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국방부 부지에 이전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국방부 내에선 이미 이사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같이 갑작스런 추진 배경을 두고 언뜻 황당한 내용의 뒷얘기가 퍼졌다. 윤 당선자 측이 최근 국방부 기자의 조언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지라시’다.

17일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이전 아이디어는 국방부 출입기자 아이디어”라는 전언이 ‘받은 글’(지라시) 형태로 SNS에 확산돼 언론계 주목을 받았다. 이 지라시에 따르면, 윤 당선자 측근인 김용현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지난 11일 국방부 출입 현직 기자와 만나 ‘집무실을 옮겨야 하는데 어디가 좋겠느냐’고 물었고, A기자가 ‘용산 국방부로 들어가면 어떻겠느냐’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김 전 본부장은 윤 당선자의 충암고 1년 선배로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 전 본부장이 이에 ‘굿 아이디어’라고 답했고, A기자에게 먼저 ‘기사로 분위기를 잡아주면 감사하겠다’고 부탁했다고 지라시는 밝히고 있다. 공교롭게 이후 ‘청와대는 국방부로 가야···"'용의 땅’ 대통령 시대"’라는 A기자의 기사가 나왔다. 

그리고 국민의힘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 관계자 발로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부지로 이전할 것을 유력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보도에 따르면 TF 팀장에 내정된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김용현 전 본부장은 최근 국방부 일대를 둘러봤고, 국방부와 행정안전부 등 정부 관계자 10여명도 국방부를 찾아 경호 동선을 파악했다.

A기자는 기자칼럼에서 “소통을 중시하는 윤 당선인에게 어울리는 제3의 청와대 후보지는 서울 용산 국방부 부지”라며 “국방부와 붙어 있는 용산 미군기지는 용산 공원으로 변신하고 있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사진=국방일보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사진=국방일보

A기자는 국방부는 3군 본부가 있는 충남 계룡대로 옮기고, 합참은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남태령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있는 용산은 도성 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가 한강변을 향해 꾸불꾸불하게 지나가는 모양이 마치 용이 몸을 틀어 움직이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며 “청와대 이전은 ‘용의 땅’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는 의미”라고 했다.

‘지라시’가 사실일까. 그렇다면 윤 당선자 측과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TF)’가 집무실을 이전할 부지를 종합적이고 면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고 한 기자의 제안에 따라 며칠 새 정했다는 황당한 얘기가 된다.

국방부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A기자의 ‘국방부 이전 제안’설을 어느 정도 사실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증언에 따르면 A기자가 직접 국방부 기자실에서 동료 기자들에게 집무실 이전 관련된 이야기를 거론했다고 한다. 종합하면 A기자가 김 전 본부장을 만나서 국방부로 집무실을 이전하는 안에 대해 조언했다는 것을 말했다는 걸 들었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A기자는 통화에서 지라시 내용을 부인했다. A기자는 지난 11일에 김 전 본부장을 만난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11일에 만난 적도 없다”며 “찌라시의 99%가 왜곡”이라고 했다. 다만 근래 김 전 본부장과 만나 집무실 광화문 이전 관련 이야기를 나눈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김용현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016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긴급 현안보고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김용현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016년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회에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긴급 현안보고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그는 관련 질문에 “국방부 부지로 이전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예비역 장성 뿐 아니라 현역 장성과 영관장교들에게도 얘기하고 토의해왔다”며 “그래서 (답변할 때) 김용현 장군 한 사람을 특정해 얘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선 전에도 여야 예비역 장군들에게 쓴소리를 많이 해왔다”며 “나는 국방부와 합참 이전을 대선 공약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써왔다”고 했다.

A기자가 김 본부장의 부탁을 받고 칼럼을 썼다는 지라시 내용에는 “어떤 기자가 부탁을 받아서 기사를 쓰느냐”며 “(해당 칼럼은) 꾸준히 주장해왔던 바에 업그레이드 된 정도의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자고 한 이유는 간단하다. 불필요하게 국력 소모하기에, 되도 않는 광화문(으로 집무실 이전) 가지고 떠들기에 ‘시야를 바꾸면 용산이 보이는데’(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A기자는 “그런데 (지라시는) 하루 아침에 느닷없이 김용현 장군을 만나 ‘이렇게 하자’고 의기투합해 한(기사를 쓴) 것처럼 악의적인 (내용이다)”라고 했다.

A기자는 기자실에서 집무실 국방부 이전과 관련해 동료기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A기자는 당시 동료기자들에게 한 말이 무엇인지 묻자 “청와대 이전 문제에 대해 내가 여러 차례 주장을 했는데 ‘야 이렇게 되네, 이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본부장은 A기자 만남 여부와 국방부 집무실 이전 배경을 묻기 위한 전화와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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