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광주지역 민영방송 광주방송(KBC)의 보도국 인사를 두고 뒷말이 나온다. 지난달 회사 비판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보직 간부들이 잇따라 감사실 평직원, 목포 지방 발령, 광고사업국 광고사업부장 등으로 인사이동 조치 돼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 6일 KBC는 보도국과 편성제작국, 경영국, 감사실, 기술국, 광고사업국 등 정기 인사 발령을 냈다. 표면상으로는 회사 부서들 전반에 대한 정기 인사 발령인 것처럼 보이지만, KBC 안팎에서는 최근 있었던 내홍과 이번 인사가 무관하지 않는다고 본다. KBC 내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달 8일 KBC 메인뉴스에 방송된 여수산단 기획 보도 첫 리포트. 사진=KBC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지난달 8일 KBC 메인뉴스에 방송된 여수산단 기획 보도 첫 리포트. 사진=KBC 메인뉴스 화면 갈무리.

지난 5월 KBC의 대주주(35.59%)였던 호반그룹이 KBC 지분 대부분(35%)을 정서진 아시아신탁 부회장에게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정서진 부회장은 지난 9월 말 KBC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KBC 신임 대표이사·회장에 선임됐다. 10년간 호반그룹이 대주주였던 KBC에 새 대표이사 회장이 온 것. 

정영팔 KBC 보도국장은 지난 9월 정서진 KBC 대표이사 회장이 공식 취임하기 전 사장으로부터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 실태 보도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정영팔 보도국장은 탐사기획보도는 필요한 것이니 기자들에게 경영진 측의 지시를 떠나 여수산단 특별취재팀을 꾸려 보도를 준비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KBC 기자들은 경영진 지시가 의아했지만, 22꼭지 리포트 기획안을 준비하는 등 보도에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임채영 KBC 사장을 비롯해 경영진 측에서는 리포트 개수가 너무 많다는 의견을 보도국장을 통해 내놨고, 특별취재팀은 리포트 개수 수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하지만 경영진 측은 특별취재팀이 리포트 개수를 줄였는데도 여전히 많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지난달 8일 “[탐사1] 여수산단은 ‘화약고’.. 5년간 61건·37명 사상” 제목의 첫 리포트가 나가자마자, 경영진 측은 ‘임팩트 있게 하라’는 입장을 또 한번 보도국에 전달했다. 경영진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KBC기자들은 대기업 몇개만 본보기로 잡고 보도하라는 식으로 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보도국과 경영진과의 갈등을 촉발한 사건이 또 발생한다. 지난달 9일 KBC 경영진이 인터넷매체 UPI뉴스와 여론조사기관에 공동 의뢰한 설문 결과를 보도할 것을 보도국에 지시했다. 통상 언론사에서 진행하는 여론조사는 편집국이나 보도국에서 설문 문항을 만들어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보도하는데, KBC 보도국은 경영진이 여론조사를 진행하는지도 몰랐던 것.

결과를 보도하라는 지시에 보도국은 뒤집혔고, ‘제작 거부’ 목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다음 날인 지난달 10일 KBC 경영진 측은 기자들에게 사과 의사를 밝혔다. 이 사태들을 겪은 정영팔 보도국장은 사측에 보직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자 1995년 KBC 개국 이후 처음으로 기자들의 기명 성명서가 작성됐다. 지난달 12일 한국기자협회 KBC지회는 “보도의 독립성, 자율성 보장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작성했다. 이 성명서에는 보도국 보직 간부들을 포함해 기자 25명이 이름을 올렸다.

KBC지회는 “보도팀 구성원 누구도 UPI뉴스와 이번 공동 여론조사에 대해 알지 못했다. UPI 출신의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의뢰한 뒤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라고 지시했다. 보도팀 구성원들은 ‘제작 거부’라는 배수의 진을 치고 이를 거부했다”면서 “방송제작자가 아닌 경영진이 보도팀과 협의 없이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이를 보도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보도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려했던 대로 UPI가 발표한 여론 조사를 두고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여수산단 탐사보도’에 대해서도 “특별취재는 경영진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경영진은 첫 리포트가 방송된 이후 보도 방식 수정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포괄적으로 하지 말고 임팩트 있게 하라’며 업체별 보도를 암시했다”고 지적한 뒤 “취재와 보도에 대한 경영진의 제안과 조언을 사내 의사전달 계통을 통해 경청할 귀는 열려 있다. 하지만 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의견이 묵살되는 경영진의 지시는 단호히 거부했다”며 “보도 제작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후 인사발령이 이뤄졌다. 지난 6일 정영팔 보도국장은 KBC플러스 본부장으로, 사측 비판 성명서에 이름을 올린 25명 중 보직 간부인 정아무개 취재부장은 감사실 평사원, 정아무개 기동탐사부장은 서부방송본부(목포) 취재부장, 김아무개 보도영상부장은 광고사업국 광고사업부장 자리로 옮겼다. 다만 이중 김씨는 15일 미디어오늘에 “오래전부터 광고사업부장 자리를 가고 싶었다. 보복성 인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KBC 로고.
▲KBC 로고.

KBC경영진 측 관계자는 14일 미디어오늘에 “여론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대표이사가 보도국장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과한 게) 보도국 내에 전달이 됐는지 모르겠는데, 보도국 내에서는 ‘제작 거부’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다음 날 아침에는 UPI 전 대표이사였던 부사장이 보도국에 내려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차후 공동 여론조사는 UPI와 KBC 각각 실무자를 지정해 진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성명서에는 내용이 반영이 안 된 것 같다”고 밝혔다.

KBC경영진 측 관계자는 이어 “보복인사일 수 없다”면서 “KBC가 이번에 지역에 네이버·카카오 콘텐츠 제휴(CP)사로 지정됐다. 보도국에서 주관해서 신청하기로 했는데, 보도국장과 부장들은 이 신청을 못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책팀장이 제휴 신청서를 작성해 선정됐다. 잘 모른다는 분들한테 일을 맡길 수 없다”며 업무능력에 따른 인사라는 점을 밝혔다. 이어 “광고사업국 광고사업부장은 공석이어서 김아무개 부장이 지원한 것이고, 정아무개 기동탐사부장은 서부취재본부 보직을 달고 갔다. (보복인사 주장이) 황당하다”고 밝혔다. 

광주방송 측은 "KBC지회 성명에 이름을 올린 기자들은 KBC지회 회원일 뿐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연락을 받지 못한 회원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방송 측은 "KBC 보도국은 경영진이 여론조사를 진행하는지도 몰랐다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2021년 11월 1일 본부장·국장이 참여하는 월간 회의에서 KBC와 UPI뉴스가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당시 보도국장이 보고했다"며 "당시 보도국장이 이 사실을 취재기자들에게 전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따라서 '방송제작자가 아닌 경영진이 보도팀과 협의 없이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이를 보도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한 보도 개입이다'는 것도 맞지 않다"고 밝혔다.

광주방송 측은 "UPI 전 대표이사였던 부사장이 보도국 간부와 기자협회지회장을 만나 면담을 한 적은 있지만 보도국에 내려와서 사과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기사 수정 : 12월 20일 14시 30분 광주방송 반론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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