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기자들이 ‘대주주 호반그룹 관련 보도 무더기 삭제’ 사태에 26일 황수정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기자총회를 열었다. 다수 기자들은 황 국장에게 기사 삭제가 결정된 정확한 경위와 편집권 침해 사태에 대해 견해를 물었다. 복수의 기자는 기사 복원과 독자 사과도 요구했다.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는 이날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편집국에서 소속 기자 50여명과 황 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호반 대해부 보도’ 삭제 관련 기자총회를 열었다. 20여명의 기자가 발언을 청하며 4시간 가까이 질문과 답변, 대안 제시가 이어졌다.

황 국장은 총회에 참석한 다수 기자들 요구에 기사가 삭제된 경위를 설명했다. 황 국장 답변을 종합하면, 경영진은 14일 곽태헌 사장 직권으로 ‘호반 대해부’ 보도 일체를 삭제하겠다고 통보했고, 황 국장은 ‘신중해야 한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이틀 뒤인 16일 낮 이른바 ‘6인 협의체(사장과 편집국장, 사주조합장 대행, 호반대해부 보도 TF팀장, 노조위원장, 제작 담당 상무)’가 10분 간 회의 끝에 호반 기사 삭제를 결정했다. 황 국장은 같은 날 부장단 회의에서 이 사실을 통보했다. 황 국장은 “개인적으로 힘들지만 솔직하게 얘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서울 중구 서울신문 사옥 프레스센터.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 중구 서울신문 사옥 프레스센터. 사진=김예리 기자

황 국장은 앞서 기사 삭제가 6인 협의체의 의견 일치로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이 자리에선 편집국장으로 결정에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는 취지로 여러 차례 말했다. 지난해 전 경영진의 기사 삭제 결정을 비판하는 한편 지난 17일 기사 삭제는 감싸는 발언으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기자가 국장 권한으로 왜 끝까지 삭제에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황 국장은 “사장 직권으로 (결정) 내리기로 한 게 제동 걸린 상태였고 그러다 보니 만들어진게 이 협의체였다. 결정이 돼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다른 기자의 “삭제 건과 관련 여전히 편집권과 무관하다 보느냐”는 질문엔 “(삭제 결정이) 전격적으로 진행됐다. 편집국장으로서 적극 개입하거나 의견을 피력할 수 없었다”며 “편집권 문제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다른 기자는 “투표로 당선되셨고 국장을 하고 계시다. 그에 따른 무게감이 엄청나지 않나. 어떻게 용인하시나”라고 되물었다. 이에 황 국장은 “그래서 16일 (기사가) 내려진 뒤 내가 맞아야 하는 것들을 맞고 있던 것 아닌가”라며 “나도 말하고 싶었던 부분을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2020년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 편집분회가 곽병찬 고문의 '2차가해' 논란 칼럼을 주제로 기자총회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기협 서울신문지회
▲지난 2020년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 편집분회가 곽병찬 고문의 '2차가해' 논란 칼럼을 주제로 기자총회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기협 서울신문지회

황 국장은 지난해 6인 협의체가 ‘우리사주조합의 1대 주주 등극’을 전제로 호반 기사 삭제를 결정했던 데에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황 국장은 “어떻게 기사가 목적의 수단이 되느냐”며 “지난해 저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기사를 거래 수단에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황 국장 재임 시 기사 삭제를 결정한 것에 대한 지적엔 “(지난해) 기사가 거래 수단 돼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는 건 생명을 잃은 것”이라며 “내 (임기 때 출고한) 기사 내리면 나는 편집국장 안한다고 하겠다”고 했다.

복수의 기자는 이 같은 황 국장 주장에 “‘협상안이 (지난해) 완결됐기 때문에 (올해) 삭제 요구를 따라줘야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잘못된 결정이고 기사의 생명력을 잃었단 것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웠다는 논리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지적하기도 했다.

황 국장은 총회 도중에 “나는 편집국장으로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다 했다”며 “곽 사장 직권으로 내리겠다고 한 거 만류한 거 이상으로 내가 뭘 해야 했을까”, “찬반 물어서 공론화했어야 하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다수 기자 “기사 복원 뒤 사과” 요구, 국장 “내리는 건 더 큰 혼란”


3명 이상의 기자가 황 국장에게 기사를 되살릴 것을 요구했다. 한 기자는 “정말 무겁게 받아들인다면 원상복구시키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직을 지금이라도 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기자도 “기사 복구에 (기자들) 찬성이 높게 나오면 국장도 복구 요구하실 건가”라며 “김 회장은 진실성이 밝혀지면 회장 직권으로 기사 게재하겠다고 하는데 국장에게 직권이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국장은 “내려진 기사를 올리는 건 더 큰 혼란”이라며 “이 문제를 다시 찬반으로 올리고 내리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부분으로 제 직을 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황 국장은 김 회장 입장문에 대해 “경영진 통해서 항의를 전달했다”고도 했다.

여러 기자는 독자들에 사태를 설명하고 사과문을 내자고도 밝혔다. 한 기자는 “더 급한 건 독자들이다. 독자들에게 왜 기사가 삭제됐는지 설명해야 한다”며 “심지어 쿠키뉴스는 이 기사가 누가 데스크를 봤는지 명기를 하고, 경향신문은 SPC 기사를 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사장과 편집국장이 옷을 벗었다. 그 정도로 기사 삭제를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 관련 기사 : 경향신문 협찬금 대가 기업 기사 삭제 전말 ]

▲서울신문 사옥 간판.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신문 사옥 간판. 사진=김예리 기자

기사 삭제 결정을 옹호하는 발언도 한 차례 나왔다. 한 부장급 데스크는 “(구성원들이) 위로금을 왜 받았을까”라며 “그 (조건) 중 하나가 기사 삭제가 된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해당 부장은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호반이 공식적으로 사주다”라며 “조선일보가 (사주) 방상훈-방정오 까는 기사 쓰던가? 매일경제가 장대환 까는거 쓰나?”라고 되물었다.

이에 다른 기자는 “(호반의 서울신문 인수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기사 삭제에 대한 언급도 나온 적이 없다. 위로금도 ‘위로금’이라 말은 하지만, 주식에 대해 가치를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황 국장은 총회 끝무렵 “이런 자리가 필요하다. 힘든 자리를 가지면 밖에서 듣는 저 사람들이 경계할 테니 필요한 자리”라면서도 “그렇지만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이 편집국의 모든 목소리는 아니다. 좋은 장치들이 있으면 여러분이 논의해서 달라”고 마무리 발언을 했다. 기자들은 황 국장이 자리를 뜬 뒤 요구안을 담을 기자협회 성명 내용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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