민사고’, ‘고대’ 등 학벌 관련 발언은 없었다고 부인했으나 문답 조사 때 ‘민사고 나왔는데 어떻게 고대를 갔지’ 등 얘기를 한 적은 있었다고 했다가 최종 수정할 때 이들 진술을 모두 삭제했다고 밝혔다. 정 국장 발언은 세계일보시사인, 한겨레21 등의 보도로 알려졌다. JTBC는 최근 그의 차관보 내정 사실을 알리며 이를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 

정 차관보는 당시 외교부 감사를 거쳐 감봉 1개월 징계를 받았다. 그가 맥락상 성차별 의도가 아니라고 밝혔고, 외교부 직원들 사이에서 정 국장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구명 운동을 벌이며 경징계로 일단락됐다. 이후 그는 벤쿠버 총영사와 주스웨덴 대사 등을 지내다 차관보에 내정됐다.

▲2017년 당시 한겨레21 보도화면 갈무리
▲2017년 당시 한겨레21 보도화면 갈무리
▲ 2017년 당시 시사인 보도화면 갈무리
▲ 2017년 당시 시사인 보도화면 갈무리

정 차관보는 문제의 발언을 첫 보도한 기자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가 자진 취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는 문제 발언 나흘 뒤인 2017년 9월18일 <외교부 국장 “여자는 열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기사에 보도했다. 정 국장 발언을 현장에서 들었던 기자의 기사다. 보도 이후 물의가 일자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정 차관보는 2018년 1월 세계일보와 기자를 상대로 2000만 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피고들이 원고의 발언을 허위로 기재했거나 일부 발언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전체 발언 취지를 왜곡하는 등으로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다. 정 차관보는 당시 “원고는 동석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일부 농담이 순간 오해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자 그 말을 즉시 철회한 사실이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차관보는 같은 해 6월 스스로 소를 취하했다.

외교부 감사로 자신의 문제 발언이 사실로 확인됐지만 이를 첫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전을 시도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외교부 측은 6일 “소송 제기와 취하는 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라고 밝혔다. 또 보복성 소송 아니냐는 지적에는 “관련 보도가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면 발언을 보도한 다른 언론사에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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