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인 김건희씨 녹취록의 파장 속 야권 이사들이 KBS의 보도 기조를 따져 묻는 ‘촌극’이 벌어졌다.

19일 KBS 이사회는 지난해 수립한 ‘대선방송 공정성 확보방안’ 추진 상황을 보고 받았다. △선거방송준칙·선거보도준칙 개정 △대선특별취재팀·정책검증전담팀 구성 △여론조사·대선보도 각 자문단 구성 △팩트체크 강화 등이 골자다.

보고 이후 질의에선 최근 논란이 된 ‘김건희 녹취록’ 보도가 등장했다. ‘서울의소리’ 기자가 김건희씨와 나눈 통화 녹취를 지난 16일 MBC ‘스트레이트’가 보도했고 KBS는 스트레이트 방영 직후 ‘뉴스9’을 통해 관련 내용을 전했다.

류일형 이사는 “MBC 보도에 논란이 많았지만 (제보자가) KBS는 아예 그런 걸 못한다고 생각하고 MBC로 달려간 건가라는 여론도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후속취재에 나서야 한다는 모니터링 보고서를 공개했다”며 “소위 말하는 ‘한 방’이 있는 ‘임팩트’ 있는 보도를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KBS
▲서울 영등포구 KBS 본사 사옥 ⓒKBS

이에 손관수 보도본부장은 “인터뷰와 녹취록에 대해 나름의 보도 기준에 입각해서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임팩트’ 있는 보도에 대해 말씀 주신 것은 전적으로 공감하고 분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석래 이사는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내용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손 본부장이 “임팩트 있는 보도 부분이 적기 때문에 노력하겠다는 것”이라고 답하자, 이 이사는 “대장동 사건부터 임팩트 있게 해야지, 지금 와서 기준을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떡하나”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권순범 이사도 “(김건희 녹취록을) 보도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며 보도본부장 답변을 반복적으로 요구했다. “나름의 보도 기준에 입각”했다는 앞선 손 본부장 답변을 두고 “나름대로 무슨 보도 기준으로 김건희 관련 녹취를 9시뉴스에 보도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손 본부장은 이에 “저희가 갖고 있지 않은 녹취를 어떻게 소화할지 고민을 했다”면서 “하나하나 여쭤보시면 제가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 보도가 굉장히 흔들릴 수 있다”고 답했다.

공교롭게도 김건희 녹취록에 대한 KBS 보도 문제를 따진 두 이사 모두 야권, 국민의힘 추천 몫으로 분류되는 이사들이다. KBS 이사회는 여권 7명, 야권 4명 구도로 ‘정치적 후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고질적으로 받아왔다. 이런 환경에서 야권 추천 이사들이 야권 후보 의혹 보도를 비판 내지 질책하는 상황은 특정 정당을 대변한다거나, 정파적 시각으로 보도에 개입하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대선 후보 TV 토론'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 제목들
▲'대선 후보 TV 토론'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 제목들

김의철 KBS 사장은 이날 “대선 공정성 관련 여러 다양한 보고를 드리는 이유는 이사님들의 지혜, 지적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자리에서 ‘왜 이 아이템을 안 하느냐, 왜 했느냐’ 이런 지적은 저희로선 참 곤혹스럽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저희가 마련한 준칙을 일상적으로 내재화하면서 열심히 보도하겠다”며 “특정 아이템별로 지적하는 것들은 굉장히 곤혹스러우니 그런 부분은 조금만 KBS 보도본부 구성원들 믿고 자제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후보간 이견에 파행 이어진 TV토론…KBS “상당히 난항”

선거일까지 50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대선 후보자 TV토론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지상파 3사에 설 연휴 기간인 이달 30일, 31일을 토론일로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3사(KBS, MBC, SBS)는 연휴 전인 27일을 제안했고 민주당은 수용했으나, 국민의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안철수 후보가 있는 국민의당, 심상정 후보가 있는 정의당 등은 ‘양자 토론 담합’이라 규탄하고 있다.

손 본부장은 현 상황을 “상당히 난항”이라 표현했다. 류일형 이사는 “양당 후보 만으로 3사 공통 초청토론이 이야기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안철수 후보 쪽에서 법적 대응 이야기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다. KBS만 의지를 갖는다고 된다는 보장은 없겠지만 보도준칙을 개정(군소후보 기회 마련 등)한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여론을 반영시키는 방향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삼프로TV’와 같은 유튜브 방송의 대선 후보 인터뷰가 큰 화제가 된 것과 관련해서도 류 이사는 “인터뷰 방식이나 여러 성공요인 분석이 이뤄지고 있는데 국민 알 권리를 잘 긁어주는 보도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TV토론 과정에서 제기된 주장을 시시각각 팩트체크하는 전담팀을 구성해야 한다”(김찬태 이사 제안)는 제안도 나왔다.

김의철 사장은 “현재 토론 관련해선 굉장히 ‘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애초에 KBS 선거기획단이 토론을 하자고 요청했을 때에는 우리 기준에 따라 자격을 갖춘 네 명의 후보에게 보낸 걸로 안다. 특정 후보가 응하지 않아서 그 후보만 빼고 토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저희가 선거토론을 주도할 수 없는 매우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서 사안을 봐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손관수 본부장은 “유튜브가 가져다준 충격과 영향은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다. 지난번 9시 뉴스는 정책위주로 후보자를 초대해 (20분간 후보들의) 경제, 부동산 생각이 드러나게 했다”며 “국민 알권리를 위한 기획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팩트체크 전담팀에 대해선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