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약 매체 ‘약업신문’이 해고(해직) 시 이의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하고, 이를 거부한 기자에게 수개월간 권고 사직을 종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A기자는 지난해 4월 약업신문에 취재기자로 입사했다. 출근 첫날 사측은 A기자에게 근로계약서와 별도의 ‘서약서’를 내밀었다. 다섯 개 조항으로 작성된 서약서엔 사규 준수와 업무상 기밀 유지 뿐 아니라 ‘직무상 부적당으로 인정돼 해직 당하는 경우 결코 이의를 제기치 않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어떤 업무인지 특정하지 않은 채 ‘회사 허가를 받지 않고 회사 이외의 업무에 관계치 않겠다’는 조항도 이어졌다.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서약과 관련해선 ‘연대 보증인’ 두 명과 이들의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고의, 부주의 또는 해태로 인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는 즉시 이를 변상하겠다. 퇴직한 후에 발견된 경우에도 역시 동일하다’며 ‘본인이 기의무를 이행치 못할 경우에는 보증인이 연대하여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겠다’는 항목이 있었다. ‘기타 본인 일신상의 사고로 인한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문구 아래엔 보증인 두 명의 이름, 주소, 주민등록번호, 서명란이 있었다.

▲ 7일 약업신문 A기자가 입사 당시 요구 받았던 서약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7일 약업신문 A기자가 입사 당시 요구 받았던 서약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 서약서는 여러 조항에 걸쳐 위법적인 소지가 많다. 해직에 이의제기를 금한 조항은 헌법상 재판청구권 침해 우려가 있고 근로계약 체결 과정에서 궁박한 사정의 노동자에게 공정하지 않다는 점 등에서 민법상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및 불공정 법률행위로 볼 수 있다. 연대보증인을 세우지 않으면 근로계약 체결이 어렵게 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회사 이외의 업무’ ‘기타 본인 일신상의 사고’ 등 사측이 향후 무엇을 서약 위반이라 할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포괄적이고 모호한 단서들은 노동자로서 불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결국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은 A기자는 이후 수개월에 걸쳐 사측의 서약서 제출 요구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그는 “서약서 대신 사비를 들여 신원보증보험을 들어오겠다고도 했다. 회사는 무조건 보증인 두 명 가져오라고만 했다”며 “일을 하는 동안에도 잊을만 하면 서약서를 얘기하고 또 얘기해 출근할 때마다 불안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약 7개월이 지난 11월, 사측은 A기자에게 사직서를 요구했다. ‘해고를 하기로 했으니 사직서를 제출하라’며 권고사직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실제 관련 녹취록에 따르면 사측이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권고사직이다”라며 사직서를 요구하고, A는 ‘해고라면 해고통지서를 달라’고 응하는 대화가 반복된다. A에게 통지되거나 소명 기회가 주어진 정식 인사위원회 절차 등은 없었다.

A기자 측에서 사건을 대리하는 최진수 노무법인 노동과인권 노무사는 “법적으로 의무 없는 서약서 제출을 강요하는 것도, 권고사직을 요구하는 것도 직장내괴롭힘에 해당한다”며 “권고사직은 근본적으로 당사자의 수락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회사가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것 자체가 권고사직에 맞지 않는 반복적인 괴롭힘”이라 지적했다.

▲약업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약업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A기자는 사측의 사직서 요구가 이뤄지는 동안 일부 업무 배제 등의 괴롭힘 양상도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국장, 사장 등에 의해 기자들이 참석하는 주간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고, 온라인 기사 발행 권한도 박탈 당했다는 것이다. A기자는 지난달 사직서·권고사직 강요, 업무배제 등으로 서울고용노동청에 약업신문 관계자들에 대한 직장내괴롭힘 진정을 냈다. 현재 사내 조사가 진행 중이다.

A기자는 “여기저기 상담을 받았는데 ‘하루하루 지옥 같지 않던가요’란 물음이 돌아왔다. ‘요즘엔 해고 통지서 안 준다, 괴롭혀서 내보낸다’고 말한 분도 있었다”며 “직장내괴롭힘법은 완성되지 않았고, 조사 받는 동안 괴로움이 더 클 것이라 말씀한 분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이어 “출근 첫날 회사는 단 한 번도 송사에 휘말린 적이 없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며 “제약 분야가 너무 좁아서 부당한 일을 겪어도 밝히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번 만큼은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약업신문 사측은 서약서와 권고사직 요구가 있었던 사실을 인정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A기자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약업신문 관계자는 12일 “회사에서 채용 할 때 구비서류 중 하나로 포함된 게 서약서”라며 “능력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 불협화음이 터지고 문제가 있던 부분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서 권고사직을 요청한 것”이라 강조했다.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직장내괴롭힘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약업미디어가 운영하는 약업신문은 1954년 설립됐다. 약업미디어 공동대표이사는 함용헌 명예회장의 두 아들인 함태원 최고경영책임자(CEO)와 함성원 최고콘텐츠책임자(CCO)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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