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현재, 종합편성채널의 콘텐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예능’이다. ‘시사 토크’에 지나치게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TV조선과 채널A마저 달라졌다. TV조선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우리 이혼했어요’ 등의 콘텐츠를 연달아 성공시켰고, 채널A도 ‘강철부대’ ‘하트시그널’ 등 작품이 큰 주목을 받았다. 

더 이상 종편의 산업적 성공은 의심 받지 않는다. 다만 ‘여론 다양성 증대’ 측면에서는 물음표가 남는다. 종편 도입을 위해 신문·방송 겸영을 금지한 기존의 법 개정을 강행할 당시에 강조된 논리는 ‘방송산업 활성화’와 ‘여론 다양성 증대’였다.

종편은 여론 다양성을 증대하고 있을까. 지난해 방송통신연구에 게재된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 장르 다양성 변화 연구’는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종편 4사의 장르 다양성이 구현되는지를 살폈다. 그 결과 2018년 다양성 지수(0.83)가 오히려 2012년(0.84)보다 낮게 나타났다. 전반적 추이를 보면 줄어들었다가 다시 늘어나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종편 도입 초기 장르 다양성이 구현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 TV조선 방영 중 교양 프로그램 리스트. 대부분이 생활정보, 건강 프로그램이며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 TV조선 방영 중 교양 프로그램 리스트. 대부분이 생활정보, 건강 프로그램이며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장르 내의 다양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종편 4사의 교양 장르는 지나치게 생활정보·건강 프로그램에 치우쳤다. TV조선이 홈페이지에 방영 중이라고 밝힌 교양 프로그램 24개 가운데 ‘굿모닝 정보세상’ ‘기적의 습관’ ‘알맹이’ ‘건강 면세점’ ‘내 몸을 살리는 발견 유레카’ 등 14개가 생활정보·건강 관련 프로그램으로 나타났다. MBN은 15개 중 7개, JTBC는 17개 중 7개, 채널A는 12개 중 4개가 관련 프로그램이 차지했다. 방송사별로 적게는 교양 프로그램의 3분의 1이, 많게는 절반 이상이 생활정보와 건강 프로그램으로 채운 모양새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생활정보·건강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많은 점은 ‘협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의사, 건강 제품 업체 등의 협찬을 위해 토크를 구성하고, 일부 상품은 홈쇼핑 연계 편성을 통해 광고 효과를 극대화한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건강 프로그램은 사실상 100% 협찬을 위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협찬 문제는 종편에서 지상파로 넘어오면서 지상파도 일부 (문제적) 협찬을 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실제 종편에서 문제가 된 홈쇼핑 연계편성의 경우 MBC와 SBS도 종편 못지 않게 많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교양 장르에서 ‘건강 프로그램 과잉’과 함께 ‘다큐멘터리의 소극적 편성’ 경향도 두드러졌다.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 장르 다양성 변화 연구’는 “4개 채널 모두 다큐멘터리 장르의 편성비율이 새벽 시간대에 집중되면서 가시청시간대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 채널A '나는 몸신이다' 타트체리 협찬이 들어간 회차 갈무리
▲ 채널A '나는 몸신이다' 타트체리 협찬이 들어간 회차 갈무리

시간이 흐를수록 종편 다큐멘터리 비중이 줄어들기도 했다. 2012년과 2018년 편성을 비교해보면 채널A를 제외한 3개 채널에선 다큐멘터리 방영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MBN의 2012년 다큐멘터리 방영 비율은 24%였는데 2018년 19%로 줄었다. 같은 시기 TV조선은 26%에서 15%로, JTBC는 14%에서 8%로 줄었다.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일반적으로 방송 교양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대작 다큐멘터리, 지식 강연 등이 포함돼야 하는데 종편에선 이 같은 프로그램이 누락돼 있다”며 “종편이 제공하는 교양은 협찬 받은 상품에 대한 얘기를 하거나 자극적인 고발, 폭로물과 가부장적 관점의 휴먼 다큐가 많다. 다양하지 않고 납작하고, 수익을 위한 교양으로 오염시키고 있다”고 했다. 

홍성일 강사는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가 인권 문제에 무더졌다면 그 이유의 상당 부분이 종편이 제공하는 교양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라며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 같은 경향이 지상파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의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종편에서 일했던 한 PD는 “예능 측면에선 지상파 체제가 무너지고, 종편이 성공하면서 밀리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며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전무한 상황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레인코트 킬러’와 같은 다큐멘터리를 유통한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가 마음 먹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여건을 갖추면 방송사 자체가 갖는 차별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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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관계자는 “종편은 다큐, 장애인, 어린이, 소외자, 약자에 대한 방송 등 지상파에 비해 공적 의무에 대한 부담이 적다”며 “한 때 어린이 방송을 새벽 시간대에 편성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간 종편이 공적 책무를 다하지 않고 일탈하는 걸 사회가 눈감아온 측면이 있다”고 했다.

보도 측면에서도 ‘다양성’ 구현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종편 도입으로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양적으로 증대한 건 사실이지만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가 더 많이 다뤄졌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노동자에 적대적인 보수 언론의 프레임은 방송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개국 당시 여론 독과점 우려와 함께 재벌 이데올로기가 강화될 것을 우려했다”며 “노동조합에 기득권 이미지를 형성하고,  반감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이를 재생산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대선에서 노동이 사라진 배경에는 종편의 보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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