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7일 김상열 회장을 친족 등 계열사 은폐와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고발했다. 이에 앞서 호반건설 소유 언론사인 전자신문사 임원이 공정위의 제재 착수 당시 조성욱 공정위원장에게 만남을 청해 오찬을 가졌다. 호반건설이 대주주인 언론사 3곳은 고발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건설사가 계열 언론사를 동원해 자사 감싸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겨레 보도와 공정위 등에 따르면 전자신문의 조억헌 부회장과 강병준 편집국장은 지난 1월 중순 조성욱 위원장과 오찬을 가졌다. 만남은 전자신문 쪽 요청으로 이뤄졌다. 당시는 공정위가 김상열 회장의 사위와 친인척 등이 보유한 계열사를 신고하지 않아 제재 절차에 착수했던 때다. 호반건설은 1월14일 계열사 누락 혐의에 “고의성 없었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에 건설사 대기업이 소유한 언론사를 앞세워 공정위와 ‘관계 맺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김상열 회장은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을 맡으면서 전자신문을 비롯해 호반건설그룹이 대주주인 언론사 3곳(서울신문·전자신문·EBN)의 회장직도 함께 맡고 있다. 조 부회장은 호반그룹의 건축사업 계열사인 마륵파크의 대표이사이기도 하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전자신문사 지분 43.68%를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전자신문 임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김상열 호반그룹·전자신문 회장 제재에 앞서 공정위원장과 오찬을 가졌다. 사진=지난해 12월13일 전자신문 보도 갈무리
▲전자신문 임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김상열 호반그룹·전자신문 회장 제재에 앞서 공정위원장과 오찬을 가졌다. 사진=지난해 12월13일 전자신문 보도 갈무리

공정위는 18일 한겨레 보도에 해명자료를 내고 “공정거래위원장은 정책 홍보를 위해 대변인이 배석하는 언론사와의 오찬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지난 1월 전자신문과의 신년 간담회도 그 일환”이라며 “간담회에서 ‘호반건설’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어느 언론사든지 요청하면 공정위원장·대변인과 오찬하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며 “주로 언론사 쪽에선 대표·편집국장이 참석하는데, 이번엔 조 부회장이 참석한다는 사실을 전날에야 알았다. 그러나 언론사 내 직책으로만 여겼다”고 해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후 공정한 절차에 따라 김 회장의 지정자료 허위제출에 가장 무거운 제재인 검찰 고발 조치를 했다”고 했다.

조 부회장과 강 편집국장은 공정위원장 만남 취지를 묻기 위한 전화와 메시지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호반건설이 대주주로 있거나 소유한 언론사들은 18일 오후 5시 현재까지 김 회장의 고발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한국경제 등 주요 일간지들이 해당 소식을 지면 또는 인터넷으로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호반그룹과 전자신문 사옥 전경. 전자신문 보도 갈무리
▲호반그룹과 전자신문 사옥 전경. 전자신문 보도 갈무리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작은 언론사도 동원해 흡집내기 시작하면 의제에 영향을 미치기에 공직자들에게 무서운 권력”이라며 “그런 면에서 건설사의 계열 신문사 임원들이 대주주의 공정위 이슈가 있는 상태에서 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보도를 지휘하는 편집국장이 이 시기에 만남 자리에 나타나는 것도 강한 압력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미 호반건설은 서울신문을 인수한 뒤 자사 비판 기사를 모두 삭제하는 등 소유·경영·편집 분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건설사”라며 “공정위원장도 만남 제의를 거절하는 것이 옳았다. 언론사 대주주의 제재 이슈가 엮여 있는데 취재기자 간담회도 아닌 언론사 임원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혹을 부르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17일 김상열 회장이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사위나 매제 등 친족이 보유한 13개사를 고의로 누락한 사실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처가가 보유한 삼인기업의 경우 계열사 은폐로 ‘사익편취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에서 일감 몰아주기도 이뤄졌다. 공정위는 김 회장이 이들 회사의 존재를 알고도 허위제출했으며 그 위반행위가 중대하다고 판단해 공정거래법 14조 등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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