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영화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 몇 가지가 있다. 사람을 뜯어먹는 이성 없는 좀비의 첫 등장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다. 뇌를 공격하면 좀비를 해치울 수 있다는 고전적 설정도 이때 함께 나왔다. 본격적으로 상업적 감각을 보여준 건 30여 년 뒤부터다. 대니 보일 감독 <28일 후…>(2002)의 좀비는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하는데 움직임이 아둔했던 존재들이 속도라는 무기를 지니게 되면서 관객의 공포가 배가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2004)는 쇼핑몰을 배경으로 한 <시체들의 새벽>(1978)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하면서 장르적 긴박감을 선사하고, 동시에 소비 중심 자본주의를 살던 인간들이 영혼 없는 좀비가 됐다는 원작의 맥락까지 계승한다.

좀비물의 시리즈화는 흥행의 결과물이다. 관객과 시청자가 꾸준히 찾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폴 앤더슨 감독과 배우 밀라 요보비치 부부의 팀플레이로 완성한 <레지던트 이블>(2002~2016)은 14년 동안 6편이 제작됐다. 할리우드 주류 장르는 아니었기에 당초에는 규모 있는 제작비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T바이러스에 맞서 좀비를 퇴치하는 과정의 창의적인 액션 설계와 주연 배우 밀라 요보비치의 수준급 액션 소화 능력으로 확실한 오락성을 보여줬다. 무려 시즌 11까지 나온 현재진행형 드라마 <워킹데드>(2010~)도 빼놓을 수 없다. 좀비 출몰 이후 한 공간에 모여 생존을 도모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과 배신, 협력과 생존에 집중한다. 좀비 장르 안에서 인간 군상을 생각하게 하는 깊이 있는 접근으로 사랑받고 있다.

▲ 미국 AMC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포스터.
▲ 미국 AMC ‘워킹 데드(The Walking Dead)’ 포스터.

좀비물이 코미디로 발전하면서 창작자의 독특한 세계관을 뽐내는 작품도 나왔다. 사토 신스케 감독 <아이 엠 어 히어로>(2015)는 택시기사 좀비가 “무사고 30년!”을 외치며 달려들고, 높이뛰기 선수 좀비가 주변의 박수를 유도하며 장벽을 뛰어넘어 생존자를 공격한다. ‘직업적 장인정신’이 빛나는 일본 문화에 발 디딘 감독의 창의적인 캐릭터 설정이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허접한 좀비물로 시작하는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7)는 모든 종류의 반전이 탁탁 맞아떨어지는 전개로 상황의 전말을 드러내는 극도로 영리하고 유쾌한 작품이다. 한국 팬덤이 형성돼 내한 GV까지 성사된 ‘변종의 승리’다. 브라이언 테일러 감독의 <맘&대드>(2017)에서 니콜라스 케이지, 셀마 블레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을 죽이러 쫓아다니는 부모 좀비로 변모하는데, 단전부터 삐져나오는 자식 키우는 자의 ‘깊은 빡침’이 장르적 연출 안에서 호기롭게 소화돼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등장한 건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부터다. 빠르게 달리는 기차 안에 좀비를 집어넣고 일직선 안에서 액션을 설계하는 구조적 혁신을 선보였다. 칸영화제 초청 이후 외국 영화인들도 바로 알아듣는 한국 영화 중 하나가 ‘Train To Busan’(영어 제목)이 됐을 정도다. 이후 넷플릭스를 타고 해외에 공개된 김성훈, 박인제 감독의 <킹덤>(2019~) 시리즈는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맞물린 사극 좀비물 특유의 볼거리를 전파하면서 입소문을 탔다.

▲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포스터.
▲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포스터.

독특한 건, 오래전 할리우드의 비주류였던 좀비물이 한국에서는 오히려 자본의 힘을 업고 제작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부산행> <킹덤> 모두 백억 대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그런 토양에서 같이 발전한 장르가 <스위트홈>이나 <지옥>같은 크리쳐물일 것이다. 다채로운 괴생명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좀비물보다 더 상위 범주인 크리쳐물은 괴이한 존재의 출몰과 그에 따른 긴장감을 충분히 즐길 줄 알게 된 대중의 새로운 취향에 부응하고 있다.

또 하나의 한국 좀비물이 설 연휴 공개된다. 이재규, 김남수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고등학교 배경에 10대 주인공 좀비물이라는 점이 새로운데, 혼란에 빠진 주인공이 한국 좀비물의 시초가 되는 작품의 제목을 호명하면서 그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대목이 눈에 띈다. 한국에도 좀비영화 계보가 형성될까. <부산행>과 <킹덤>에 이어 <지금 우리 학교는>이 걷게 될 길에 주목한다.

▲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포스터
▲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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