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울신문, EBN, 이코노미스트, 일간스포츠, 전자신문, KBC광주방송, 한국농어촌방송.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매각 됐거나 매각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언론사들이다. 언론사도 시장에 속해 있는 만큼 매각·인수되는 일이 이상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언론사 인수가 주목받는 이유가 있다. 사회 ‘공기’(公器) 라는 정체성 때문이다.

언론사 공적 역할에 기대려는 자본 권력이 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인수 이후 몇몇 언론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 언론사 기자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권력 감시가 책무인 기자임에도 자본 권력을 지키기 위한 종업원 역할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반면 자본 권력의 매체 인수에 마냥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언론 시장이 나날이 위축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거대 자본 등장은 기댈 언덕이 생기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미디어 큰손’ 된 호반, 인수 이후 우려가 현실로

김상열 회장이 이끄는 호반건설은 그야말로 ‘미디어 큰손’이 됐다. 지속적인 인수합병(M&A)으로 지난해 재계 순위 37위까지 오른 호반건설은 종합일간지 서울신문을 비롯해 전자신문, EBN 등을 인수하며 언론계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호반건설이 인수한 매체들은 새로운 주주가 들어선 이후 혼란을 겪고 있다. 인수 과정에서 나타났던 호반건설 비판 기사 삭제 사태와 그 이후 벌어진 인사 발령 조치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지난 1월 호반건설 비판 보도 무더기 삭제 조치를 두고 6개 기수에 걸쳐 규탄 성명을 낸 바 있다. 이후 지난달 31일 성명을 주도했던 기자 2명이 속보 중심 부서인 온라인뉴스부로 발령이 났다. 이에 사내에서도 보복성 조치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서울신문 측은 이와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나오는 인사였다.

전자신문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청탁 논란’에 휩싸였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월 전자신문 요청에 따라 전자신문 간부들과 오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는 김 회장의 계열사 은폐 혐의 심의가 목전이었던 시기다. 전자신문 측은 이 자리에 김 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해명을 내놨지만 청탁 차원의 만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호반건설이 최대 주주인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그리고 EBN은 김 회장과 관련한 사건에 있어서도 일제히 침묵해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17일 공정위가 김 회장을 친족 등 계열사 은폐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고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주요 매체라고 할 수 있는 곳들은 연이어 보도를 이어갔지만 당시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EBN은 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 회장은 언론사 대주주가 갖는 힘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매체로 네이버·카카오와 콘텐츠 제휴(CP)를 맺고 있는 곳, 경제지 CP사 등에 대한 인수 문도 두드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매일신문 로고. 사진=매일신문 제공.
▲ 매일신문 로고. 사진=매일신문 제공.

대구의 자존심 매일신문 매각 두고 나오는 시각차

대구 지역 주요 종합일간지로는 매일신문이 늘 손에 꼽힌다. CP사에도 제휴가 돼 있어 최근 온라인상에서 꽤 주목받고 있다. 매일신문은 CP사 제휴를 통과하면서 디지털 대응 조직을 대거 꾸리기도 했다. 과도한 ‘클릭 경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최근 각종 사안 속보전에서 높은 대응력을 보인다는 것이 업계 평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매일신문이 운송업체 코리아와이드로 매각돼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선 지난 1946년 창간 이후 1950년 천주교대구대교구에 인수돼 지켜온 자존심을 버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사내 구성원들과 협의가 없었던 과정에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언론노조(언론노조) 매일신문지부는 지난달 18일 성명서를 통해 “상식적으로 제대로 된 매각이라면 적어도 조직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재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한 뒤 조직원들의 삶과 신문사 미래를 담보해줄 수 있는 모기업을 찾는 것이 적절한 수순”이라며 “언론 사주로서 지켜야 할 책무와 함께해 온 조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저버린 천주교대구대교구에 통렬한 반성과 사죄를 촉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이 같은 언론노조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있다. 처우 문제로 오랜 기간 속앓이해오던 기자들 입장에선 오히려 좋은 기회 아니냐는 것. 한 매일신문 기자는 “정부 광고비 집행에서도 늘 상위권에 들 정도로 매일신문 인지도는 높다”며 “그동안 만족도가 높지 않았던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번 계기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내부에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와 일간스포츠 로고. 사진=이코노미스트·일간스포츠 홈페이지
▲이코노미스트와 일간스포츠 로고. 사진=이코노미스트·일간스포츠 홈페이지

BHC 이어 KG와 매각 논의되는 중앙일보S 매체들

중앙그룹 계열사 중앙일보S 소속 매체 이코노미스트와 일간스포츠 매각 소식을 두고도 언론계가 시끌벅적하다. 특히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부터 주간지에서 벗어나 데일리 온라인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라 이번 매각에 대해 의문이 더욱 제기됐다. 일간스포츠의 경우 중앙그룹의 주력 사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골든디스크어워즈와 백상예술대상 사업을 전담하고 있어 해당 사업들이 어떻게 되는지 역시 이목이 쏠렸다.

첫 매각 소식은 국내 치킨 프렌차이즈 BHC 그룹이 인수에 나섰다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부 반발에 직면했다. BHC가 언론사 운영 경험이 없는 만큼 일종의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인수전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중앙일보S에 없던 노동조합까지 설립되면서 BHC 그룹은 인수에 발을 뺐다. 그러나 BHC 그룹이 인수를 철회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경제지 이데일리를 보유하고 있는 KG그룹의 인수전 참여 소식이 알려졌다. 중앙일보S 내부는 또다시 동요되기 시작했다.

한 중앙일보S 소속 기자는 “언론사 매각 과정에서 기자들 의견이 무시되는 일을 많이 봐왔지만 우리가 당사자가 됐다”며 “매각은 가능한 시나리오이지만 우리 의견은 왜 반영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방적 설명회와 통보만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언론사 운영 경험이 있는 KG그룹 등장에 반색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그룹 차원에서 이코노미스트와 일간스포츠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중앙일보S에 남아도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중앙일보S 소속 기자는 “우리도 결국 월급쟁이고 직장인이다. 자본 권력에 넘어간다면 주주에 대한 비판 기사는 못 쓰겠지만 오히려 그 자본을 등에 업고 다른 권력에 대한 감시는 더욱 잘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며 “언론 시장 자체가 침체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가 속한 매체는 매물이 돼 있고, 그렇다면 보다 탄탄한 곳에 매각이 되는 것을 무조건 비판해선 안 될 일”이라고 바라봤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12일 통화에서 “언론사도 기업인 만큼 생존을 위해 자본 투자는 필요하다”면서도 “그러나 자본이 저널리즘 원칙인 언론의 독립성과 편집권을 저해할 것이 예상되는 딜레마적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위원장은 “저널리즘 원칙이 흔들리면 장기적으로 생존이나 경영에 위협을 주게 된다.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자본의 매체 인수 과정에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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