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11일 “이제 언론운동은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이분법을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야 시민운동 세력과 원내 민주당이 ‘언론장악 세력’에 맞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방식의 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다 2030 세대가 우리 사회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오늘날, 단순한 선악 이분법에 갇혀서는 언론운동 스스로 고립만 재촉할 뿐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윤 위원장은 “언론운동 중심은 언론이지 정치가 아니다”라며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세력이 응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당의 포용성과 도덕성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가치가 무너진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언론노조 가치가 젊은 세대로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정파적 유불리에 따라 언론운동이 흔들려 왔다는 데 있다고 했다.

윤 위원장은 “재집권이라는 명분으로 반인권, 소수자 혐오 목소리를 퍼뜨리는 인플루언서들과 강력한 정서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팬덤 정치’와 선을 긋지 않으면, 민주당도 언론운동진영도 미래가 없다”며 “공론장을 음모론과 혐오로 가득 채우는 행태를 근절하는 언론운동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언론노조 제공.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언론노조 제공.

- 이번 대선 어떻게 바라봤나?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합리적 시민과 지식인, 중도층이 민주당 진영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있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반성은 전무했다. 180석 민주당은 오만했다. 대선 기간 후보들 지지율에 등락이 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여론은 정권교체였다. 이번 대선을 구체제로의 회귀라고 볼 수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87체제 재편과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언론운동 진영에 던져졌다고 평가한다. 언론운동과 시민운동은 여기에 답해야 한다.”

- 미디어 운동이 말하는 ‘87체제’는 무엇인가?

“언론운동 뿌리는 1970~19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빼앗긴 말과 글을 되찾기 위한 해직 기자들의 싸움이다. 전두환 독재정권 하에서 5·18 왜곡 보도는 대한민국 언론의 치부로 남았다. 말과 글을 되찾는 과정에서 거리의 재야 세력과 원내 민주당의 연합 전선이 구축돼 왔다. 이 연합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형식적 민주주의 틀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두 세력 연합은 국민의힘 전신 정당과 정권이 언론·방송 장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면서 정당성을 의심 받지 않았지만 2016년 촛불집회 이후부터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30 세대들은 윗세대인 87세대들의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가치 그 이상으로 불평등, 양극화 문제, 내 삶에서의 불공정 문제 해소를 요구했다. 정부가 이를 해결해주길 바랐으나 문재인 정권은 조국 사태로 민심을 거꾸로 거스르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 언론단체들도 ‘조국 수호’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지 않았나?

“민주당 주류와 87체제를 만들어낸 운동 진영 모두 조국 수호를 외치고 다녔다. 아직도 ‘표창장 몇 장 위조한 걸 갖고 멸문지화하느냐’고 하는데 민주당에 등을 돌린 젊은 세대들은 조국 자녀들과 비슷한 시기에 입시를 치렀다. 반칙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아는 세대다. 이들 부모도 마찬가지다. 공정성을 회복해달라고 촛불을 들고 권력을 쥐여 줬는데, 실상 그렇게 집권한 저 사람들 민낯은 이렇구나. 젊은 세대가 자괴감을 느낀 이유다. 조국 의혹을 보도하고 부조리를 비판하는 언론인들은 어떻게 됐나? 자칭 진보 인플루언서들은 언론인들을 적폐 세력 취급하고 조리돌림했다. 수없이 쏟아진 조국 보도 가운데 사실에 부합하는 보도가 있고, 진실에 부합하지 않은 것도 뒤섞여 있다. 언론이란 늘 그랬다. 박근혜 탄핵 국면 때도 함량미달 기사와 순도 높은 기사가 뒤섞여 있었다. 그 당시 어느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던 기자들이 똑같이 조국 장관을 비판했더니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기레기’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언론개혁을 지지하고 요구했던 수많은 언론 노동자들이 깊은 냉소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언론개혁 자체 동력을 위축시킨 큰 실책이다.”

- 통상 언론운동 진영은 민주당 정권에서 각종 언론개혁 의제를 구현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 전략이 실패라는 것인가?

“민주당과 사안에 따라 협력하는 것과 민주당을 맹목적으로 지지·옹호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언론운동 진영 내부에 언론개혁 이슈를 ‘조국 수호’ 연장선에서 판단하는 시도들이 분명 존재했다. 언론운동 중심은 언론이지 정치가 아니다. 그런 판단 배경에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아주 낡은 이분법이 자리하고 있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민주세력이 응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민주당의 포용성과 도덕성에 있었다. 그러나 이런 가치가 무너진 지 오래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 이익 수호에만 몰두했던 모습 속에서, 언론자유 보장과 노동 인권 문제에 있어서 머뭇대던 모습 속에서, 민주당이 사회적 약자와 언론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운동판 전반에 팽배해 있는 ‘87체제’를 청산할 때가 됐다는 명백한 신호로 판단한다.”

▲ 2019년 9월2일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19년 9월2일 당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언론노조도 젊은 조합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언론노조 내부도 똑같은 상황이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즉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언론노조 제1강령 가치를 아래 세대에 전달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특정 정치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유불리를 따지며 강령을 접었다가 폈다가 해야 하는가? 민주당의 정치적 이익을 언론노조가 대변해야 언론개혁이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언론운동 내부에서 넌지시 직간접적으로 이런 요구를 해 왔지만 언론노조가 여기에 부화뇌동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칙과 강령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언론운동과 언론노조는 절멸할 것이다.”

- 지난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면에서 법안 처리를 강행하는 민주당에 제동 건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가치에 비춰봤을 때 민주당이 주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는 반대해야 마땅했다. 국민의힘이 똑같은 법을 들고 나왔다면, 지난해 언론중재법 개정을 찬성했던 언론단체들은 어떤 입장을 피력했을까? 정치적 이익에 따라, 또는 이슈를 민주당이 주도하느냐 국민의힘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찬반이 달라진다면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나? 언론노조는 강령에 입각해 일관된 입장을 갖고 있다. 사회 구조 전반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집착하는 건 언론운동 스스로 고립하는 것과 같다.”

- 대선을 앞두고 올해 1월 언론노조, 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시민사회 단체들이 ‘2022 대선미디어감시연대’를 발족하고 대선 보도를 감시했다. 종편 방송 감시는 이뤄졌지만 ‘김어준 방송’ 등 여권 편향 매체 감시 활동은 없었다. 

“현장의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언론단체 모니터 내용을 거의 수용하지 않는다. 수용도가 낮다. 우리 조합원들 사이에선 언론 모니터 정파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선 조합원들을 대표하는 분들의 지적과 반발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장은 변화했는데 현장을 바라보는 모니터와 언론운동 시각이 여전히 낡은 구도에 묶인 탓이다. 실무적으로는 유튜브와 지면, 방송 등 모니터 대상이 많아지다 보니 담당 영역을 구분해 진행했고 모니터 결과물이 모니터 주체에 따라 들쭉날쭉하는 한계가 명확했다.”

- 유튜버와 인플루언서가 미디어 공론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선 국면에서 이들이 제기하는 각종 의혹과 주장이 사실과 뒤섞여 혼란을 주기도 했다.

“유튜버라고 모두 백안시하는 건 아니다. 미디어 다양성 차원에서 굉장히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독립 제작자, 1인 미디어도 있다. 반면 오른쪽에 가로세로연구소가 있다면 왼쪽엔 열린공감TV가 있었다. 김용민씨나 김어준씨도 대선 국면에서 특정 정파에 맹목적 지지를 드러내고 검증을 명분으로 혐오 정서에 기대지 않았나? 민주당은 이를 제어하는 대신 이들의 영향력에 편승했다. 이들 인플루언서들은 정상적인 저널리스트들까지 공격하며 언론 혐오를 확산시켰고, 지지자들이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를 계속 퍼나르고 확장시켜 언론개혁 의제를 왜곡시켰다. 재집권이라는 명분으로 반인권, 소수자 혐오 목소리를 퍼뜨리는 인플루언서들과 강력한 정서적 동질감을 형성하는 ‘팬덤 정치’와 선을 긋지 않으면, 민주당도 언론운동진영도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론 스스로 내부를 개혁하고 더 좋은 기사를 생산하는 노력이 언론개혁 일환으로 필요하지만, 공론장을 음모론과 혐오로 가득 채우는 행태를 근절하는 언론운동의 노력도 절실하다.”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언론노조 제공.
▲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사진=언론노조 제공.

- 언론노조 위원장이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 아니냐, 갈등을 더 크게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수 있을 텐데?

“이 인터뷰가 나가면 또 난리가 날 것이다. 언론노조 전화기에 불이 날 텐데, 극복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없는 갈등을 키우자는 게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논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운동이 젊은 세대로 확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언론운동 진영은 조중동 등 족벌 언론 문제를 계속 지적해 왔다. 국민 대다수는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족벌 언론의 사회적 해악을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언론운동이 정파 운동의 영향력에 일정 부분 휩쓸리면서 ‘그러는 너희들은?’이라는 반문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족벌 언론 사주의 역사적 과오를 지적하고 평가하는 것과 이를 어떻게 개선시킬지는 다른 문제다. ‘조중동 폐간 운동’이 지금 이 시기 가능하다고 믿는 시민들이 얼마나 있겠나? 민주당 정권의 ‘내로남불 이슈’는 되레 조중동의 발언력을 강화시켜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운동 진영이 조중동 문제를 지적해봤자 효과가 나타나질 않는다. ‘조국 사태에 침묵했던 언론운동 진영이 우리를 공격해?’라는 식으로 적대적 공생의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언론운동이 의도와 달리 수구 언론이 확장할 밑자락을 계속 깔아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누가 집권하든 맹목적 지지와 비판의 거세는 같이 망하는 길이다. 민주당도 거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

-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언론의 미디어 독과점과 여론 왜곡 문제는 지적해야 하지 않나?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운동이 ‘조중동 폐간’만 외치면 언론운동이 갖고 있는 고유의 건강함이 조중동 안에 스며들 수 없다. 자기를 죽이려 들면 방어부터 하기 마련이다.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언론 보도 중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박종철 치사 사건 폭로가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는 TV조선과 JTBC 등 종편의 역할이 있었다. 족벌 언론이 갖는 미디어 시장 독과점과 왜곡 문제는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아울러 조중동 내 남아있는 저널리즘을 견인해낼 수 있는 건강한 언론운동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수십 년간 노정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 변화는 필수적이다. 미디어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구호만 외쳐서 되겠는가?”

- 윤석열 정부에서 윤 위원장이 바라는 언론운동 진영의 새 변화가 가능할까?

“윤석열 정부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언론장악을 시도한다면 임기를 마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선자 주변에 과거 언론장악을 획책한 인물들이 눈에 띄고 이들이 민주당 정부 때와는 반대의 진영논리를 역으로 확산할 것이다. 여기에 새 정부가 휩쓸리면 과거 회귀와 사회적 갈등 국면을 벗어날 수 없다. 언론노조는 그런 상황이 또 벌어지면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다만, 우리 역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민주당이 집권해야 무언가 해볼 수 있고 보수정당이 집권하면 볼 것도 없이 맞서 싸우기만 해야 한다는 이분법적 고정관념에 갇히게 된다. 새로운 세대들이 사회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우리끼리만 만세 부르는 운동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 언론노조는 미디어 공공성 강화를 위한 언론의 자율 규제 구축과 사회적 책임 강화, 통합적 미디어 자본 규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것뿐 아니라 언론 혐오와 맞서 싸우는 것, 정당한 취재 활동을 하는 언론인을 매도하고 공격하는 행태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황폐해진 미디어 시장에서 건강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대안을 찾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다만 언론 시스템 자체를 뭉개버리는 식의 군중검열에는 단호하게 맞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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