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기자들이 ‘대주주 호반그룹 비판보도 무더기 삭제’ 사태와 관련해 기자총회를 진행한 끝에 독자 사과와 편집권 보호를 위한 외부협의체 마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에겐 기사 삭제를 주도한 ‘6인 협의체’ 근거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삭제된 기사를 복원하라는 요구는 성명에 담기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는 27일 성명을 내고 “(대주주 관련 기사 삭제는) 다시 일어나선 안 되는 중대하고도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며 “독자들에게 경위를 분명히 밝히고 사과하는 책임감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기자들은 지난 26일 저녁 황수정 편집국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태에 대한 기자총회를 진행한 끝에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서울신문지회는 성명에서 “이 사안을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 등 일부가 밀실에서 졸속으로 결정하고, 더구나 문제가 공론화된 뒤에도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감있게 설명하지도 않는 행태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사안은 서울신문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신뢰를 저버린 것인만큼, 조금이라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서울신문과 호반건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지회는 재발 방지책으로 편집권을 보호할 ‘독립적 협의체’ 구성을 단체협약에 명시하도록 요구했다. 지회는 “앞으로도 우리는 편집권이 사주의 입김에 좌지우지되거나 기사가 거래 수단으로 전락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며 “편집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위해 필요하다면 외부 인사까지 포함하는 독립적인 협의체를 구성하는 사항을 단체협약 등에 명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지회는 “일방적으로 삭제했던 기사를 원상복구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분출”했다면서도 “전체 요구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자칫 서울신문 구성원들끼리 상처주고 상처입는 갈등과 분열을 되풀이하면 안된다는 충정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만 대충 수습하고 넘어가자’ 하는 얄팍한 속내로 우리를 시험하려 들지 말 것을 경고한다”고 했다.

지회는 곽태헌 사장을 향해선 “삭제 과정에서 규정에도 없는 ‘6인 협의체’를 통해 해당 기사 삭제를 결정한 일 역시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한다”며 “발언에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6인 협의체의 근거에 대한 충실한 설명을 요구한다”고 했다.

앞서 곽 사장은 호반 기사 삭제를 규탄하는 기자들의 기수별 성명이 이어지자 사내게시판에 기사 삭제를 옹호하는 글을 올리고 기자들을 향해 “경고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밝혔다. 지회는 이를 가리켜 “기자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억압하는 것으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매우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며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했다.

지회는 “경영진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기자협회나 언론노조는 물론 언론계에서 서울신문을 주시하고 있다”며 “현장 기자들이 취재를 위한 과정인 ‘정보보고’조차 앞으로는 사주를 위한 심기경호에 이용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이유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이들은 모두 ‘기자’였다”며 “존경받는 선배로 남고 싶은가. 두 번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서울신문은 호반그룹을 비판했던 수년 전 자사 기획보도 50여건을 호반이 최대주주가 된 이후인 지난 16일 일괄 삭제했다. 이 같은 삭제는 호반 측이 요구해왔던 사항으로, 편집국 기자들을 우회해 곽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을 비롯한 ‘6인 협의체’에서 결정됐다. 이에 대주주 입김에 의한 편집권 침해라는 비판이 나왔고 서울신문 기자 40여명은 기수별 규탄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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