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이번엔 탈원전 정책의 핵심 결정 가운데 하나인 신한울 3·4호기 건설 중단 방침을 두고 “이걸 밀어붙이겠다는 건 벽창호”라고 거칠게 반대했다.

탈원전 목소리를 내온 정의당 기후정의위원장 등은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의 포기나 다름없으며 굉장한 오판”이라며 “민주당이 덫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찬반이 나오는 등 고민에 빠졌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0일 경주 포암재 방문을 마치고 나와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경주에 원전이 6개, 주변에 11개가 있는 등 동해안에 원전이 밀집돼 있다’, ‘원전 확대정책에 대해 어떻게 보느냐’는 장미쁨 포항MBC 기자의 질의에 “원전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입장이 일관돼 있다”며 “신재생 에너지 체제로 대대적 재편이 이뤄질 것이고, 그 속에서 원전도 추가건설 보다는 있는 원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신재생에너지로 대전환을 신속하게 이루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일부 연구결과와 핵폐기물, 위험비용을 예로 들어 결코 싼 에너지로 보기 어렵다며 다만 현재 원전들은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신한울 3·4호기에 대한 입장이었다. 이 후보는 “다만 신한울 3·4호기와 관련된 질문 하고 싶은 것 아닌지 모르겠는데, 신한울 3·4호기는 짓고 있는 원전이냐, 계획한 원전이냐의 경계지점에 있는데, 문재인 정권이 공론화 과정을 거쳐 짓지 않기로 해 중단돼 있다”며 “이 문제에 국민들 의견도 많이 다르고, 정책이라는 것이 한번 정하면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번 정했다고 상황이 변하고 주권자들, 이 나라 국민들의 의사가 변했는데도 그냥 밀어붙이는 것은 ‘벽창호’라고 할 수 있겠다”며 “유연하게 국민여론과 현재 닥친 경제현황, 에너지 전환의 상황을 고려해서 다시한번 숙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일 경주를 방문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사진=YTN 갈무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10일 경주를 방문해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사진=YTN 갈무리

 

앞서 지난 7일에도 이 후보는 “이것도 역시 저는 국민의 뜻에 맡기는 방향을 검토해봐야 된다”며 “‘한번 결정하면 후퇴하지 말아야 된다’ 이건 벽창호 아니냐”고 비난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취소 결정에 반대 의견이 많으니 이전 결정을 뒤집을 수도 있도록 숙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결정을 뒤집지 못하겠다는 건 벽창호라는 비난까지 했다.

이에 이헌석 녹색정의위원장은 11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선 ‘건설과 계획의 경계지점에 있는 원전’이라는 점 이 후보의 발언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사실관계에서 잘못된 게 있다”며 “건설하다 중단한 게 아니라 계획 중에 중단한 것이고, 실제 건설한 게 없다”고 말했다.

건설 취소결정이전인 2017년 3분기에 전력거래소가 발표한 ‘발전소 건설사업 추진 현황’을 보면, 신한울 3·4호기는 ‘발전소 건설 예정인 사업’ 항목에 포함돼 있었다. 

이헌석 위원장은 “신한울 3·4호기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이걸 지어야 원전생태계가 살아난다’는 것으로, 이 얘기는 신한울 3·4호기 건설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라며 “그 다음 계획이 영덕 1·2호기 건설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게 문제”라고 내다봤다. 이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이후 다른 원전은 짓지 않으면서 단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쪽으로 전환해나간다는 건데 이 후보의 발언은 이 전환정책을 포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누가 보더라도 문재인 정책의 탈원전을 폐기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취소 결정 직전인 2017년 3분기에 나온 전력거래소의 발전소 건설사업 추진현황 보고서 편집. 사진=전력거래소
▲신한울 3·4호기 건설 취소 결정 직전인 2017년 3분기에 나온 전력거래소의 발전소 건설사업 추진현황 보고서 편집. 사진=전력거래소

 

이 위원장은 이재명 후보가 이 같은 방향전환을 하는 것을 두고 “지지율이 떨어진 것을 정책 변화로 반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렇다면) 굉장한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적인 자기 색깔을 분명하게 해야지 윤석열 후보와 동일한 색깔로 승부를 본다는 것은 민주당이 덫에 빠지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신한울 3·4호기를 짓게 되면 발전단가 문제를 넘어 사용후 핵연료 처분 해법을 못찾아 갈등하고 있는 문제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고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탈원전과 에너지 전환정책을 주도해온 대표적인 인물인 김성환 의원(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은 11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번 발언은 국민들 의사를 물어서 결정하겠다고 한 말에서 이번에 한발 더 나갔다”며 “우리로서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신한울 3·4호기는 6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발전허가나 났으나 건설허가나 나지 않은 상태에서 멈춰있는 상태”라며 “발전허가가 난 상태에서 두산중공업이 주기기 제작에 들어가 추산액 3500억원에서 6000~7000억원의 매몰비용 발생하게 된 것을 두고 후보가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후보의 생각에 동의하느냐는 질의에 김 의원은 “당내 찬반이 있다”며 “신한울 3·4호기까지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과 이미 결정했는데, 다시 원전을 건설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찬반 의견이 있다. 내부적으로 숙의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털어놨다. 김 의원은 “다만 실제로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려야 하는데, 탈원전 문제로 논쟁이 붙어 재생에너지 늘리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잘 안모아진다는 게 고민”이라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가 건설예정이었다가 중단된 원전이지 ‘건설과 계획의 경계에 있다’는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에 김성환 의원은 “발전사업은 허가가 났고, 이후 ‘주기기’ 제작에 들어갔는데, 건설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로, 아무것도 안했다고 하긴 어렵다”며 “그 중간 상태에 있다는 표현을 틀렸다고 하기도 어렵다”고 해명했다.

‘지난 정부보다 더 잘하는 것은 좋지만, 표얻는데 도움되지 않는다고 섣불리 판단해 어렵게 세운 탈원전 정책 기반을 허무는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아니냐’는 목소리에 김 의원은 “탈원전 진영에서 그런 고민이 왜 없겠느냐”면서도 “숙의를 해봐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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