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구는 1인가구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1인가구가 31.7%로 가장 많고, 2인가구가 28%로 뒤를 이었다. 1~2인가구가 60%에 육박한다. 4인가구는 15.6%, 5인 이상 가구는 4.5%에 불과했다. 2015년 조사이후로 1인가구가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그 이전에는 가장 많은 가구형태가 2인가구였다. 이성간 혼인과 출산을 통해 4~5인이 한 가족을 꾸리는 ‘정상가족’에서 동떨어진지 오래된 것이다. 

철 지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탓에 여전히 2030 세대들에게 사회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압박하고, 다양한 가족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코로나로 공적돌봄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사회가 담당할 돌봄을 아직도 가족에게만 떠맡기는 무책임한 상황을 지속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현실의 부조리를 개혁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대선판에서 주요 후보들은 ‘정상가족’의 틀을 깨지 못하는 모습이다. 

▲ 더이상 4~5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은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아니다. 사진=pixabay
▲ 더이상 4~5인으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가족'은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아니다. 사진=pixabay

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은 “혼인이란 여전히 남녀의 결합을 그 근본요소로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김용민씨(건강보험직장가입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동성인 소성욱씨를 사실혼 배우자로서 피부양자에 해당한다고 신청했지만 공단은 신고를 반려했고, 소씨를 별도 지역가입자로 분류했다.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이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법체계상 혼인신고는 ‘허가’가 아닌 ‘신고’처럼 돼 있지만 동성 간에는 ‘허가’처럼 작용하고 있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들 간의 사실혼 관계마저 인정하지 않겠다는 판결이자 ‘정상가족’이 아닐 경우 돌봄을 제공할 수 없다는 판단이기도 하다.  

진보정당들은 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오승재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성적지향과 가족형태를 이유로 동성부부를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계속 방치하겠다는 차별적 선언”이라고 했고, 오준호 기본소득당 대선후보는 “법원은 그저 ‘혼인은 남녀의 결합’이라는 시대착오적 이유로 두 사람의 국민이 누려 마땅한 권리를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재연 진보당 선대위에서도 “동성 동반자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 법안이 부재한 현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당은 생활동반자제도, 정의당은 사실상 같은 내용의 ‘시민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 제정, 진보당은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제법 제정 공약을 언급했다. 생활동반자법은 지난 2014년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준비했지만 기독교계 등의 반발로 발의조차 못한 법으로, 여성과 남성의 혼인으로 구성한 가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동반자로 등록하면 기존 가족에 준하는 보호자의 권리를 제공하는 제도를 말한다. 프랑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 시행하고 있는 유연한 가족제도다. 

▲ 생활동반자법을 주장하는 오준호 기본소득당 대선후보와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 사진=기본소득당
▲ 생활동반자법을 주장하는 오준호 기본소득당 대선후보와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 사진=기본소득당

오 후보에 따르면 생활동반자제도를 도입하면 생활동반자들은 주택청약과 전세자금 대출에서 기존 혼인 부부와 동등한 자격을 얻고, 소득을 함께 신고해 세재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얻고 국민연금이나 사회보험 수급권을 가진다. 법정대리인으로 중요한 의료행위에 동의권을 부여하며 동반자 사망시 상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상가족’이 더 이상 보편적인 가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 후보는 “더 이상 한국 사회는 남녀의 결합만으로 가족을 설명할 수 없다”며 “청년 동거커플, 노인 동거인, 동성 커플, 비혼 공동체, 성소수자 공동체, 미혼부모, 한부모가족 등 수많은 가족공동체가 함께 살아가고 있고 국민 10명 중 7명이 혈연이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동성부부의 사실혼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에 침묵했다. 여러 대선 후보들이 제안한 생활동반자법(시민동반자법)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이 후보는 “국회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이고 윤 후보는 “개인자유 침해 소지가 있다”며 비판적 입장이다. 

▲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사진=pixabay
▲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사진=pixabay

한편 가족제도와 돌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또 하나의 공약도 대선판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후보는 11일 고독처 신설을 공약했다. 김 후보는 “1인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32%,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2880명에 달하고 급속한 노령화에 따라 앞으로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 자명하다”며 “범부처 차원에서의 종합적 대응을 위해 전담부서를 만들겠다는 것을 공약에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비슷한 취지의 제도로 영국은 체육시민사회부 장관이 고독부 장관(외로움 담당 장관, Minister of Loneliness)을 겸직하고 있고 해당 부서 주도로 영국 통계청은 외로움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외로움은 단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1인가구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정부가 나서겠다는 개념이다. 일본에선 1990년대부터 ‘고독사 제로 프로젝트’를 운영해 지역주민과 사회복지공무원, 우유·신문 배달업체나 가스검침원 등이 고독사(고립사) 위험 가구를 살피며 1인가구, 특히 독거노인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 후보는 “청년들의 고독사, 사각지대에 놓인 ‘1인가구’의 고단한 삶은 계속되고 있다”며 “여성가족부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풀기 위해 고독처 신설을 제안한다”고 했다. 여가부의 역할을 해야 할 곳이 필요한데 여가부가 미흡하다면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 후보는 “현 여가부 역할에 조정이 필요하다면 정치권과 협의해 대안을 만들면 되는 것”이라며 “고독처 신설 공약을 계기로 생산적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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