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13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해 “이제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여가부 폐지를 선거캠페인이 아닌 실제 실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윤 당선자는 “각 분야 최고의 경륜과 실력있는 사람을 모셔야지 자리 나눠 먹기식으로 하는 것은 국민 통합이 안 된다”고도 했다. 문재인 행정부가 시도한 ‘여성 장관 30%’를 이어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내에도 여가부 폐지 반대 의견이 나오는데 이를 잠재우겠단 의도도 엿보인다. 

윤 당선자의 주장을 적극 지지한 신문사설이 등장했다. 석간 문화일보는 지난 14일 사설에서 “윤 당선자 지적 취지대로 남녀를 편 가르는 시대착오적 부처인 여가부는 폐지하는 게 옳다”며 “여가부는 거의 모든 업무 영역이 다른 부처와 연계 처리해야 실효성을 확보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떤 유형의 성차별도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지만 그 해법이 여가부 존속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됐다”고 했다. 

정치권에도 여가부 폐지를 요구했다. 문화일보는 “의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여가부 폐지에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며 “폐지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일각도 그러는 것이 진정으로 여성을 위한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때”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대선 이후 공동비대위원장으로 박지현 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선임하며 2030여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뜻을 드러내 윤석열 행정부의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민주당과 첨예한 갈등이 예견된다. 

▲ 14일자 문화일보 사설
▲ 14일자 문화일보 사설

 

여가부 폐지를 외치지 않는 언론

대다수 매체는 ‘여가부 폐지’를 외치지 않았다. 이는 크게 두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윤 당선자가 부인했지만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여가부 폐지’가 실은 공허한 구호에 가깝기 때문이다. 

14일자 조선일보 “새 정부가 깨야 할 유리 천장”이란 칼럼을 보면 OECD가 지난 7일 ‘유리천장지수’를 발표했는데 “‘만년 낙제생’은 한국”으로 “10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조선일보는 “여성 대통령 박근혜 정권 때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며 들어선 문재인 정권 때도 한국 여성의 상황은 별반 나아진 게 없음을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 칼럼을 근거로 하면 “남녀를 편 가르는 시대착오적 부처 여가부”라는 표현이 시대착오적이다. 

▲ 14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 14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여가부 폐지’ 실제론 정치적 구호일뿐

여가부 폐지를 말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여가부라는 부처 자체는 폐지하더라도 여가부가 수행하던 기능까지 없애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가부는 600조원 넘는 정부예산 중 약 1.5조원(약 0.24%)을 쓰는 작은 부처로 이중 절반넘는 예산이 80% 가까운 예산이 가족정책과 청소년정책을 위해 사용된다. 실제 여성정책 관련 예산은 7.2% 수준이다. 윤 당선자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이유로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데,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사진=국민의힘
▲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사진=국민의힘

 

이는 이명박 행정부가 여가부를 폐지하려다 실패한 이유다. 2001년 여성정책과 권익증진 등의 역할로 탄생한 여성부는 노무현 행정부 들어 가족정책까지 수행하는 여성가족부로 확대개편됐다. 이명박 행정부도 윤 당선자와 비슷한 취지로 여가부 폐지를 시도했지만 어차피 어느 부처에선 수행해야 할 역할들이었기 때문에 가족정책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수준으로 부처개편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2년만에 원상태로 돌렸고 청소년 정책까지 여성부로 이관했다. 정치인의 의지와 관료조직의 업무효율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다. 

동아일보는 15일 사설 “소모적인 여가부 폐지 논쟁 지양해야”에서 “여가부의 다양한 기능은 무시할 수 없다”며 “갑자기 부처 폐지 얘기가 나오니 한부모 가정, 학교 밖 청소년 등이 불안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가부가 현 정권에서 제 역할을 못 했든, 실질적인 성차별을 해소하지 못했든, 여러 이유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는 언론에서도 ‘여가부 폐지’까지 주장하진 않는다. 

구조적 성차별 지적한 조선

조선일보는 14일자 칼럼에서 윤 당선자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말과 행동이 불일치한 현 정부의 위선과 도덕적 타락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며 “그럼에도 새 정부는 한국 여성이 처한 척박한 환경을 명확히 인식하면서 정책을 입안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질적인 양성 평등 정책으로 밑바닥 일직선인 한국의 유리천장지수 그래프가 조금이라도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동아일보도 “윤 당선자는 인정하지 않지만 우리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대선 결과도 재검토 주장의 근거였다. 중앙일보는 11일자 사설에서 “젠더 갈라치기는 결국 국민의힘에 감표 요인이었다”며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일이 쉽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을 좋은 정책으로 돕지 못할망정 정치가 젠더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도 15일 사설 “갈등 해결의 시금석 돼야 할 여가부 폐지 논쟁”에서 “대선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시도했던 노골적인 편가르기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중도성향 신문도 ‘여가부 폐지’ 재검토 주장

이는 대선 이후 국정운영의 걸림돌로 확대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졌다. 서울신문은 11일자 사설 “역풍 확인된 ‘여가부 폐지’, 인수위 접근 달라야”에서 “대통령직인수위윈회는 여가부를 폐지하기보다 성평등가족부 등으로 확대 개편해 사회 통합을 이끌 방안을 고려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14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일부 공약 손질 의사를 밝히자 15일 서울신문은 사설에서 “당선자 생각과 다른 여가부 문제에 대해 당선자와 어떻게 조율하고 여가부 수호 입장인 민주당을 설득해 여성을 위한 정부 조직으로 개선할지에 공동정부 첫걸음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12일자 사설 “尹인수위, 통합정부 가늠할 시금석이다”에서 “‘이대남’을 잡기 위한 구호 성격이 강했으나 2030 여성들의 막판 역풍을 초래한 것을 당선자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며 “부처의 명칭이나 부처 간 기능을 조정하더라도 여성과 아동·가족 관련 역할은 통합하고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더 강한 어조로 반복해 여가부 폐지 공약을 반대하며 젠더차별 주장의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 20대 대선 국민의힘 공약집
▲ 20대 대선 국민의힘 공약집

 

국민의힘 대선공약집을 보면 여가부를 폐지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별도 부처 신설”하겠다고 했다. 지난 1월8일 당시 윤석열 후보는 페이스북에 “더이상 남녀를 나누는 것이 아닌 아동, 가족, 인구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종합하면 현재 여가부의 이름을 바꿔 새 부처를 만들고, 기존 여가부 업무 중 여성정책 부분을 없애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니면 보건복지부 등 일부 부처와 통폐합해 업무를 이관하는 방식으로 개편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정책 업무를 없앨 수 없으니 관련 부서를 통폐합하고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방향으로 ‘여성’을 지우려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재정의 0.24%를 차지하는 극소규모 부처에, 다시 여기서 10%도 차지하지 않는 기능을 없애기 위해 대선 기간 내내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고 대선 이후 당안팎 반발을 양산하는 게 당선자에게 이득인지 의문이다. 게다가 전문인력이 많은 부처를 없애고 굳이 그 기능을 다른 부처에 이관하는 게 효율적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윤 당선자가 인수위원회 내 여성분과도 설치하지 않은 것까지 고려하면 여성정책에 대한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문화일보 등 일부 매체를 제외하면 관련 공약 재검토 요구가 더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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