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획보도 50여건을 일괄 삭제한 결정을 두고 서울신문 기자들이 편집권 침해 규탄 성명을 냈다.

2019년 입사한 서울신문 52기 기자 5명 일동은 18일 오후 5시30분께 사내 게시판에 “서울신문 편집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52기는 현 상황을 경영진에 의한 편집권 침해로 보고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며 “(기사 삭제는) 편집국 기자들과 공론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통보였다”고 했다. 

이들 기자는 “황수정 편집국장은 16일 저녁 부장단 회의에서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획’ 온라인 기사를 일괄 삭제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다”며 “이후 홈페이지에서 2019년 7월15일부터 11월25일까지 ‘특별취재팀’(호반TF) 바이라인을 달고 출고된 기사 50여건이 모두 삭제 조치됐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그 중 20여건은 서울신문이 1면에 보도한 기사다.

52기 기자들은 황수정 편집국장이 앞서 보도 삭제 결정을 두고 “편집권 침해 문제는 아니다”라고 주장한 데에 “동의할 수 없다. 현 상황을 경영진에 의한 편집권 침해로 보고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사 삭제는 부끄러운 일”이라며 “사주와의 관계를 고려해 기사 게재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할뿐더러 그 자체로 자본 권력에 의한 편집권 침해”라고 했다.

성명에 따르면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이 먼저 보도 일괄 삭제를 요구했고, 사장·상무·사주조합·노조·호반TF팀장·편집국장이 참여하는 ‘6인 협의체’에서 다수결로 삭제를 결정했다. 기자들은 “소수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졸속으로 기사 삭제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 사장이 기사 삭제를 요구 내지 지시하고 편집국이 이를 그대로 따르는 상황을 우리는 ‘편집권 침해’라고 부른다”고 했다.

▲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서울신문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기자들은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께 묻는다. 서울신문의 편집권은 누구에게, 누구를 위해 있느냐”라며 “앞으로 사장이 요구하면, 그래서 또다른 ‘협의체’에서 결정하면, 그리고 기자가 동의하면 혹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서울신문 기사는 ‘이해관계’에 따라 내릴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번 기사 삭제 사태의 구체적인 전말에 대한 경영진과 편집국장의 책임 있는 설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성명을 낸 서울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우리가 정성들여 쓴 기획기사가 어떠한 프로세스도 거치지 않고 삭제된 것에 다함께 공감하고 분노한 것“이라며 ”선배들도 다들 성명 잘봤다고 연락 줬다. 다들 현장에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쇄된 신문은 되돌릴 수 없고, 거기에 신문의 가치가 있다. 디지털화 될 수 없는 뉴스의 가치가 존재하는데 서울신문은 이를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입사한 48기 기자들도 이날 저녁 6시40분께 ‘편집국장, 사장, 노조에 묻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내고 “먼저 문제제기 못한 데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힘 뒤 “부끄럽다. 편집권 침해가 아니면 (6인 협의체의) ‘협약’의 문제일까. 그렇다면 해당 협약은 ‘편집권을 침해하기로 한 협약’이냐”고 사측에 되물었다. 

48기 기자들은 “편집권 침해에 대해 ‘계급장을 떼고 막겠다’던 황 국장께 공식적인 의견 표명을 요구한다”며 “사장이기에 앞서 기자 선배인 곽태헌 사장, ‘공식 입장이 없다’고 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의 의견도 함께 묻는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구성원에 따르면 서울신문 편집국 내 다른 연차 기자들도 기수별 연서명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같은 날 기사 삭제 사태에 성명을 내고 “편집권을 잃은 무리가 스스로를 공익을 추구하는 공영 신문(서울신문 비전)이자 공익 정론지라고 일컬을 수 있느냐”고 되물으며 경영진을 향해 “118년 서울신문에 먹칠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