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공영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를 재정립하고 구체적인 공적책무를 평가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공성 강화, 신뢰회복 같은 추상적 약속으로 수신료 인상을 기대해선 공공미디어서비스(PSM: Public Service Media)로서의 역할을 구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송학회는 14일 ‘시청각미디어 경쟁시대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재정립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다.

유럽의 공영방송은 TV·라디오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방송(PSB: Public Service Broadcasting)에서 인터넷·모바일 등 다양화된 디바이스에서의 프로그램 최적 공급 등을 제공하고 공적역무를 재규정하는 공공미디어서비스(PSM)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독일, 영국 등 공영방송은 공공 영역의 콘텐츠를 연계해서 제공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영국 BBC가 지역국 온라인 플랫폼에서 해당 지역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관련 사례로 거론된다.

공영방송의 역할이 넓어지면서 면허체계도 변화하고 있다. 주로 3~10년 단위 방송면허에서 면허 개념을 없애는 대신 공적책무협약을 근거로 이행여부를 평가하는 방향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스웨덴은 공영방송이 10년에 한 번씩 재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도를, 공적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재승인 과정은 없는 것으로 바꾸고 있다”고 했으며 “독일도 지난해 미디어 국가협약에 따라 올해부터 책무 실천 계획서를 제출하고, 제대로 이뤄졌을 경우 그만한 예산을 더 준다. 수신료에 해당하는 방송부담금 산정에 있어서도 실천계획이 제대로 이뤄졌을 때 더 많은 인상분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14일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시청각미디어 경쟁시대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재정립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14일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시청각미디어 경쟁시대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재정립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심 교수는 한국의 경우도 공영방송은 재허가 대신 공적책무협약 형태로 가면서, 공영방송 지원에 대한 지표가 되는 기준을 정량적·정성적 측면에서 객관적이고 정확하며 신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수신료 지원에 대한 사후평가 기준과 제도 오용 등에 대한 교정 기준이 명확하게 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디어환경 변화에도 여전히 ‘레거시’에 머물고 있는 규제 및 진흥정책은 구체적인 정책경로 제시를 통해 혁신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를 위해 필요한 수신료산정위원회 등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애초에 정부 차원의 공공서비스미디어 정책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장은 “역대 정부에서 현재 정부에 이르기까지 미디어 정책은 공공성, 이용자 편익 등을 수행해야 할 공적영역 방송사보다 유료방송, 통신에 집중한 경향을 보였다”며 “방송법 근간은 지상파 공영방송 중심으로 만들어졌는데 2014년 통합방송법 추진 당시 유료방송 지원 기조를 유지해 ‘통합방송법’이라기보다 ‘유료방송발전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들어서는 공적 기능이 강조되긴 했지만 사실상 “무정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저는 ‘공공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 지역성, 보편성, 다원성 등 가치가 하위개념으로 제시되면서 역으로 공공성을 정의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공영방송이 구현할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지금 말하는 공공성은 시청자에게 와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 소장은 또한 “대선주자들이 제시하는 미디어 공약에 주목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과거에도 그런 것처럼 공영방송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또 슬슬 나오는 것”이라며 “차기 대선 공약, 미디어 정책은 공적 영역에 대한 외면이나 무관심보다는 이쪽(공영방송 재정립)을 1번으로 고려해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공영방송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시청각미디어 경쟁시대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재정립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14일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시청각미디어 경쟁시대 공영방송의 공적 역할 재정립 방안'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공영방송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경환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통시장 살린다고 세금을 들여 열심히 했다. 그러나 시장 가는 분들은 나이드신 분들이고 젊은 분들은 가급적 ‘쿠팡’에서 뭘 사야 제대로 서비스를 받았다 생각한다. OTT와 공영방송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과연 돈을 들이면 살아날지에 대한 의구심도 든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밝혔다.

김 교수는 “지상파 방송의 위축과 방송산업 위축은 다르다. OTT까지 포함하면 방송산업은 활황을 맞고 있다”며 “아무도 직접수신을 안 하는데 직접수신으로 공적서비스를 한다고 하면 답이 안 나온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이 자리에 참석한 유건식 KBS공영미디어연구소 소장은 “KBS를 정말 안 보는지 궁금하다”면서 “닐슨코리아에서 시청률 20위를 발표하는데 1~5위, 7위~12위가 KBS 콘텐츠다. 20위 중에 KBS 아닌 5개가 전부 후순위”라며 “다양한 플랫폼, 디바이스에서 콘텐츠를 본다면 공영방송을 본다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 왜 수신료를 내느냐’는 ‘프레임’에 경도된 게 아닐까”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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