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천안함 잠수함 충돌설을 주장하는 영상에 종전 결정을 뒤집고 ‘접속차단’ 결정한 것을 계기로 심의 잣대로 적용된 ‘사회적 혼란 야기’ 조항의 자의성에 재차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소위원회는 지난 9일 회의에서 ‘유해정보’를 심의하면서 천안함 잠수함 충돌설을 주장한 유튜브 영상 8건에 대해 시정요구(접속차단)를 결정했다. 앞서 통신소위는 10월28일 다수 의견으로 같은 건에 ‘해당없음’을 결정했다가, 조선일보가 열흘 뒤 ‘5·18민주화운동 사건 심의와 이중잣대’라고 주장하는 보도를 내고 천안함재단이 새로운 민원을 제기하자 판단을 뒤집었다.

통신소위가 적용한 ‘사회혼란 야기’ 조항은 오래 전부터 논란 대상이었다. 통신심의 규정은 ‘사회질서 위반’ 대분류 아래 ‘그밖에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유해정보로 판단하도록 했다. 그런데 ‘사회 혼란’이 그 자체로 문제라 하기도 어려운 데다,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혼란 정도를 측정하기도 어렵고, 정부여당이 다수인 방통심의위 구조상 권력 입맛대로 악용하기 쉽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실제 이 조항은 정권 편의에 따른 ‘고무줄 심의’를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방통심의위는 사드 전자파 음모론, 메르스 배후설, 세월호 참사 음모론 등 정부에 불리한 음모론 게시글을 일일이 찾아 해당 조항을 적용해 삭제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에 “실상은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에 대한 심의”라며 반발해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해당 조항은 폐기되지 않았다. 방통심의위는 같은 조항을 적용해 문 대통령 관련 게시글 심의에 나섰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문 대통령의 왼손 경례 조작 사진이나 김정숙 여사의 ‘일제 마스크’ 주장 등 허위 게시글에 접속차단을 결정했다.

방통심의위는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에는 정부가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거나 정부 발표 조작을 주장한 정보에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2014년과 2017년엔 관련 심의 요청 건에 해당없음을 결정했다.

이번 안건을 심의한 위원들 발언 가운데서도 조항의 자의적 적용이 드러나는 대목이 여럿이다. 황성욱 통신심의소위원장은 지난 10월 회의에서 시정요구 의견을 내며 “과학적 조사에 대해 일정 부분 몇 개는 당사자가 허위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약하다는 부분도 분명히 나온다. 그러나 어쨌든 전반적으로 어뢰에 의한 폭침은 맞다는 것이 항소심 법원까지의 판단”이라고 말한 뒤 국방부와 문 대통령의 입장을 들며 “사회질서 위반 요건은 갖췄다고 보인다”고 주장했다. 법원과 국방부, 대통령이 이를 허위사실로 판단했다는 것인데, 그것이 왜 시정요구 대상인지에 대한 논증은 빠졌다.

이광복 심의위원(방통심의위 부위원장)은 10월 회의에선 “(천안함 충돌설 명예훼손 소송 판결문을 보면)‘논리적으로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식으로 인정한 부분들이 꽤 나온다”, “명예훼손엔 무죄 판단을 했다”며 해당없음 의견을 냈다.

그러나 해당 결정에 조선일보 보도와 천안함재단 성명 등이 나오고 다시 회의가 열리자 판단을 바꿨다. “위원회 결정이 천안함 사건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 공격 폭침이라는 정부 발표를 부정하고 좌초 후 충돌했다는 음모론적 주장에 대해서 문제없다고 면죄부를 준 것으로 비춰지면서 오히려 사회혼란이 야기된 측면이 있다”는 이유다. 결국 결정을 둘러싼 여론을 이유로 ‘사회혼란 야기’ 규정을 적용해 제재하기 이르렀단 얘기다.

해당없음 의견을 냈던 옥시찬 위원도 “무엇보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어버린 천안함 유가족들의 현실적인 하소연을 외면할 수 없다”며 접속차단으로 의견을 바꿨다.

근본적으로는 방통심의위가 불법정보를 넘어 ‘유해정보’ 여부를 심의하는 것이 검열 소지를 높인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사실상 행정기관이 법률 근거 없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0년 이를 두고 “사실상 행정기관이 인터넷 게시물을 통제하는 것으로 검열의 위험이 높다”면서 통신심의와 시정요구 권한을 민간자율단체로 이양하도록 권고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방통심의위는 본인들이 민간기구라 주장해왔지만 기구 결정에 따라 방통위가 행정명령을 하므로 사실상 행정기구다. 그래서 인터넷 게시물을 행정심의한다는 문제가 제기돼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사회혼란 야기’라는 추상적인 기준을 적용하면서 판단이 더 자의적이고 논란을 낳을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자유, 개방, 공유를 위한 전문가집단인 사단법인 오픈넷은 16일 성명에서 “방통심의위가 이런(사회혼란 야기) 심의규정을 적용하여 국민의 표현물을 검열하는 것은 국론에 반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표현물을 검열하는 데에 남용할 위험이 높아 더욱 위헌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통신심의 제도는 아주 예외적으로 불법성이 중대하고 명백한 정보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야 그 정당성이 유지될 수 있는 제도”라며 “방통심의위가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는 반민주적인 사회질서 검열 기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번 결정을 속히 철회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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