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기생충> 등 한국 영화, 드라마 같은 소위 K-콘텐츠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우리사회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만큼 이런 불평등한 모습이 많은 사람에게 세계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 12월7일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는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년은 전 세계 억만장자들의 부의 몫이 역사상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한 해였다고 밝혔다. 가장 부유한 1%는 1995년 이후 추가된 모든 부의 3분의 1 이상을 가져갔지만, 하위 50%는 단 2%만 차지했다. 억만장자, 상위 0.001%의 부는 지난해 1년 동안 4조 달러(5000조원) 이상 증가했지만,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새롭게 극빈층으로 떨어졌다. 상위 0.001% 대 하위 50%의 자산 점유율 격차, 인구수로 보면 5만명 대 40억명의 자산 점유율 격차는 3.2배로 이것도 역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5만명의 재산이 인류 절반인 40억명 전체 재산보다 3.2배나 더 많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소득 수준은 서유럽 국가들만큼 부유하지만, 불평등은 훨씬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 성인 인구의 평균 소득은 3만3천유로(약 3843만원)로 평가됐다. 영국(3만2700유로)·스페인(3만600유로)·이탈리아(2만9100유로)보다는 높고, 프랑스(3만6300유로), 독일(3만9900유로)보다는 낮거나 유사한 수준이다. 이처럼 소득수준, 평균소득은 서유럽 국가들 수준으로 올라갔는데, 불평등은 훨씬 더 심각해졌다.

▲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의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
▲ 세계 불평등 연구소(World Inequality Lab)의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

평균소득이 올라갔는데 불평등이 더 심각해졌다는 것은 주로 부자들만 돈을 벌어들였다는 얘기다. 2021년 기준 소득 상위 10%가 1인당 15만3200유로(약 1억7850만원)를 벌면서 국가 전체 소득의 46.5%를 가져가는 동안 하위 50%는 1만600유로(약 1233만원)를 벌어 전체 소득의 16% 차지하는 데 불과했다. 상위 10%가 인구 절반의 전체 소득보다 3배 정도 더 벌어들인 셈이다. 평균소득으로 하면 상위 10% 평균소득과 하위 50%의 평균소득 격차는 16배에 가깝다. 한편, 이런 소득 불평등만이 아니라 주택과 주식 같은 자산 불평등은 더 커졌다. 상위 10%가 전체 부의 58%를 차지하고 있고, 인구의 절반인 하위 50%는 고작 6%만 갖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과 같은 상황이 드라마나 영화 속 가상현실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현실인 셈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한국의 불평등 원인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은 채 자유화와 규제 완화를 급속히 확대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은 조세부담률이나 국민부담률이 매우 낮고 복지 제도가 부실해서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여전히 OECD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2번째, 3번째로 길어서 일은 너무 많이 하는데 비정규직같이 노동시장은 또 너무 유연화되어 있어 임금소득 수준도 낮다. 반면에, 규제가 심한 게 아니라 규제가 없어서 산재 사망률이나 노동시간은 세계 최상위권이고 기업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돈을 쉽게 벌어들이는 구조다. 또 자산가들은 부동산, 주택, 주식 같은 자산들을 가지고 있으면 주기적인 자산 가격 인상으로 쉽게 자산 소득을 늘리는 사회라는 얘기다.

올해 9월 보건사회연구원이 낸 자료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은 노동시장에서의 1차 소득분배 즉, 시장임금 소득분배의 악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그리고 자산 불평등과 관련해서 주택, 부동산, 실물, 금융자산 등 모든 자산 형태에서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왔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이러한 자산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사회안전망 구축의 미비, 노동시장 유연화, 급속한 경제 자유화와 규제 완화, 금융화와 자산가격 폭등이 원인인 셈이다. 그러니까 빈곤하고 불평등한 것이 남보다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서 또는 배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제도, 낮은 임금, 밑천이 되는 일정한 자산(자본) 또는 기업과 같이 돈 벌어들이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탓이다. 또한 개인의 아둔함이나 정보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수백조원의 구제 금융을 쏟아부은 금융시장 구제정책과 유동성 팽창시킨 한국은행의 양적완화가 자산 불평등을 부추긴 직접적인 원인인 셈이다.

불평등 원인이 가리키고 있듯, 취업해서 일하며 임금 받으며 생활해서는 평생 빈곤을 벗어나거나 불평등 상황을 완화할 수 없다. 그래서 특히 청년층에서 부모의 자산축적에 따라 수저 계급을 나누기도 하고, 부모가 자산이 없으면 어떻게든 1억원 정도 종잣돈을 모은 다음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금융투자를 잘해 한 몫 챙기는 것을 유일한 빈곤 탈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청년층에서 영끌과 빚투가 유행하는 데는 이런 씁쓸한 이유가 있다. 사회제도를 바꾸거나 임금 수준을 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의 자산을 모으는 것은 비록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이고 밤낮없이 일해야 하지만 어떻게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경기나 유동성 흐름만 잘 타면 주식이나 코인이 로또보다 더 좋은 확률로 더 많은 돈을 가질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교육사다리가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다. 노동해서 임금소득으로 평생 빈곤을 탈출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각종 스펙의 경쟁 조건 조차 불평등해지면서 능력주의적 공정 요구가 나오는 것도 어렵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금융시장에서 과연 청년들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새로운 빈곤탈출 수단이 될 것인가? 새로운 가치 창출은 전혀 없고, 돈 놓고 돈 먹기나 다름없는 금융시장에서 이런 개미들이 투자에 성공할 확률은 (구해보지는 않았지만) 로또보다 못할 거라 생각된다. 로또는 매주 십여 명 가까이 20~30억원의 1등 당첨자를 만들어 1년이면 400여명, 10년에 4000명 이상 1등 당첨자가 나온다. 과연 금융시장에서 원래 금수저를 제외하고 개미 중에 1년에 20억원 혹은 10년간 20억원 이상 수익을 벌어들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빈곤탈출을 위해 혹시나 하며 매주 로또 복권을 사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거나 빈곤을 탈출할 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주식과 코인시장은 그런 기대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이런 불평등을 시정하거나 완화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는 걸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제도화하는데도 복지병 운운하면서 마련하지 않는다. 안전망 관련한 정부 지출도 매우 적다. 올해 2월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OECD 주요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은 2019년 기준 12.2%다. OECD 평균(20.0%)은 물론 주요 선진국보다 한참 낮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35위다. 또한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국민부담률(GDP 대비 세금+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26.7%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 관계자들이 11월9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11월9일 경제민주화의 날, 대선정책 요구사항 발표 기자회견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줄다리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 관계자들이 11월9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11월9일 경제민주화의 날, 대선정책 요구사항 발표 기자회견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줄다리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임금소득분배율이 낮아지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1차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확산하는 가운데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마치 경제가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또한 세대 간 임금 및 고용격차와 관련해서도 마치 노년세대가 청년세대의 취업을 가로막는 것처럼 호도한다. OECD에 따르면(2021년 10월),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6.7%(2018년 기준)로 37개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높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인구 가운데 중위소득의 50%로 생활하는 인구의 비율인데, 우리 국민 6명 가운데 1명꼴로 빈곤 위험에 빠져있다. 이렇게 상대적 빈곤율이 높게 나타나는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노인빈곤율이 있다. 우리나라 66살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고령층 가운데 공적연금을 받는 비율은 2018년 기준 46%로 절반이 채 안 된다. 그나마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연금 지급액이 적은 편이다. 연금 소득대체율은 OECD 평균이 62.9%인데, 우리의 경우 연금 소득대체율은 45.1%에 불과하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노년세대가 청년세대 빈곤의 원인이 될 수 있겠나.

정부의 재정정책과 조세제도가 그나마 불평등을 완화하는 도구로 생각되지만, 현실은 드라마 오징어게임과 같이 불평등을 확대하는 도구로 악화하고 있다. 내년도 정부 예산이 607조원 정도로 국회에서 확정됐는데, 이것도 너무 많다고 정치권에서 우려한다. 607조라 하더라도 GDP 대비 비율이 31%인데, 유럽연합 평균인 53.4%와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인 셈이다. G20 국가 중에서는 거의 꼴찌다, 앞서 밝힌 대로 조세부담률도 낮아서 다른 나라에 비해 세금도 훨씬 더 적게 걷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금 국회나 정부, 정치권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증세가 아니라 감세 기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노동시장도 비정규직 등 노동유연화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노동유연화가 더 확대되고 임금분배와 임금수준은 더욱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또한, 불평등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경제 자유와 규제완화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화를 확산시키는 통화완화와 저금리 정책에 대한 요구도 지속적이다.

결국 이대로라면 불평등이 다소라도 완화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악화할 전망이다. 매년 악화한 불평등 지표 속에서 또 불평등 해소를 떠들겠지만, 현재의 모습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불평등이 완화할 작은 가능성조차 없다. 그렇지 않으려면 재정과 조세제도, 통화운영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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