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KBS 촬영기자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피해자가 최근까지도 가해자의 법적 소송에 시달려왔다면서 그의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사건을 판단한 법원이 가해자 측의 소송을 ‘2차 가해’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향후 KBS 조치가 주목된다.

앞서 최아무개 촬영기자에 의한 강제추행 피해사실을 밝혔던 부현정씨는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KBS에 최씨 징계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보냈다. 최씨가 제기한 소송들이 부씨의 승소로 결론난 만큼 최씨를 즉시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사건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KBS 파견직으로 일하던 부현정씨는 5월 최아무개 촬영기자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6월 그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후 사건을 넘겨 받은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면서 기소하지 않았고, 이후 최씨는 부씨에 대해 ‘무고죄’ 혐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씨가 부씨를 무고로 고소한 건 2016년, 처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않았고 이어진 최씨 항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최씨가 서울고등법원에 제기한 재정신청에 따라 무고 혐의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2017년 8월 1·2심 재판부는 최씨 손을 들어줬지만, 2019년 대법원은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앞선 재판부는 부씨가 적극적으로 신체접촉을 거부하거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무고 유죄’ 근거로 삼았는데, 대법원은 이런 행동을 허위 주장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봤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피해 주장이 무고가 될 수 없고, 최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당시 대법원의 이런 결정은 언론을 통해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른바 ‘미투’(#MeToo) 운동이 전개된 국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자’로 몰리며 감내해야 하는 문제들이 사회적인 쟁점으로 대두된 시기였다. 동시에 사건 초기 부씨가 KBS에 피해사실을 알렸지만 합당한 징계 등의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한계도 지적됐다.

그러나 법정 공방은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2020년 7월 부씨가 자신을 가해자로 거론한 온라인 게시물을 삭제하고, 이런 내용을 SNS에 게시하면 1회당 최소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부씨가 SNS를 통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 최씨와 그 배우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부씨도 오히려 최씨가 강제추행에 이어 허위사실 유포로 정신적 고통을 가한 데 대한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면서 반소를 제기했다.

2년에 가까운 재판은 지난 1월13일 대법원 제1부가 최씨 상고를 기각하면서 종결됐다. 최씨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항소심 재판부 판결이 확정된 것이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제8-3민사부(재판장 김정민)는 양측 진술의 신빙성, 지난 수사·재판 과정, 부씨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최씨 측 주장 등을 검토해 최씨가 부씨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최씨는) 피고(부씨)에게 강제추행행위를 했을 뿐 아니라 피고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피고가 원고를 허위로 고소했다고 주장하며 결국 피고를 무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두고 “공영방송사의 직장 상사가 파견 직원에 대하여 한 불법행위로서 직장 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어 기본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회문제와 결부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 공적인 의미를 짚었다. 부씨가 SNS 등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주장한 데 대해선 “피고(부씨)가 수사·재판 과정에서 느꼈던 피해 감정 및 사법 절차에 대한 불신 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으며, 강제추행행위에 관해서는 피해를 입었다는 것 외에 필요 이상으로 구체적 묘사를 하지도 않았는 바, 표현의 방법이 사회통념상 크게 부적절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8년 8월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지난 2014년 KBS 파견직 시절 최아무개 카메라기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부현정씨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18년 8월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지난 2014년 KBS 파견직 시절 최아무개 카메라기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부현정씨와 변호인단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특히 최씨의 소송이 부씨에게 가한 정신적 고통과 피해를 세세히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피고의 정신적 고통을 극도로 심하게 만든 부분은 원고 최씨의 무고 및 수사와 재판에서의 허위 진술에 관한 불법행위이다. 최씨가 고의로 피고를 무고로 수사기관에 고소한 결과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을 거쳐 무죄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약 4년의 기간이 경과되었다”며 “피고의 1차 고소가 불기소 결정으로 마무리되기까지 약 1년이 걸렸던 점과 비교하여 위와 같은 긴 시간 동안 원고 최씨의 허위 고소 등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고로서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건과 관계 없는 사적인 영역을 끌어온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재판부는 “피고의 고소가 불기소 결정으로 마무리되자 이를 허위의 사실로 써 무고한 불법행위는 고의성이 특히 짙다”면서 “피고의 개인적 전력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거나 폄하하면서 비약적 주장으로 나아간 부분은 피고에게 정신적, 사회적 불이익을 주는 2차 피해를 야기하는 무리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소송절차에서의 권리를 감안하더라도 명백한 2차 가해로 보이고 이를 불법행위 후 가해자의 태도로서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부씨가 입사 한 달 만에 강제추행 피해를 당하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입은 사회·경제적 피해 △기습추행 형태가 상당히 중한 범주에 속하는 점 △회사 내에서 최씨 및 동료들에 의한 2차 피해 등도 피해를 더했다고 지적했다.

부씨 측은 KBS에  “(최씨) 신분을 박탈하는 중징계처분”을 요구하고 있다. 부씨 법률대리인인 김용원 변호사(부산항법률사무소)는 지난달 4일 KBS에 “최씨는 대법원이 관련 민사소송에서 최종 판결을 할 때까지 무려 7년7개월 여에 걸쳐 지속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2차 피해를 가해 왔다”며 중징계요구서를 보냈다. 22일엔 의견서를 보내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목적으로 최근까지 민사소송을 벌인 행위를 두고 이것이 대내외적 품위유지의무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지는 못할 것”이라며 징계처분을 재차 강조했다. “징계시효는 대법원 판결선고일 기준으로 1년11개월 정도 남았다고 봐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KBS는 부씨의 요구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KBS 관계자는 15일 관련 절차 및 입장을 묻는 질문에 “회사가 판단하기 위한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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