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개국 10년을 맞아 미디어 비평가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정준희 겸임교수의 11월30일자 서면 답변을 거의 살려 옮긴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현재 MBC ‘100분 토론’과 KBS ‘열린 토론’의 진행자 및 TBS 미디어비평프로그램 ‘정준희의 해시태그’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정준희 겸임교수는 종합편성채널이 지난 10년간 국내 미디어 환경에 끼진 변화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 방송미디어 업계는 지상파-보도제작 중심의 공공부문에 기초를 두어 구성된 일종의 ‘규율된 시장’이었다. 이와 같은 구도는 그리 오래지 않아 약화되거나 축소될 운명에 처했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때문에 일종의 ‘조직적 퇴각’ 혹은 ‘중심이동’ 같은 미디어 정책 설계가 필요했다. 여기서 느닷없이 등장한 종편은 무규율의 시장, 혼란스런 퇴각, 중심의 비체계적 분산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혹자는 어차피 붕괴되거나 약화될 시장 질서를 기성 법제가 붙잡아두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에 오히려 종편이 없었어도 발생했을 상당 부분 불가피한 변화이거나 ‘지체된 진화’라고 볼지도 모른다. 실제로 종편 도입 당시의 논리는 그랬다. 하지만 당시의 논리를 다시 정확히 되짚어 보자”면서 “종편은 독과점적이고 ‘지나치게 비대한’ 지상파 방송 시장에 다양성을 증진하고 글로벌 미디어를 육성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당시의 환경이 그러했나? 또 실제로 그러한 방향으로 진전했나?”라고 되물었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 ⓒTBS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 ⓒTBS

정준희 겸임교수는 이와 같은 전반적 변화 외에도 세 가지 측면을 짚었다. “첫째, 방송 광고시장의 혼돈이다. 우리나라는 지상파와 케이블이라는 비교적 잘 분화된 방송 광고 시장을 갖고 있었지만 종편의 등장으로 인해 이것이 깨졌다. 이미 축소되고 있었던 광고 파이 갈라먹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신문시장의 노하우가 그대로 이전된, 보도력을 활용한 약탈적 광고 영업은 물론 홈쇼핑 연계편성이라는 희대의 방식까지 들여온 종편은 방송 광고 시장의 ‘조직적 재편’을 불가능하게 했다.”

“둘째,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발생한 방송 내용규제의 혼돈이다. 방송 내용규제는 상당 부분 ‘보편적’이다. 지상파와 비지상파가 달리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케이블 영역에서 소폭의 자유가 관습적으로 부과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종편은 자유는 케이블처럼 누리고 특권은 지상파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가져갔다. 그 결과 방송에 대한 내용규제가 마치 채널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당연한 양 인지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셋째, 정치의 오락화‧과학의 예능화다. 종편은 거의 모든 사회영역을 상업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와 시사 영역이고, 과학과 의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미디어를 정치에 훨씬 더 가깝게 끌고 갔고, 정치를 상업적 메커니즘에 더 많이 노출 시켰다.”

10년 전, 종편 출범 초기만 해도 종편 4곳 중 2곳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모두 살아남았다. 그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정준희 겸임교수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측면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전하면서 “시장질서가 잘 안 잡혀 있는 상태에서 대단히 비시장적인 방식으로 생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와의 결탁에 의한 특권(채널 위치, 규제에서의 상대적 유리 등) 확보, 정치의 오락화 및 방송의 정파화를 통한 시장 분할, 그로부터 얻어낸 신문-방송 시너지 영향력, 그에 기초를 두어 얻어내는 정치적 이득”을 ‘비시장적 방식’으로 묘사했다. 그러면서 “물론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나름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것을 보도와 연결시켜 상업적으로 생존할 기반도 닦았다”고 덧붙였다. 

▲TV조선. ⓒ미디어오늘
▲TV조선. ⓒ미디어오늘
▲채널A. ⓒ연합뉴스 
▲채널A. ⓒ연합뉴스 

반복되는 종편의 불공정성 논란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대안은 명확했다. 그는 우선 “불공정성의 문제로 환원하기보다는 반시장적 행위로 보는 게 옳다”고 정의한 뒤 “종편을 재승인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문제로 규율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경제적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불공정행위를 명확히 하는 질서와 규율을 설치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강조했다. “약탈적이거나 반시장적인 방식으로 먹고살지 못하게 하는 한편, 그것을 위반했을 경우 경제적 타격을 입어서 ‘비즈니스적인 판단’에 의해 질서 안으로 편입되거나 그것을 포기하게 하거나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MBN. ⓒ연합뉴스 
▲MBN. ⓒ연합뉴스 

지난해 MBN은 명확한 방송법 17조 위반에도 6개월 영업정지와 조건부 재승인으로 ‘퇴출’ 대신 ‘생존’했다. 이를 통해 한 번 진입한 방송사 퇴출은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다. 일각에선 ‘재승인제도’ 무용론과 함께 종편 사업을 등록제로 전환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와 관련 정준희 겸임교수는 “등록제 도입도 고려할만하다. 그러나 보도력으로 약탈적 시장 행위를 일삼는 한국적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등록제가 대안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엄정한 시장질서를 도입해 보도가 ‘돈이 되는’ 사업이 되기만은 어렵다는 것, 규제기관의 실효성 없는 ‘재승인’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유불리에 의해 비즈니스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질서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