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와 산업을 분리하면 공공성과 산업성, 두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이 대선 정책과제로 미산분리(미디어 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제시하면서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노조는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노조 20대 대선 미디어 정책 연속 토론회,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 : 거대 자본의 성장과 노동의 파편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위축되는 공공성 영역에는 규제를, 성장하는 미디어 자본에는 지원과 방임을 처방한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신문과 방송뿐 아니라 미디어 정책 전반에 대한 정책 방향조차 설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노조 20대 대선 미디어 정책 연속 토론회,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 : 거대 자본의 성장과 노동의 파편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이 13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노조 20대 대선 미디어 정책 연속 토론회,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 진단 : 거대 자본의 성장과 노동의 파편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진단: 공공성 위축·부속품화·글로벌 미디어에 포위

김동원 실장은 미산분리 정책 방안 설명에 앞서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미디어 시장 지형도를 공개했다.

그는 2000년 미디어 시장 지형도에 대해 “2000년 당시 특징은 30대 대규모 기업 집단 중 미디어 부문에 진출한 곳은 5개사(SK, LG, 삼성, 영풍, CJ, 동양그룹)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방송 콘텐츠 분야로 사업을 넓힌 곳은 CJ와 동양그룹뿐”이라며 “통신 대기업 3사뿐 아니라 공영방송인 KBS, MBC와 민간자본인 태영, 조선, 동아, 중앙, 한국일보와 공사인 KOBACO가 주요 행위자였다”고 설명했다.

▲2000년 미디어 기업집단의 매출액 분포. 사진=언론노조 토론회 자료집.
▲2000년 미디어 기업집단의 매출액 분포. 사진=언론노조 토론회 자료집.

김동원 실장은 “2020년에 이르러 자산 5조 원 이상 71개 기업 집단 중 25개가 진출할 만큼 성장한 시장이 됐다”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유무선통신 대기업 자본과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자본의 팽창, 그리고 글로벌 미디어 자본의 진출”이라고 말했다.

2020년 지형도에선 통신, 포털, 게임 기업, 글로벌 OTT 등의 사업자들의 비중이 크다.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의 경우 국내 매출액을 산정하기 힘들지만, 국내 시장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추정치를 반영했다.

김동원 실장은 “SKT와 LGU+의 매출액 규모는 KT와 경쟁할 만큼 커졌다. 전형적인 플랫폼 자본인 카카오와 네이버가 거대 자본으로 등장했고, CJ는 확실한 콘텐츠 자본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했다.

▲2020년 미디어 기업집단의 매출액 분포. 사진=언론노조 토론회 자료집.
▲2020년 미디어 기업집단의 매출액 분포. 사진=언론노조 토론회 자료집.

그러면서 김동원 실장은 “통신 대기업 자본은 LTE와 5G의 출시 이후 인공지능 스피커, 홈서비스 등 IOT 서비스 판매에 유료방송(IPTV)을 활용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등 글로벌 미디어 자본의 거실 TV 점령”이라고 했다.

즉, 20년 동안의 미디어 시장 변화로 인해 공공성을 갖춘 미디어가 위축되고, 미디어를 부속품화한 기업 중심 미디어, 그리고 글로벌 미디어의 도약을 확인할 수 있다.

대안: 미디어 계열분리 통해 독립성 확보 및 투자 유도

미디어 업계는 산업적 측면의 대안으로 자산 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사 지분을 10% 이상 초과 소유할 수 없는 방송법의 총액 제한 규제 완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언론노조는 총액 제한을 완화하는 것은 공공성은 물론 산업성에도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언론노조의 미산분리 정책은 이 같은 고민의 결과다.

김동원 실장은 “대기업 집단 내 종속된 지위의 신문과 방송 사업이 자산총액 중심의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거나 투자와 고용을 늘릴 ‘선한 자본’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며 “글로벌 미디어 자본과의 경쟁을 목표로 한다면 자산총액이 아니라 자본 성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기업 집단 내 종속된 사업 부문이 아니라 계열 분리를 통한 독립된 자본이 구성될 때 투자 집중과 장기 전략이 구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산분리가 현실화되면 SK그룹의 경우 통신, 네트워크 부문을 제외한 PP, SO, IPTV 등 미디어 부문을 추려내 별개의 독립 자본으로 구성하게 된다. 포털의 경우 서비스의 일부 영역인 뉴스 콘텐츠 사업 부문만 따로 떼 내 별개의 법인으로 구성한다. 제조, 금융, 건설 등을 핵심 사업으로 영위하는 기업이 언론을 소유할 경우 언론 등 미디어를 부속품으로 여기지 않도록 신문·방송·OTT 사업 부문을 분리하게 된다.

김동원 실장은 “사주에게 이익과 사회적 영향력만을 목적으로 하며 투자와 고용은 전혀 늘리지 않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며 “미디어 사업을 영위하고 싶다면 건설, 개발, 레저 등에 포위된 미디어 부문을 분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완점: 산업 기준 불분명, 기업 유인 방법 등 보완 필요

토론자들은 미산분리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숙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찬행 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겸임교수는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정책이라는 게 목표가 합리적이고 타당해도 과연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허찬행 겸임교수는 “미디어 산업 부문을 계열분리만 하고 최소한의 수준으로만 투자하고 영위한다면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투자하게 하는 정책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일정 부분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성우 우성대 글로벌미디어영상학과 교수도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독립된 미디어 자본의 성격과 미디어 산업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라며 “대기업 및 거대 자본의 미산 분리 참여 의지가 낮을 건데 이들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 방안도 함께 고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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