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한 기자를 원망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지난 2017년 10월31일 새벽 스스로 세상을 떠난 57세 손진기씨. 대구에 위치한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책임 행정원으로 17년 동안 건물 대관업무를 해온 그는, 쿠키뉴스 A 기자의 ‘표적’이 됐다.

A 기자는 자기 지인이 손씨로부터 ‘원하는 날짜에 이미 예약이 있어서 센터 대관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이유로 손씨에게 폭언을 가했고, 손씨 상사까지 찾아가 인사 불이익을 요구했다.

손씨를 겨냥해 A 기자의 보복 기사도 이어졌다. 2017년 10월 ‘손씨가 금품을 수수하며 자의적으로 대관업무를 하고 있다’거나 ‘한국패션센터가 잘못 운영되고 있는데도 연구원이 손씨를 감싸고 있다’는 취지의 ‘허위’ 기사 두 건(편집자 주 : 이듬해 김씨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판사는 손씨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판단했다)이었다. 손씨는 목숨을 끊기 두 시간여 전 A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 손진기씨가 2017년 10월 새벽 A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메시지 전송 후 손씨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조합 제공
▲ 손진기씨가 2017년 10월 새벽 A 기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메시지 전송 후 손씨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한국패션산업연구원 노동조합 제공

손씨 죽음을 부른 허위기사 두 건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당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썼지요. 언젠가는 많은 사람이 상처받는 글을 못 쓰도록 할 것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당신 글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봤는지요. 당신이 쓴 글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을 바랍니다. 당신은 펜을 든 살인자요.”

한 기자의 갑질과 비뚤어진 윤리의식에서 비롯한 이 사건에 사회적 공분은 컸다. 쿠키뉴스는 사건 발생 직후 A 기자 사표를 수리하고 “고인과 유가족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취재 과정에서 A 기자의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고, 기사 작성 동기도 불순했다고 인정했다. 여기까지는 2017년 11월 언론 보도로 알려진 내용이다.

그로부터 4년. 일단락된 줄 알았던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 A 기자는 공갈미수, 명예훼손, 강요미수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대구지법은 지난 2018년 6월 A 기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형사 1심 판결문을 보면 A 기자는 이 사건에 앞서 2017년 8월에도 자신의 지인에게 돈이나 토지를 제공하게끔 할 목적으로 모 업체 대표 출신 인사를 겨냥해 비판 기사를 쓰고 “오늘 추가 기사가 또 올라갈 것 같다”고 협박하는 등 공갈미수 혐의도 받았다.

A 기자는 2017년 10월 손씨에 관한 기사를 쓴 뒤에도 손씨에게 전화를 건 뒤 “내가 부탁했을 때 당신이 들어줬으면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일을 왜 자꾸 키우느냐. 추가 기사를 쓸 예정인데 더 할 말 있느냐”고 협박한 바 있다. 그의 취재가 상습적 협박에 가깝다고 볼 정황이다.

1심 판사는 A 기자의 공갈미수 혐의와 손씨를 상대로 한 강요미수 및 명예훼손 혐의 등을 인정하며 “언론 매체를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악용했고 명예를 심하게 훼손당한 피해자(손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며 A 기자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A 기자와 검사 모두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는 2018년 9월 모두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밝히며 A 기자 항소를 기각했다.

“피고인(A 기자)은 언론 매체를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악용하며 언론기관이 가지는 권위, 광범위하고도 신속한 전파력을 남용했다. 그뿐 아니라 피고인은 기자로서의 인맥을 동원해 강요미수 등 사건 피해자(손씨) 명예를 훼손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사과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이로 인한 심리적 고통 등으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A 기자가 “범행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A 기자 지인과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 검사 측 항소도 기각했다.

▲ 2017년 11월 대구 패션센터에 자리를 잡았던 고인의 빈소. 사진=미디어오늘
▲ 2017년 11월 대구 패션센터에 자리를 잡았던 고인의 빈소. 사진=미디어오늘

징역1년과 1억3000만원 배상책임

손씨 아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A 기자를 기다렸다. A 기자의 강요와 협박, 음해성 기사 등 불법행위로 인해 아버지가 고인이 된 만큼 A 기자가 아버지와 자신에게 3억2500만 원여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었다.

반면, A 기자는 허위 기사가 아니고 협박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형사재판에서의 입장과 달라진 것. 판결문에 따르면 A 기자는 양형상 유리한 판단을 받기 위해 앞선 형사사건에서 이를 다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구지법 제14민사부는 지난해 11월 A 기자가 손씨 아들 정현(가명)씨에게 1억3000만 원을 지급할 책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 기자가 ‘기사는 허위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입증할 만한 아무런 자료를 제출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판시하며 A 기자의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망인(손씨)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이자 최종적 원인은 피고(A 기자)가 작성한 기사로 보인다”며 “유족인 원고(아들 정현씨)에게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이번 소송에서 다시 허위 기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더 큰 고통을 주고 있다”고도 했다. 정현씨는 항소했지만 대구고법 제3민사부는 지난 6월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은 그렇게 확정됐다.

더팩트로 돌아온 A 기자… 우려의 목소리

이 사건이 다시 회자된 까닭은 A 기자가 지난달부터 더팩트 대구경북취재본부 기자로 취재 활동을 재개해서다. 더팩트에 따르면 A 기자는 대구경북취재본부 본부장과의 과거 근무 인연으로 다시 기자로 활동할 기회를 얻었다. A 기자가 이미 법적 책임을 모두 졌다는 점, 지역본부 본부장이 특별히 A 기자를 감시·관리하고 있다는 점, 본부장 판단에 손씨 사건을 이유로 A 기자의 모든 기회를 뺏는 것은 가혹하다는 점 등을 감안해 이뤄진 채용이라는 것이다.

대구 지역 기자들 생각은 다르다. 대구 지역의 한 기자는 16일 통화에서 “지역에는 각종 현장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영업’ 활동을 하는 사이비 기자가 적지 않다”면서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문제를 일으킨 기자가 다시 기자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동업자로서 모멸감을 느끼고 현장에서 마주칠까봐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이미 처벌을 받은 그가 다른 생업을 이어가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다”며 “하지만 그는 언론 윤리를 위반했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생을 마감했다. 언론윤리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젊은 기자들은 박탈감과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 뉴스타파 2017년 11월17일자 보도.
▲ 뉴스타파 2017년 11월17일자 보도.

유족 정현씨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그는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 기사로 사람까지 죽인 범죄자가 다시 기자로 활동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형사처벌을 감형 받기 위해 법정에서만 반성하는 척, 죄를 뉘우치는 척했던 파렴치한 인간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기자를 할 수 있다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고 했다.

A 기자는 미디어오늘 취재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15일 통화에서 “내가 기자로 활동하는 것과 미디어오늘이 무슨 상관 있느냐”며 “난 고인(손씨)을 다시 거론하기 싫다. (손씨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때문에 처벌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잘못을 인정한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구속된 상태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형량이 높아지는 것 밖에 더 있느냐”고 했다. “형사처벌 받으면 기자를 못한다는 규정이 있느냐”고도 항변했다. “나도 이 사건으로 상처를 입었다”며 자신의 무고함을 강조했다.

통화 이후 A 기자는 문자를 통해 “이 사건으로 끔찍할 만큼 아픔을 겪었다. 두 번 다시 거론하기 싫다. 다시 거론하지 말아달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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