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거리가 없을 만한 드라이한 기사에서도 ‘무식한 기레기’라는 댓글이 달립니다.” (경제지 기자)
“주로 이메일을 활용했고 익명이었습니다. ‘페미는 정신병이다’, ‘니가 쓰는 글은 쓰레기다’, ‘가족 모두 교통사고 나서 죽길 바란다’ 등이 기억납니다.” (일간지 기자) 
“이 직업을 그만두기 싫지만, 한번 신상을 털려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방송사 기자)

비판은 자유다. 그러나 정당한 비판과 모욕은 다르다. 비판을 가장한 모욕은 기자들에게 ‘괴롭힘’으로 다가올 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7월21일부터 8월15일까지 404명의 기자(여성 200명, 남성 204명)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에 나선 결과 기자 이름을 부르며 모욕하는 경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신문사(78.4%)‧인터넷신문(78.8%)‧방송사(83.3%)‧뉴스통신사(89.2%) 등 기자 대다수에게 ‘일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찾아가서 혼내주겠다”, “난 네가 누군지 안다” 등의 위협성 발언 행위도 신문사(53.4%)‧방송사(51.5%)‧뉴스통신사(64.9%) 기자들의 절반 이상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레기야”‧“기사를 발로 썼냐”처럼 모욕적‧공격적 언어 행위를 ‘일주일에 수차례’ 겪고 있다는 응답은 33.4%였으며 “X같이 생겼네”‧“놈”‧“년” 등이 섞여 명백하게 욕을 하는 경우도 ‘일주일에 수차례’ 겪고 있다는 응답은 10.4%로 나타났다. 언론재단은 이 같은 설문 결과와 기자 심층 면접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언론인과 디지털 괴롭힘’(박아란‧이나연)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괴롭힘이 매우 자주 발생한다고 응답한 기사 주제는 정파적 이슈 50.7%, 젠더 이슈/페미니즘 48.3%, 대통령 관련 주제 47% 순이었다. 디지털 괴롭힘 원인에 대해서는 ‘기사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라는 평가에 88.3%가 동의했고, ‘근무하는 언론사를 싫어하기 때문에’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응답도 61.4%로 나타났다. ‘기사의 완성도/전문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평가에 동의하는 비율은 14.1%에 그쳤다. 기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비난이 정당하지 않으며, 다분히 감정적이고 편향되어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Gettyimages.
▲Gettyimages.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라는 기자에게서 더 높은 비율을 보인 디지털 괴롭힘 유형은 ‘명백하게 욕을 한 경우’(진보 77.8%, 보수 70.6%), ‘특정인 또는 특정 집단이 여러 기사에 댓글을 다는 등 스토킹처럼 느껴지는 행위’(진보 51.9%, 보수 43.5%) 등이었다. 반면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는 기자에게서 더 높은 비율을 보인 유형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대상으로 모욕이나 공격적 언어를 사용한 행위’(진보 88.9%, 보수 93.8%)였다. 

‘성희롱적이거나 성차별적 발언’ 경험 빈도에서는 여성 기자의 76.5%가 ‘경험했다’고 답한 반면, 남성 기자는 40.2%만 ‘경험했다’고 답해 격차가 컸다. 한 달에 1회 이상 경험한다는 응답에서도 여성(40%)과 남성(17.2%)의 격차는 컸다. ‘기자의 외모에 대한 평가’로 디지털 괴롭힘을 당했다는 응답도 여성 기자는 62.5%였던 반면 남성은 47.1%였다. ‘성적으로 당혹스러운 문자나 사진을 받았다’는 응답도 여성(12%)이 남성(8.8%)보다 높았다. 여성 기자들의 경우 입에 담기도 힘든 성적 욕설을 이메일로 받는데 그 정도가 범죄 수준이다. 

기자를 향한 디지털 괴롭힘이 주로 발생하는 경로는 1순위가 댓글(68.8%)이었으며, 1‧2‧3순위 합산 결과에선 댓글 92.8%, 이메일 74.3%, 특정사이트나 커뮤니티 63.6% 순이었다. 특정 기사 또는 기자를 ‘박제’하는 사이트와 관련해선 ‘박제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54.7%로 나타났는데 정치성향이 진보적인 경우 경험 비율이 72.2%로 보수(52.5%)보다 높았다. ‘박제가 기사 쓸 때 긍정 효과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20.1%, ‘동의하지 않는다’ 49.2%로 부정 의견이 높았다. ‘기사가 박제될 만큼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79.2%로 압도적이었고 ‘동의한다’는 4.7%에 불과했다. 

▲법무부 브리핑을 듣고 있는 기자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연합뉴스
▲법무부 브리핑을 듣고 있는 기자들. 해당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연합뉴스

‘소속 언론사에 디지털 괴롭힘이나 온라인 명예훼손 문제를 상담할 전문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는 응답은 15.8%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이번 보고서에서 “최근 1년 동안 경험한 디지털 괴롭힘의 정도는 이직 의도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으며 “인터넷 폭력을 당한 언론인에 대해서는 치료 시스템과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론사들은 점차 조직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특정 문구나 단어가 포함된 이메일이 자동 수신 차단되도록 회사 메일 시스템을 개편해달라”는 등 사내 기자들의 ‘악성 외부 공격 대응’ 요구에 조만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경향신문은 회사 대표 신고계정을 마련하고 개별 기자들이 인신공격성 이메일을 받을 경우 전달(포워딩)하도록 했다. 악성 이메일 발신자에게 회사 차원의 1차 경고 이메일을 발송하고 모욕 수위가 심각하거나 반복될 경우 법적 조치에 들어가는 식이다.

앞서 한국기자협회는 지난해 9월 기자 신상 수집‧공개 사이트 ‘마이기레기닷컴’ 운영진을 고소한 바 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기자들은 디지털 괴롭힘을 언론계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며, 개인이 아니라 회사나 협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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