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요청에 의해 삭제된 기사입니다.”

동아일보가 ‘최저임금 1만원’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각각을 인터뷰한 기사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조작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기사를 삭제했다. 인터뷰이 중 최저임금 1만원 찬성파로 소개된 당사자가 문제를 제기했고, 해당 보도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는 ‘기사가 삭제된 이유’에 답하지 않았다.

▲지난 6일 동아일보는 “최소 2, 3년간은 최저임금 내려야 자영업자들 생존” VS “청년 극빈곤층 전락 막으려면 최저 1만원돼야”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가 인터뷰이 중 한 명이 인터뷰 내용 대부분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기사를 삭제했다.
▲지난 6일 동아일보는 “최소 2, 3년간은 최저임금 내려야 자영업자들 생존” VS “청년 극빈곤층 전락 막으려면 최저 1만원돼야”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가 인터뷰이 중 한 명이 인터뷰 내용 대부분이 조작됐다는 주장을 제기하자 기사를 삭제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6일자 4면에 “최소 2, 3년간은 최저임금 내려야 자영업자들 생존” VS “청년 극빈곤층 전락 막으려면 최저 1만원돼야”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해당 기사를 보면 최저임금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루 14시간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장동조씨였다. 1만원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서울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비정규직 30대 박청담씨였다. 자영업자 장씨는 최저임금으로 인해 식당 운영이 어려워져 1만원 인상에 반대하고, 박씨는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하면 1만원 인상에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 찬성 측 인터뷰이로 설정된 박청담씨는 동아일보 보도 당일인 지난 6일 자신이 수료한 대학인 고려대학교 커뮤니티 ‘고파스’에 해당 보도가 잘못됐다며 문제 제기하는 글을 올렸다. 박씨는 “실제 대화나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날조한 기사를 쓴 것이 억울해 갑갑하고 막막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의 대사(전부)가 기자님의 창작이다. 애초에 신상부터 틀렸다. 근본적으로 최저임금 인상하자는 주장조차 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난 6일자 동아일보 4면.
▲지난 6일자 동아일보 4면.

해당 게시글에는 “기자가 멋대로 쓴 건지 데스크가 멋대로 바꾼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기자에게 연락해 어떻게 된 건지 물어봐라”, “정신적 피해당했으니 법적 대응 알아봐라”, “실명,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쓰는 기사를 저렇게 조작하다니” 등의 댓글이 80여개 달렸다.

동아일보는 기사에서 박청담씨를 최저임금 1만원에 찬성하는 공공기관 기간제 비정규직 근로자라고 소개했다. 또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수십 차례 지원했으나 탈락해 현재는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다른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지원하고 있다고 썼다. 이에 박청담씨는 “저는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가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오를 것으로 본다’는 입장인데 괜찮냐고 기자에게 묻고 인터뷰했다”고 짚은 뒤 “저는 공공기관 기간제 근로자가 아닌 시간선택제 근무자다. 정년 보장돼 있다. 졸업도 안 했다. 계약직이 아닌데 왜 다른 공공기관으로 가겠냐”고 기사 내용을 반박했다.

동아일보는 박청담씨가 “물가 오르고 집값이 치솟은 속도를 보세요. 제가 사는 서울 강북구만 해도 그사이 집값이 2배 넘게 올랐어요. 자연히 전·월세도 올라요. 이젠 40만~50만원 밑으론 단칸방 찾기도 힘들어요. 강제적으로라도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으면 무슨 수로 청년들이 월세며 식비를 감당할까요.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은 만들어줘야죠”라고 말했다고 썼다. 하지만 박청담씨는 “모든 문장이 기자님의 창작이다. 비슷한 말도 한 적 없다. 사전인터뷰를 포함해 ‘청년들은 어쩌고’하는 찡찡거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또 박청담씨가 “올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800만명에 달해요. 저처럼 대학 졸업하고도 비정규직 일하는 청년들이 올해 역대 최대래요”, “저부터도 식비 먼저 줄이죠”, “그래도 자영업은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서 숨통이 트였다고 들었어요”, “사장님은 상황이 좀 나아지셨잖아요” 등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박청담씨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800만명에 달하는 줄 이 기사 보고 알았다. 말한 적 없다. 코로나19 상황에 힘들게 식당하는 분 앞에서 식비부터 줄인다는 말을 할 정도로 예의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밝히면서 “자영업으로 고생하는 분 앞에서 ‘너넨 좀 살만하다며?’ 이런 소리를 하겠냐”고 되묻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해당 기사 작성 과정을 두고 “시민 200여명 가운데 ‘고용노동 정책’을 주제로 실시한 정책 성향 설문 조사에서 상반된 응답을 한 시민 두 쌍을 선정해 진행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노동시장 유연화 △근로시간 단축 △동일노동 동일임금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 문항에서 서로 대립되는 답변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박씨는 성향 설문 조사 역시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달 28일 이후인 30일에 진행했으므로 역시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지난 7일 박씨는 언론중재위원회에 동아일보, 동아닷컴 등을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박씨에 따르면 언중위에 사건이 접수된 후 해당 인터뷰를 진행한 동아일보 기자가 박씨에게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계속 전화하고, 집에도 찾아왔다고 한다. 박씨도 동아일보 측의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동아일보도 문제 제기하는 박씨 측에 문자 등을 통해 사과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9일 동아일보는 돌연 기사를 삭제했다. 해당 보도에 대한 언중위 조정 기일은 오는 21일로 잡혔는데, 동아일보 측은 박씨에게 언중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기사를 삭제했으니 언중위 제소를 취하할 생각이 없냐’는 식의 입장을 전한 것으로 파악된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실명, 얼굴 다 드러낸 기사인데, 언론사로서 기본을 상실한 행태”라고 꼬집은 뒤 “왜 조작에 가깝게 왜곡했는지 기사를 보도한 당사자만 알 수 있겠지만, 언중위 제소 이후 아무 설명 없이 온라인에서 삭제하는 건 무책임한 태도다. 동아일보의 사후 대처법이 더 실망스럽다. 인터뷰이가 항의했을 때 사과하고, 이미 나간 지면은 어쩔 수 없더라도 온라인에서 정정 사유를 밝히는 게 올바른 대처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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