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대북심리전 확성기 배치와 부정 입찰, 특수작전용 칼 ‘짝퉁’ 납품 사건, 통일연락사무소 폭파, 2차 연평해전 전사자 오분류 사건. 문형철 기자가 처음 알린 굵직한 사건 일부다. 육군 장교 출신인 그는 “군 밖에서 군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결심으로 기자가 됐다고 했다. 한 국방부 취재기자는 그를 “국방부가 아플 기사를 많이 쓴 기자”라 했다.

문 기자는 국방부와 지속적인 갈등을 겪어온 기자이기도 하다. 그가 겪은 치도곤은 국방부 출입기자단과도 깊이 엮여 있다. 기자단 밖에서 군 비리를 파헤치며 국방부의 ‘무대응’에 부딪혔다. 출입기자가 된 해, 국방부 비판 기사를 쓰고서 기사 삭제와 퇴사를 겪었다. 기자단은 쓰지 않은 기사였다. 군 내부와 국방부 기자단 안팎을 경험한 그는 기자단을 국방부의 “가두리 양식장”이라고 표현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영등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전투 지휘 장교가 기자 된 이유 ‘보여지는 사실이 진실일까’


장교 시절 그는 매뉴얼대로 행동하고도 징계 받을 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사 때문이다. 2002년 강원 고성 22사단 전방 센터에 큰 불이 났다. 소대장이던 그는 장병 피신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화재 초반 현장에 들어가 보존할 시설물을 제거했다. 덕분에 인명 피해도, 폭발 사고도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어느 신문사에 사진기사가 뜬 거예요. 제목이 ‘불 났는데 소초에 사람이 없다’. ‘보여지는 사실이 정말 진실일까’를 뼈저리게 배웠어요.”

군 내 부조리도 여럿 겪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부나 정치부 기사로 나올 일들”이다. 대위 진급을 앞두고 현실에 안 맞는 명령엔 반박하기 시작했다. 지휘관에게 곱게 뵐 리 없었다. 오른쪽 무릎과 발목 부상이 겹쳤다. 그는 전역을 결정했다. 그는 “나가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7년 대위로 전역해 일본에서 대학원 수료를 마쳤고, 2013년부터 군 전문 매체 디펜스21에서 기자로 일했다.

▲디펜스21 기자 시절 일본 시즈오카 항공자위대 방문 취재한 문형철 기자. 사진=문형철 제공
▲디펜스21 기자 시절 일본 시즈오카 항공자위대 방문 취재한 문형철 기자. 사진=문형철 제공

2015년께 디펜스21이 문을 닫자 다른 언론사가 입사 제의를 해왔다. 파이낸셜뉴스는 입사 전부터 ‘우리 회사가 수년 동안 국방부를 못 뚫고 있다,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국방부는 기자단에만 공식 취재 지원을 한다. ‘백브리핑’(비공식 브리핑)과 연락망, 장·차관과 대변인 등과 만남을 배타적으로 제공한다. 기자단에 들려면 ‘방문기자’로 등록해 3개월 간 브리핑 출석률 100%를 채우고, ‘등록기자’로 6개월 간 100%를 다시 채운 뒤, 기자단 3분의 2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 국방부의 공보 대상인 언론을 기자들이 심사하는 모순이 나타난다. “그렇게 매일 앉아서 보도자료를 쓰는 기자가 됐죠.”

“정작 단독보도한 기자는 브리핑 이뤄지는 기자실 밖에”


문 기자는 얼마 안 가 자괴감이 왔다고 한다. 그는 보도자료 밖에서 기사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전투병과 장교로 복무할 때부터 군 보급품을 문제로 여겨왔다. 방사청 조달시스템 사이트를 뒤지다 보니 당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논란이던 ‘대북 확성기 사업계획’이 떴다. 정부 발표와 달리 기준이 정성평가 위주였다. 관계자들에게 확인해 대북확성기 납품 사실과 함께 부정 입찰 의혹을 첫 보도했다.

“국방부가 보도 초기에 아예 반론이나 대응을 안 했어요. 그러다 여러 언론이 받아 쓰니 2017년께 처음으로 백브리핑을 열었어요. 기자실에서, 기자단 기자들에게만요. 정작 최초 취재한 기자가 자기가 한 보도에 대한 설명을 못 듣는 형국이 된 거죠. 오히려 일부 기자가 문제 제기해서 백블을 들은 적 있어요.” 이후 향응과 성능평가 기준 조작, 특혜 입찰이 확인돼 군과 납품업체 관계자들에 유죄가 확정됐다. ‘대북확성기 비리 사건’이다.

▲문형철 메트로신문 기자가 지난달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형철 메트로신문 기자가 지난달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그는 국방부 특유의 폐쇄성이 기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국방부는 다른 정부부처보다 특히 취재의 어려움이 많은 곳이에요. 내용이 보안이다, 뭐다, 여러 이유로 가려지기도 하고, 그게 맞기 때문에 구분하기도 어렵기도 합니다.” 다른 행정기관은 기자를 ‘관리’ 대상으로 보지만, 국방부는 ‘막을 대상’으로 대우한다는 게 문 기자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단은 국방부에 유용한 도구다. 그는 “국방부가 조직 편의를 위해 기자단을 이용하려는 습관이 배어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기자단 내 기자들은 국방부가 주는 정보를 받다보면 다른 기자들에게 더 폐쇄적이 되고, 연대보단 경쟁을 하게 된다”고 했다.

지난해 통일연락사무소 폭파 때도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다. “다른 경로로 기자단보다 먼저 취재 정보를 얻었어요. 그런데 쓰지 말라면서 대는 이유가 ‘기자단 엠바고(보도 유예)라서’. ‘확인해드릴 수 없다’도 아니고,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설명도 아니었어요. 기자단 엠바고를 비기자단 기자들이 알 길이 있나요? 이해할 수 없는 논리죠. 어떻게 보면 기자단을 방패막이로 한 횡포지요.”

▲문형철 당시 디펜스21 기자. 사진=JTBC 홈페이지 갈무리
▲문형철 당시 디펜스21 기자. 사진=JTBC 홈페이지 갈무리

국방부의 부당 대응, 동료들은 조용했다…연대 막는 기자단 제도


문 기자는 자신이 국방부 출입증을 안긴 언론사를 퇴사했다. 국방부 오류를 기사로 지적한 뒤다. 문 기자는 2018년 7월 2차 연평해전 16주기를 맞아 국방부가 제작한 추모 포스터에 ‘전사자’를 ‘순직자’로 오기했다고 기사를 써 지적했다. 그는 “전투 중 사망한 ‘전사자’와 부대임무 중 사망한 ‘순직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썼다. 기사화에 전엔 대응을 거부하던 국방부가 “기사가 국방부의 ‘팩트체크’를 희화화”했다고 입장문을 냈다.

[ 관련 기사 : 국방부 출입기자의 ‘이상한’ 퇴사 ]

기사는 그와 상의 없이 삭제됐다. 국민일보 출신인 최현수 당시 국방부 대변인과 국민일보 임원을 했던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이 친분 관계가 깊다. 문 기자는 최현수 당시 국방부 대변인이 파이낸셜뉴스에 직접 기사 삭제를 요청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결국 그는 회사와 갈등 끝에 퇴사했다.

“동료 기자가 옳은 기사를 쓰고 그런 일을 당했는데 기자단은 움직이지 않았던 거죠.” 문 기자는 “지난달 20일에도 2차 연평해전의 고 조천형 중사의 상사 진급 소식이 나왔는데, 기사에 아직도 ‘전사’ 아닌 ‘순직’으로 표현하고 있더라”며 씁쓸해 했다.

▲문형철 메트로신문 기자가 지난달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문형철 메트로신문 기자가 지난달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기자단 카르텔도 카르텔이지만, 무엇보다 기자단 제도가 언론 보도를 하향 평준화하는 문제가 있잖아요. 정부 부처 기자단 제도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브리핑 내용은 일정 기준에 따라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는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 셜록의 기자실 사용과 출입증 발급 신청 거부 취소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데에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국방부의 경우 재외국민 피랍문제나 군 작전 관련 세부사항을 공유하려면 어느 정도 공보 대상 언론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 기자는 이에 “보도 윤리를 어기는 일부 언론이 존재한다면 취재 제한을 완벽히 없애기는 쉽지 않더라도, 차별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라며 “현실을 보면 비기자단이라는 이유로 ‘백블’을 아예 못 듣는다. 보도자료를 시간 차를 두고 주는 차별이 최근까지 있었다”고 했다. 해외 언론사들이 국방 담당으로 ‘전문기자’를 운영하는 이유다.

그는 메트로신문에서 군 전문기자로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방문 기자 ‘신분’이다. 대변인 등 공보 관계자들에 국방부 입장을 묻는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해도 거의 답변을 얻지 못한다. 지난해 3월엔 국방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출입기자나 등록기자는 두고 방문기자만 브리핑실 출입을 금지해 논란이 일었다.

문 기자는 국방부에 바라는 점을 묻자 “언론을 자기 자랑의 마이크로만 보지 말고 ‘돋보기 언론’을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국방부는 애초 시민과 언론에 공보 의무를 지는 곳입니다. 오류를 알려줄 때 받아들이고 성찰해 극복하는 집단이 되길 바랍니다. 경마 눈가리개는 빨리 뛸 순 있어도 오래 뛸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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