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들 하세요. 윤 후보만 수렁에 빠트리는 겁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알고 있었다. 홍 의원은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냥 헤프닝으로 무시하고 흘려 버렸어야 했을 돌발 사건을 가처분 신청하여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어 놓고 이를 막으려고 해본들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 지금 언로를 막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라고 적은 뒤 “참 어이없는 대책들만 난무한다”며 윤석열 캠프를 비판했다.

▲지난해 12월26일 김건희씨가 대국민 사과에 나선 모습을 한 시민이 TV로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26일 김건희씨가 대국민 사과에 나선 모습을 한 시민이 TV로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캠프의 대응은 실제로 모두 실패했다. 윤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 씨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대표적이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심리에서 김씨 측은 △동의 없는 불법 녹음을 기초로 한 방송은 음성권 침해이며 △방송 내용에 결혼 전 사생활 등을 포함한 것으로 보이며 △반론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명예 및 인격권 침해 우려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미디어법률단장인 홍종기 변호사는 이날 “기자가 하는 모든 통화가 취재는 아니다”라면서 “연약한 여성의 인격을 짓밟는 방송은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는 △녹음파일은 대화 당사자인 김건희-이명수(서울의소리 기자) 사이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고 △MBC가 (김씨의) 사적 내용은 방송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고 △음성권 침해가 있더라도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면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으며 △MBC가 지난해 12월29일부터 김씨에게 반론을 듣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했고 △김건희씨는 공적 인물로, 김씨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는 공적 관심 사안에 해당해 사적 영역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법원의 판단을 수많은 언론이 인용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와 관련된 수사 사건에 대한 김씨 발언은 방송금지가 필요하다고 봤다. 형사 절차상 진술거부권 침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유권자의 적절한 투표권 행사에 필요한 정치적 견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발언 역시 방송금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MBC 탐사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예정대로 16일 방영할 수 있게 됐다. 국민의힘의 가처분 신청은 ‘김건희 7시간 통화녹음’ 보도행위에 대한 공익적 가치, 법적 정당성을 강조해준 꼴이 되었다. 이는 ‘유력 대선 후보 배우자’를 ‘연약한 여성’에 빗댈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된 결말이었다.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 등이 MBC 상암 본사 진입을 저지하려는 시민와 취재진 등 인파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 ⓒ김용욱 기자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 등이 MBC 상암 본사 진입을 저지하려는 시민와 취재진 등 인파에 휩쓸리고 있는 모습. ⓒ김용욱 기자

14일 항의방문도 패착이었다. MBC 홍보팀으로 나선 것은 물론이고, 지난해 언론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국면에서 “언론 자유”를 주장하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자신들이 사실은 언론 자유에 관심도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날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들은 ‘돌아가십시오! 부당한 방송장악입니다!’라고 적힌 손팻말로 국민의힘 대표단을 가로막았고, 몇몇 시민들은 ‘국민이 MBC를 사수한다’, ‘국힘당은 부당한 방송장악 시도 중지하라’는 손팻말로 함께했다. 결국 소란만 남긴 채, 대표단은 MBC사장과 30여분의 짧은 면담을 마치고 조용히 상암동 사옥을 빠져나갔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14일 성명에서 “아직 방송도 되지 않은 보도에 대해 대한민국 입법부가, 그것도 방송과 언론 관련 법안을 담당하는 과방위와 문체위 소속 의원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려가면서까지 공영방송을 상대로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라며 항의방문을 비판한 뒤 “대통령 후보 배우자에 대한 검증 수단이 후보 배우자가 사적으로 통화한 녹취 파일이라 하더라도, 발언 내용 가운데 공적 영역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입수한 언론에겐 보도할 ‘의무’가 있고 국민에겐 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MBC가 방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셈이다. 

최승호 뉴스타파PD(전 MBC사장)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했으면 결정을 기다리면 될 것을 굳이 국민의힘 대표단이 MBC까지 가야 했을까”라고 되물으며 “한나라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수정당들은 불리한 방송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방송사를 쳐들어가곤 했다. 입으로는 늘 자유를 외치지만 언론 자유는 안중에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스스로 광고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아마도 최PD가 떠올렸을 사건 중 하나는 2004년 3월 한나라당의 MBC 항의방문일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은 ‘역풍’이 불자 ‘편파방송 탓’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 3월 MBC를 항의방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 ⓒYTN 돌발영상 화면 갈무리
▲2004년 3월 MBC를 항의방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 ⓒYTN 돌발영상 화면 갈무리

최승호PD는 “며칠 전에는 윤석열 후보 측이 ‘KBS가 국제뉴스를 30% 방송하게 해야 한다, 사극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방송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공약을 내놨다. 윤 후보는 아직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의힘에서 정치를 오래 한 정치인들도 언론과 공영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생각이 이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그렇게 언론을 장악해 최소한의 비판도 불가능하게 한 것이 결국 국정농단과 촛불 혁명으로 이어졌는데, 아직도 스스로의 문제점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16일 논평을 내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순수한 의도라면 MBC는 왜 즉시 보도하지 않고, 대선에 임박한 설 명절 직전 2주로 편성 시기를 골랐는가”라고 물었다. 이번엔 시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대변인은 또한 “이재명 후보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형수에 대한 욕설에는 왜 침묵하는가”라고 묻는가 하면 “짜깁기 왜곡 방송으로 ‘채널A 사건 시즌2’를 기획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관심은 ‘도대체 7시간 동안 뭐라고 했길래 저렇게 방송을 막으려 할까’인데, 캠프에선 엉뚱한 프레임 전환만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내에서도 통화녹음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지 못해, 방송의 파괴력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한겨레)에서 과거의 대응 방식을 답습한 결과, 결국 국민의힘은 ‘스트레이트’ 방송 홍보만 해줬다. 김씨측이 제출한 가처분신청서를 보면 채무자인 MBC 대표이사 이름도 ‘박성제’가 아닌 ‘박성재’로 잘못 적혔다. 국민의힘이 이번 대응에 얼마나 허둥지둥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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