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한국시리즈 최종전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고척돔을 방문했다. 당시 현장 사진과 영상에는 이재명 후보 뒤에 피켓을 든 남성이 보인다. 김일권 전국언론노동조합 스카이라이프 지부장이다. 그가 손에 든 피켓엔 ‘5000억은 스카이라이프가! HCN은 KT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는 최근 KT에 책임을 요구하는 집단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KT스카이라이프 사무실 곳곳에는 KT를 규탄하는 피켓이 놓여 있었다.  KT스카이라이프 구성원들이 모회사 KT에 반발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HCN 우회 인수 논란이었지만, 이미 모회사 KT를 향한 분노가 누적된 상태였다.

▲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 지부장이 11월18일 고척돔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 제공
▲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 지부장이 11월18일 고척돔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 제공

스카이라이프 약정이 끝난 고객에게 KT올레TV로 전환하라는 마케팅 전화가 스카이라이프 직원들에게도 번번이 걸려온다고 했다. 접시 없는 위성방송 출시, 자체 OTT 출시, 콘텐츠 자회사 지배구조 변경 논란 등 스카이라이프 구성원 입장에선 스카이라이프의 생존을 위한 혁신 시도마저 KT라는 허들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6일 스카이라이프 사무실에서 만난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장은 “혁신이 중요한 시대인데 스카이라이프는 식민 경영을 당하는 상태”라고 진단한 뒤 “KT모회사만의 실적을 위한 경쟁이 아닌 자회사와 함께 윈윈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고척돔에서 피켓을 들었다.
“KT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KT 그룹 경영진이 다 모이는 자리였다. 그간 우리 노동조합의 목소리가 KT 경영진에 전달이 잘 안 돼, 경영진이 모인 자리를 찾아 피켓 시위를 한 것이다. 진행 도중에 이재명 후보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 후보자가 지나는 동선에 섰다. 캠프측에서도 어떤 내용인지 파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추후 따로 입장을 물어보셨다. 여러 국회의원실에서도 언론노조와 우리 노조에 문의를 해오고 있다. 차기 대선후보들의 미디어 정책 수립 과정에서 KT 지배구조 개선을 관철하기 위한 정책적 대응을 할 예정이다.”

▲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장. 사진=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 제공
▲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장. 사진=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 제공

- 노조는 스카이라이프가 인수한 현대HCN의 경영을 모회사인 KT가 독식하고 있다고 문제제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진이 약속을 위반한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모은 3000억 원의 유보금과 2500억 원의 회사채를 발행해 HCN을 인수했다. 우리의 미래를 여기에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과연 지배주주인 KT가 스카이라이프의 독자 생존을 위한 행보를 지켜보기만 할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인수 전 구성원들의 의문에 (스카이라이프) 경영진은 직원 대상 설명회를 통해 ‘100% 우리 자본으로 인수한 회사라 KT가 개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HCN 이사회 멤버 4명 중 3명을 KT임원 출신으로 뽑았다. 인수한 회사가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고 ‘인수 주체’ 논란이 생기게 된 것이다.”

- 지금은 KT스카이라이프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원래는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때 도서산간 지역 방송과 통일 방송 등 공적 역할을 위해 스카이라이프를 설립했다. 이후 2011년 KT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흡수된 초기에만 해도 KT와 스카이라이프가 윈윈하는 전략을 쓸 수 있었다. 스카이라이프는 실시간 방송이 원활히 이뤄졌고 KT는 VOD가 주력이었다. 올레TV와 스카이라이프를 합친 결합상품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KT는 국내 유료방송사업자 1위에 등극했다. 여기까지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런데 KT가 실시간 채널을 확보한 이후부터는 가입자를 빼가는 등 달라진 행보를 보였다.”

▲ KT스카이라이프 상암 사옥. 사진=금준경 기자
▲ KT스카이라이프 상암 사옥. 사진=금준경 기자

-  KT 입장에서 스카이라이프가 필요 없어진 것인가.
“전산 관리를 KT에서 하고 있다 보니 이용자분들이 스카이라이프 약정이 끝날 때가 되면 KT에서 파악해 연락을 돌린다. 스카이라이프 상품을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 올레TV상품이 더 싸고 넷플릭스 등 혜택도 많으니 전환하라고 권하는 내용이다. 스카이라이프 직원들한테도 올레TV로 갈아타라는 전화가 자주 올 정도다. 지역의 현장 영업 상황을 보면 KT지사와 스카이라이프지사가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 이용자 입장에선 의문이 들 것 같다. 스카이라이프 상품이나 올레TV 상품이나 같은 KT의 것인데, 왜 올레TV로 옮기라고 하는 걸까? 
“올레TV 상품을 판매하면 KT 모회사 수익으로 잡힌다. 반면 스카이라이프와 결합상품(OTS)을 팔 경우 KT가 스카이라이프와 수익을 나눠야 한다. 모회사 수익만을 실적에 반영하다 보니 KT 입장에선 올레TV수익만 중요해지는 거다. 더구나 KT입장에선 LG와 SK의 이용자를 데려오려면 막대한 영업 비용이 든다. 하지만 자회사 이용자를 데려오는 데는 영업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우리는 스카이라이프의 실적도 인정이 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룹 전체의 가입자를 관리해야 한다. KT가 해야 할 건 글로벌 OTT사업자와 경쟁이지, 자회사의 몫을 뺏는 게 아니다.”

▲ 스카이라이프 사무실 곳곳에 붙은 피켓
▲ 스카이라이프 사무실 곳곳에 붙은 피켓

- 냉정하게 보면 IPTV와 OTT 시대에 위성방송이 사양산업이라는 지적이 있다.
“플랫폼 측면에서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몇 가지 노력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DCS라고 불리는 ‘접시 없는 위성방송’ 상품이다. 전화국에 대형 안테나(접시)를 설치하면 각 가정에서 안테나 없이 방송을 볼 수 있고, 품질도 더 좋아지고, 가정마다 설치공사를 안 해도 된다.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 중인데 반응이 좋다. 하지만 본격 도입하기에 앞서 KT와 협의 과정에서 허들에 걸려 있다. KT가 망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KT가 요구하는 정도를 지불하면 사업의 수익성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DCS가 도입되면 더욱 직접적인 경쟁 구도가 돼 KT 실적이 떨어지는 걸 우려하는 것 같다.”

- 또 혁신 시도를 하는데 KT에 가로막힌 사례가 있나. 
“텔레비’(TELEBEE)라고 하는 셋톱기반 OTT를 출시한 적이 있다. 당시 KT출신 CEO와 KT에서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결국 철수하게 됐다. 그러면서 KT는 시즌이라는 별도의 OTT를 만들고, 지난해부터 미디어 수직계열화를 했다. 이런 상황이니 KT가 자사 서비스만을 위한 판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 스카이라이프 텔레비 홍보 이미지
▲ 스카이라이프 텔레비 홍보 이미지

- 스카이라이프 자회사 중 ‘애로부부’ ‘강철부대’를 채널A와 공동제작한 스카이TV라는 콘텐츠 업체도 있는데, KT가 스카이TV를 소유하려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스카이라이프는 스카이TV 자회사를 통해 콘텐츠 분야에도 투자를 해왔고, ‘강철부대’를 비롯한 히트작을 냈다. 콘텐츠가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제작 역량을 갖추고 있어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고 봤다. 그런데 KT측에서 스카이TV의 지배구조를 KT 중심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했고 스카이라이프 구성원들의 반발로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스카이라이프가 현대HCN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정작 현대HCN의 제작 자회사 현대미디어의 인수 주체는 KT측(KT스튜디오 지니)으로 바꿨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미래를 위한 우리의 혁신 시도마저 KT에 의해 저지당하는 것 아닌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 통일방송으로서 위성방송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긴 했지만,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는 데 방송의 힘이 크다고 생각한다. 방송과 미디어의 문화적 교류를 위해선 별도의 망 설치 없이도 (위성을 통해) 한반도 전체를 커버리지할 수 있는 방송이 중요하다. 통일을 대비한 위성방송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 지부장. 사진=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 제공
▲ 김일권 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 지부장. 사진=언론노조 스카이라이프지부 제공

- KT의 개입 구조, 어떻게 바꿔야 하나.
“서로가 윈윈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스카이라이프 구성원들은 KT그룹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그간 스카이라이프 임원 대부분을 KT출신 낙하산으로 채웠고, 위성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인사들이 실권을 가졌다. KT를 위한 경영이 이뤄지다보니 구성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위성방송 어려운 상황 맞다. 그러니 플랫폼 개선과 자회사 콘텐츠를 통한 사업을 이어가야 하는데, 우리의 팔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조치 하나하나가 우리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KT를 위한 조치인지 의문이 든다. 이 정도면 식민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독립 경영을 보장해야 한다.”

-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HCN 인수 당시 KT가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어 공정거래위원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의견을 냈다. SK를 비롯한 타 통신사에서도 KT의 우회인수 의혹을 제기한 상황이었다. 정부에서 충분히 검토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정부는 허가를 냈다. 현대HCN과 같은 케이블SO는 지역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고, 보도 기능도 있기에 철저한 사전검토가 충분히 이뤄져야 함에도 주무기관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과기정통부가 KT가 자회사 위성방송과 손자회사 HCN에 대한 경영권 강탈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독립 경영을 위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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