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흔적없이 머물며 탄소제로(중립) 생활에 도전하는 필(必)환경 예능”. 10월부터 방영 중인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는 공효진, 이천희, 전혜진 배우의 탄소 발자국 없는 캠핑 체험기다.

에너지자립섬 충남 ‘죽도’에서 일주일 나기에 도전한 이들의 캠핑은 여느 프로그램 같은 ‘힐링’과 거리가 멀다. 달걀 한 개 3그루, 국내산 소고기 안심 277그루, 실내 샤워는 10분당 1그루. 먹고 마시고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 ‘그루’(GRU) 단위의 탄소배출량으로 차감된다. 일주일간 모은 그루의 양 만큼 나무를 심을 수 있기에, 출연진은 음식을 줄이고 폐자재로 식탁을 만든다.

애초 프로그램 취지는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엘 및 Z세대)에게 따라하고 싶은 친환경 캠핑 문화를 소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거듭된 고행에 공효진 배우는 촬영 중단을 선언하고, 새로운 포맷을 제안하면서 프로그램 촬영이 재개된다. 그렇게 다짜고짜 기업에 친환경 제품 기획을 권하는 두 번째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구독자,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종이팩 생수 업체에 대량생산을 요청하고 산림청에 전화해 판매처를 확보하는 식이다.

소재부터 진행 방식까지 무모해보이는 이 프로그램 기획자는 공효진 배우와 구민정 KBS PD다. ‘공효진과 여행 예능을 찍고 싶다’는 구 PD 구애에 공씨가 ‘환경 문제를 녹이고 싶다’고 제안했고, 수개월 논의 끝에 KBS ‘윗 사람’들 허락으로 ‘오늘무해’가 탄생했다. 한국에서의 첫 ‘기후변화’ 예능이자 KBS가 온전히 ‘시즌제 사전제작’으로 제작한 첫 예능이다. 제작진에겐 저조한 시청률이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을 안기기도 했다. 10일 서울 영등포구 KBS에서 구민정 PD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 PD. 사진=구민정 PD 제공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 PD. 사진=구민정 PD 제공

-어쩌다 환경예능을 기획했나.

“꽤 오래 전부터 공효진 배우에게 캠핑 예능을 제안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공효진씨가 그렇게까지 환경에 관심 있는지 몰랐다. (공효진씨는 지난 2010년 환경을 위한 실천들을 담은 에세이 ‘공책’을 펴냈고, 2018년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그룹 ‘슈퍼매직팩토리’를 열었다. 2019년 환경을 위한 용기를 주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후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캠핑 예능이 많이 생기면서 프로그램이 불발됐었는데, 그때 오히려 ‘스위치’가 켜졌다. 주식을 해도 ‘ESG’가 보이고, TV에서도 자꾸 ‘탄소’ 이야기가 나오니까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다. 올해 4월쯤 공효진씨에게 본격적으로 기후변화와 탄소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을 제안했다.”

-‘공기획’이 그저 별명이 아니더라. 실제로 공효진 배우가 기획자로 올랐던데.

“PD로 10년 정도 일했는데 출연자랑 이렇게 기획단계에서부터 긴밀하게 소통하고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공 배우랑 맨날 세 시간씩 통화하는데 하나하나 디테일한 아이디어가 굉장하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매주 프로그램 방향성 등을 짚어주면서 ‘리더’처럼 이끌고 있다.”

-KBS 간부들 설득은 어렵지 않았나.

“몇몇 분들은 시사·교양, 다큐가 있는데 왜 예능이 이런 걸 하냐는 이야길 했다. 처음엔 정규 편성이 아니라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이야기가 됐는데, 한참 뒤 공효진씨 섭외가 확정되면서 시즌제가 성사됐다.”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 PD(왼쪽)와 공효진 배우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구민정 PD(왼쪽)와 공효진 배우. 사진=구민정 PD 제공

-구상했던 것과 실제는 좀 달랐을 것 같은데.

“나무 심기를 목표로 배출하는 탄소량 만큼 심을 수 있는 나무가 줄어드는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촬영 둘째 날 ‘이것만 메인으로 가면 재미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처음 편집본엔 이 과정이 안 담겼다. 그런데 이 부분을 빼면 출연자들 진심을 녹이지 못할 것 같아서 방송 직전 다시 편집해 그 장면들을 살렸다. 그렇게 촬영을 하면서 프로그램 방향성이 틀어졌고, 출연자들이 SNS로 구독자,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제작진도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했다고 들었다.

“처음엔 큰 걱정이 없었다. 섬이라는 공간에서만 찍는 것이라 이동이 많지 않고, 촬영장 쓰레기로 가장 많이 나오는 게 플라스틱 생수병이라 정수기를 빌려서 제작진 50명이 다 텀블러로 물을 받아 마셨다. 문제는 더위였다. 추석 전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더워서 해가 뜨면 그늘이 아니고서는 촬영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원래 더운 여름 촬영장에선 아이스박스에 얼린 물 잔뜩 쌓아두고 목에도 대고 시원하게 마시는데 그걸 못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다행히 사흘 지나면서 적응이 되어가더라. 조명 같은 경우도 탄소 줄이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라고 하니까 고효율 기구를 많이 챙겨와주셔서 원래 촬영장에서 사용하는 전기 이용량 절반도 안 썼다. 스태프분들이 정말 고생 많으셨다.”

-SNS 소통이 많았다. 구독자들에게 ‘일상 속 불필요한 쓰레기’를 묻고, 친환경 제품 생산에 참여할 기업을 찾는 일 등이 인스타그램 기반으로 이뤄지더라.

“섬 안에 지내면서 소통, 확장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오늘무해’ 계정을 팔로우하는 분들은 진짜 환경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확장된 부분이 많다. 추후 기업들과 협업할 때에도 그분들이 ‘기업들이 함께 해야 한다’ ‘용진이형(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고고’ 등 태그를 걸어주신 게 도움이 됐다.”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갈무리 ⓒKBS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갈무리 ⓒKBS

-출연한 배우들이 “우리가 도와드리겠다” “영향력을 쓰겠다”고 말한 부분들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신세계 ‘이마트’와 협업한 부분이 있어서, 공효진 배우가 모델인 곳이라 사전에 얘기가 된 게 아니었는지 궁금하더라.

“그 점 때문에 공효진씨가 망설였다. 그러나 이마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유통기업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공효진씨도 자신이 모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일단 기업들에 이야기를 계속 해야겠다면서 시도를 했다. 출연자들로서는 상업적 일을 해야 영향력이 유지되는 분들이기에 스스로 모순적으로 느껴질까봐 고민이 많았다. 그럼에도 비판이나 비난 때문에 뭔가를 못 하는 건 용기가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으로 참여를 했다고 한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배우들이 기업 관계자들에게 이런 저런 건의사항을 전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대부분 기업들이 ‘이미 준비는 하고 있는데 여건상 어렵다’고 하던데.

“업계에서 이미 탄소중립, ESG가 화두이고, 이런 의제를 다루려던 기업들에겐 이번이 적기였던 것 같다. 기업 측 고민을 들으면서 방송 편성이랑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해야 된다, 중요하다’면서 힘을 실어주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다.”

-시청률이 높지는 않다. 1.8%로 시작해서 최근엔 0%에 머물고 있다.

“항상 재방송 시청률이 훨씬 잘 나온다. 2.7% 정도. 편성시간대가 아쉽긴 한데 회사도 생각이 있지 않았을까. 사실 시청률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는 공감대가 있었다. 당시 예능센터장도 ‘신선해서 좋다, 계속 시도하라’ 했고 시청률 압박이 있진 않았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편성, 플랫폼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오늘 무해’는 매주 컨셉이 바뀌는 게 아니고 1회부터 시작해 터닝포인트를 거쳐 일이 커져가는 플롯이 있다. 오히려 몰아보는 게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책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고, 다양한 플랫폼으로 풀어내는 게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제작진
▲KBS 2TV '오늘부터 무해하게' 제작진. 사진=구민정 PD 제공

-KBS가 공영방송이라 ‘오늘무해’가 가능했다고 생각하나.

“공익성, 공영성을 담보로 시대 흐름에 맞춰 시도를 해볼법한 포맷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시간대, TV시청률이라는 프로그램 평가 잣대에 대해서도 고민이 들었다. 최준(개그맨 김해준씨 부캐)씨가 출연한 영상이 유튜브 조회수로는 100만이 훌쩍 넘었는데, 분당 시청률은 오히려 그 부분에서 떨어진다. 무엇에 중점을 둘지 선택을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KBS가 수신료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을 ‘메인 플레이어’가 한다면, 새롭게 화제성을 갖고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을 예능에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실시간 댓글창 같은 데서 ‘우연히 봤는데 재밌다, 시즌2 하면 좋겠다’는 반응이 있더라. 가능할까.

“두 번째 시즌은 큰 틀에서 얘기 중이다. 사장도 예능센터장도 바뀌어서 당장은 못 할 거고, 내년 하반기 정도에 다른 포맷으로 시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무해’는 환경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시작점이라 생각한다. 지구는 나빠질 일 밖에 없을 거고, 기후변화라는 중요한 화두를 다룬 예능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을 거다. 그냥 한 번 보고 재밌다 생각되면 더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 회사에서도 사람들 반응을 안 볼 수가 없으니, 많이 응원해주시면 시즌2도 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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