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이 지난 2019년 연속 보도한 호반그룹 검증 기획기사를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대주주로 올라선 뒤 앞서 보도한 해당 기업체 비판 기사를 모두 삭제키로 결정한 데 편집권 훼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황수정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미디어오늘에 해당 결정이 “편집권 (관련된) 부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황수정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지난 16일 저녁 편집국 부장단 회의에서 “호반 측이 삭제를 요구해왔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를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취재에 따르면 황 국장은 “편집권 침해 문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황 국장은 ‘6인 협의체’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며, 편집국 내 일각에선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결론은 이렇게 났다”고 이 자리에서 밝혔다. 황 국장에 따르면 6인 협의체에는 서울신문 곽태헌 사장과 황수정 편집국장, 호반건설 검증 보도 당시 TF팀 대표 등이 참석했다.

▲지난 2019년 7월15일 서울신문 1면 머리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 갈무리
▲지난 2019년 7월15일 서울신문 1면 머리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 갈무리

앞서 서울신문은 지난 2019년 7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지분을 사들여 3대 주주로 올라서고 ‘적대적 M&A’ 시나리오가 일던 당시 특별취재팀을 꾸리고 ‘주주 검증 작업’에 나선 바 있다. 서울신문은 호반그룹의 일가 경영승계와 일감몰아주기 등등 호반 측의 각종 비리 의혹을 1면에 연속 보도했다. 이 같은 특별취재팀 기사는 30여건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에 호반그룹이 서울신문 대주주로 올라선 뒤 대주주에 불리한 기사를 모두 삭제하기로 결정하면서 서울신문 편집권이 대주주 입맛 따라 움직인다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복수의 서울신문 구성원에 따르면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지난해 11월 호반건설 대해부 보도에 참여했던 일원에게 그룹 대해부 기사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수정 편집국장은 호반건설의 서울신문 인수 직후 이뤄진 편집국장 청문회에서 “편집권(독립)은 걱정 말아 달라”며 대주주로부터 편집권 침해를 막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 관련 기사 : 호반건설 승계 검증, 서울신문 “대주주 적합한가” ]

해당 공지를 접한 한 서울신문 기자는 “우리 신문의 대형 기획보도를 이렇게 마음대로 없애는 게 편집권 침해가 아니라는 편집국장의 인식을 듣고는 아연했다”며 “기사는 국민과의 약속이고 국민의 알권리이지 모회사와 신문사 사이 거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 국장은 이 같은 결정을 한 경위와 이유를 묻는 취재에 “경영진부터 시작해 편집국 간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대주주의 편집권 침해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선 “편집권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자사 홈페이지에서 대주주인 호반건설 비판 보도 카테고리와 관련 제보 안내 문구를 삭제한 바 있다. 당시 황 국장은 당시 관련 입장을 묻는 미디어스 취재에 “그게 중요한가. 기사는 다 살아있다”고 답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지부장 김준)는 사측의 이 같은 결정을 두고 미디어오늘에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17일 오후 8시37분 기사 일부 수정)

(27일 오후 4시 기사 일부 수정)

미디어오늘은 서울신문 황수정 편집국장이 "편집권 침해문제가 아닌 상생을 위한 판단"이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편집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황 국장 본인을 포함해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로 확인했습니다. 다만 “상생을 위한 판단의 문제"라는 대목은 간접적으로 확인한 발언이나 발화 주체인 황수정 국장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어 직접 인용의 표현으로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삭제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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