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타설하는 1군 브랜드 아파트 만족하시나요?’ (머니투데이)
‘[단독] 미숙련 외국인들이 타설 속도전… 붕괴 직후 잠적’ (국민일보)
‘검증 안된 외국인 인부 8명이 ‘묻지마 타설’...사고 후 종적 감춰’(세계일보)
‘광주 아파트 붕괴, 반장부터 말단까지 모두 외국인 노동자 ‘중국인’’(디스패치)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현대산업개발(HDC)이 시공 중인 신축아파트 외벽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현대산업개발이 원청으로 있던 광주 학동 재개발 4구역에서 철거 중인 건물 붕괴 사고와 관련 현장 소장이 추가 기소된 날이기도 하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장시간 노동, 최저가 입찰제, 무리한 공사기한 등 구조적 원인을 짚은 보도가 많았으나 몇몇 보도는 지엽 말단에 가까운 ‘외국인 노동자’를 전면에 부각했다.

‘외국인 노동자’에 초점 맞춘 일부 언론

지난 14일 머니투데이는 ‘외국인이 타설하는 1군 브랜드 아파트 만족하시나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부제목은 ‘하자투성이 신축 아파트 메이드 바이 불법체류자’다. 해당 기사는 “(사고 현장의) 동영상 뉴스를 접한 대중의 귀를 더 자극하는 건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중국어’”라고 했다. 이 기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번 붕괴사고의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불법체류자들의 손으로 지어지는 아파트 품질은 어떨까. 3D업종 일자리를 불법체류자나 외국인에게 의존하고 임금이 낮은 걸 당연히 여기는 건 후진국에서 할 일”이라고 보도했다.

▲ 지난 14일 머니투데이 ‘외국인이 타설하는 1군 브랜드 아파트 만족하시나요?’ 기사 갈무리.
▲ 지난 14일 머니투데이 ‘외국인이 타설하는 1군 브랜드 아파트 만족하시나요?’ 기사 갈무리.

머니투데이는 “과연 우리 1군 대형 건설사들이 불법체류자를 쓰지 않고 합법 인력만 쓰면 망할 정도로 어려운 사정에 있을까. 당장 싸게 먹힌다는 이유로 불법체류자 혹은 외국인들이 짓는 아파트를 용인한다면 그 부수적 피해는 계속 커진다”며 구조적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외국인 노동자’를 부각했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잠적을 부각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고 직후 대부분 잠적했다. 이들은 실제 공정 속도 등을 증언할 수 있는 당사자이지만, 다수가 체류 자격 문제를 우려해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보인다.”(국민일보) “이들은 사고 직후 종적을 감춰 정확한 신분과 보유기술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세계일보) 등이다.

국민일보는 건설노조 관계자의 입을 빌려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떨어진다는 발언을 전했다. 해당 기사에서 송성주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 사무국장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절차에 따라 일을 배우기보다 현장에서 기술을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불법체류자도 많아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으면서 국내 기술공보다 숙련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기사 인용 노조 관계자 “구조적 문제 강조 취지” 반박
“본질 벗어나 ‘탓할 사람’ 찾으려는 무책임 보도” 지적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기사가 본질을 희석시키고 혐오를 야기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국민일보 기사에 등장한 송성주 사무국장은 “해당 발언의 취지는 현장에 불법하도급과 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본질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라며 “외국인 노동자의 미숙련 문제와 사고가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사고의 구조적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 탓으로 돌리는 식의 해당 언론 보도는 옳지 못하다”고 밝혔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외국인 노동자 탓을 하려면 실제로 그 사람들이 공사 결정의 단계에서 얼마나 역할을 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됐어야 한다”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결정 단계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일을 했다는 사실로 그들을 몰아가는 것은 무책임한 찔러보기식 기사”라고 비판했다.

▲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사진=노컷뉴스.
▲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사진=노컷뉴스.

물론 구조적인 문제 가운데 ‘저가 임금구조’가 있고, 이에 따른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이창원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외국인 노동자는 오히려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업체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 공기를 단축했고, 공사 과정을 결정하는 주체가 잘못한 것이며 외국인 노동자는 똑같이 사고의 피해자”라며 “인과관계가 전혀 맞지 않는 보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 탓할 대상을 찾으려는 감정적 보도”라며 “언론은 비난하기 좋은 사람을 찾아 갈등을 조장하고 혐오 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 국민 정서에 기대서 갈등 심리, 확증편향 정서를 이용해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문길주 광주전남노동안전지킴이 운영위원은 “오늘도 이주노동자 손가락 절단 사고가 일어나 상담하고 왔다”며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전했다. 문 운영위원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밑에 있는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이라며 “이주노동자에게 책임을 덧씌우고 혐오로 바라보게 하는 언론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언론의 보도 방향과 관련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언론은 왜 건설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는지, 왜 미등록 체제로 쓸 수밖에 없는지” 원인을 파악해 알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영섭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사무국장도 사고의 원인을 가리켜 “다단계 불법 하청과, 전반적인 근로 조건, 안 좋은 임금 노동환경 등으로 내국 인력이 잘 유입되지 않는 문제”라며 “언론은 안전 법규가 실제 현장에서 지켜지는지, 다단계 불법 하도급으로 층층이 내려가는 건설시공업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짚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20일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성명서에서 “언론이 앞장서 특정 소수집단의 외국인 노동자를 공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재계도, 정치권도 다문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사회의 비전에 대한 고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언론은 외국인 노동자라는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공격하고 대기업의 책임을 가리는 악질적인 선동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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