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타임스는 지난 24일 “심리학자 ‘김건희, 윤석열 지배하는 갑을 관계’”란 기사로 심리학자들이 ‘김건희 녹취록’ 발언을 통해 김건희씨의 심리상태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 김씨가 배우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배하고 있고 윤 후보의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평가들이 나왔다. 과연 확인도 안 되는 추정들을 전문가의 평가라는 명목으로 전달하는 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김건희 녹취록’이 연일 화제가 되니 다룬 기사일까? 아니면 공적인물에 대한 검증 차원에서 진정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걸까? 

지난 14일 김씨가 열린공감TV를 상대로 낸 방송금지가처분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은 결정문에서 대통령 배우자를 “국가 서열 제1위”, “대통령 직무수행에 직간접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표현했다. 김씨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 여성관, 정치관, 권력관 등 유권자 투표권 행사에 상당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공개를 결정했다. 무속 관련 발언에 대해선 ‘최서원(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거론하며 검증 필요성을 인정했다. 언론사들은 이런 관점에서 녹취록을 보도했을까?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연합뉴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연합뉴스

 

조선일보·동아일보·서울경제 등은 지난 24일 온라인 기사 김씨가 “난 밥 아예 안해 남편이 다 한다”는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했다. 한 스님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면서 “김건희가 완전 남자고, 석열이는 여자다”라는 발언도 기사에 담았다. 해당 발언은 대선에서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공적인 정보라고 하기 어렵지만 당시 포털에서도 큰 관심을 모았다. 

해당 발언에 대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험담이냐 미담이냐”라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무속으로 성정체성이 바뀌었다”는 해괴한 발언을 했는데 이 내용도 채널A, 한국경제, 매일경제, MBN 등 다수 매체에서 인용했다. 모두 국민의 알권리 차원과 무관한 자극적인 발언을 부각한 쪽에 가깝다. 이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비난 등 평가가 나오면 재차 기사화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검증을 빌미로 한 ‘클릭수 장사’라고 할 수 있다. 

▲ 서울의소리 유튜브 갈무리
▲ 서울의소리 유튜브 갈무리

 

김씨를 옹호하는 내용의 기사나 칼럼도 있었다. 

지난 21일 조선일보는 문화부 차장의 “MBC ‘김건희 방송’이 불러낸 뜻밖의 현상”이란 칼럼에서 김씨를 기존 영화포스터에 합성하는 등 다양한 짤이 나온 현상을 다뤘다. 김씨 발언에 대한 검증보다는 김씨에 대한 긍정 평가도 주목했다. 

칼럼에선 “안희정 전 충남지사 관련 미투에 대한 부적절한 인식, 선거운동 관여를 시사하는 언급, 도사 발언 등 대통령 후보 부인으로서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일부 매체를 통해 이상한 사람으로만 그려졌던 후보자 아내에 대해 ‘털털하면서 입담 좋은 아줌마 같다’는 인식 변화를 촉발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 21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 21일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김씨의 긍정적 이미지를 강조하는 보도는 다른 매체에서도 있었다. 문화일보 18일자 지면 “김건희 팬카페 회원 급증…방송 이후 200여명→1만명”을 보면 당에서는 ‘김씨가 공개활동을 하면 더 나은 이미지가 형성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김씨 발언을 검증하는 대신 녹취록을 보도한 MBC를 비판했다. 18일자 사설 “野 후보 아내 함정 빠트린 사람들, MBC도 사후 가담 아닌가”에서 “MBC가 김대업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을 ‘의인’으로 포장해 대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기억이 많은 시청자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며 “김씨와 함정 통화를 한 측이 그 녹음테이프를 MBC에 준 것은 자신들과 ‘같은 부류’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씨가 “내가 정권 잡으면 가만 안둘 것”이라고 한 것은 그의 권력관을 드러내는 발언으로 크게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는 지난 20일 김순덕 칼럼에서 “아무리 보도되지 않을 줄 알고 발언했다고 해도 유력 대선후보의 부인이면, ‘내 남편이’도 아니고 ‘국민의힘’도 아니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밖에 내선 안 될 말”이라며 “자기를 비판한 언론을 잡아넣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검경이 알아서 잡아넣는 국가가 된다는 의미인가”라고 비판했다. 

▲ 20일 동아일보 칼럼
▲ 20일 동아일보 칼럼

 

24일 한겨레 정치철학자 김만권 칼럼에서도 해당 발언에 대해 “원래 보복이란 ‘부당하게 당한 것’에 대해 가해자에게 돌려주는 행위인데 학력위조에 관해 김씨에게 가해진 부당한 일이 무엇인가”라며 “오히려 학력위조를 통해 김씨가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점에서 그 자신이 가해자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만 보는 것으로 녹취에 담긴 내용은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법과 공권력의 전횡을 일삼는 이기적 자존감’만 남은 전형적인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녹취록을 입수해 공적으로 문제삼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꾸준히 보도한 매체 중 하나다. 지난 19일 “김건희, 캠프 SNS담당자 교육 관여…친오빠도 참석”에서 김씨가 자신의 친오빠를 “(캠프를) 움직이는 사람들”, “헤드”의 한 예로 소개하며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한다”는 발언을 보도했다. 국민의힘 측은 “김아무개씨(친오빠)가 캠프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씨의 언론관도 보도했다. 지난 21일 한겨레는 김씨가 ‘언론플레이’를 통해 “그때 되면 우리(지지율)가 더 올라간다”며 “(비판보도를 해온 인터넷매체) 서울의소리가 원흉이야 지금 모든 내 소문에.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완전히 하하하. 무사하지 못할거야. 아마”라고 한 발언을 지적했다. 열린공감TV에 대해서도 “거기는 권력이라는 게 잡으면 우리가 안 시켜도 알아서 경찰(검찰)들이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김씨 본인의 해명이 필요하다. 

윤 후보의 장모(김씨 어머니)와 법적다툼을 해온 정대택씨 국정감사 증인 불발 관련 발언도 검증이 필요한 발언이다. 21일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해 9월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 정씨 증인 채택이 가결됐고, 10월5일 경찰청 국감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9월 통화에서 김씨는 이명수 기자에게 인사만 한 뒤 ‘황 비서’라는 사람을 바꿔줬는데 황 비서는 정씨 출석에 대해 걱정했고 이 기자는 “여야 합의로 채택됐다”며 번복이 어렵다고 답했다. 

▲ 21일 한겨레 기사
▲ 21일 한겨레 기사

 

그러나 10월2일 김씨는 이 기자에게 “정대택 증인이 거부됐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도 정씨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이 기자는 10월3일 통화에서 “증인 철회가 되지 않았다”고 하자 김씨는 “취소 안됐다고? 잠깐 끊어보세요. 제가 알아볼게요”라고 했다. 실제 10월5일 정씨 증인 출석은 철회됐다. 

한겨레 취재결과, 행안위 소속 여당의원들은 국감을 앞두고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정씨 증인 채택을 적극 반대했다. 국감 당일날 증인 채택이 전격 취소된 것인데 당시 정씨는 피감기관인 경찰청에 도착해있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씨 증인채택 철회에 김씨 개입)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며 “철저한 진상규명이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측은 “국감에서의 증인 채택·철회는 여야 간사 간 협의 후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이 증인철회 합의를 해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김씨의 통화내용을 토대로 언론은 질문을 던지고 후보는 답변을 하는 과정을 유권자들에게 공개하는 과정이 이뤄진 보도들이다. 

물론 한겨레도 MBC 스트레이트 보도를 비판했는데 보수성향 매체들과 포인트가 달랐다. 지난 20일 박찬수 칼럼 “김건희는 영악했고 MBC는 무기력했다”에서 “녹취파일이 제보받은 것이라 해도 발언 내용이 사실인지, 발언이 지칭하는 내용·맥락은 정확하게 무엇인기 추가 취재에서 독자에게 전달할 책임을 해당 언론에 있다”고 비판했다. ‘MBC가 김씨 옹호 방송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칼럼에선 “설령 보도에 따른 정치적 논란이나 법적 책임이 따르더라도, 그 결정권을 온전히 법원의 손에 맡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그 경계선을 끊임없이 확장해온 배경엔 공익을 앞세운 언론보도가 큰 역할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건희 녹취록 보도를 하는 기자들은 온전히 유권자 알권리 차원에서 보도에 대한 판단을 했는지, 법원의 가이드라인에 보도 범위를 맡긴 건 아닌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채 클릭수를 위한 발언을 제목으로 올린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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