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사가 보도한 수천 건의 기사가 실은 기사로 위장한 '광고'였다고 합니다. 홍보 대행사와 건당 수십만원씩 받기로 계약하고 2,000여건의 가짜 기사를 포털에 송출했답니다. 그 언론사에는 그런 기사 작성을 전담하는 직원까지 있었다는 군요. 매년 300억대 정부지원금을 받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결국 연합뉴스는 이 사태로 인해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로 부터 '포털 퇴출' 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관련 기사: 연합뉴스 충격의 강등, 포털 편집 뉴스 화면에서 사라진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7월 부터 관련 보도를 하자, 연합뉴스는 처음에는 "억측과 과장해석"이라 했지만 지난 8월 기자회견에서는 "매우 적절치 않은 행태였다"며 "깊이 사과드린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자회견 내용 중에도 이상한 표현이 보였습니다. 누군가 연합뉴스의 입장이 달라진 이유를 묻자, "(문제의) 본질은 연합뉴스가 국가기간통신사로서 바람직한 일이냐에 대한 것인데, 판단 착오가 있었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만일 '국가기간통신사'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란 걸까요? 이후 제평위의 포털 퇴출 조치까지 나오자, 연합뉴스는 "국민 알권리 제약"운운하며 연일 제평위 비판 기사를 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비단 '연합뉴스'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사태의 파장에 비해 다루는 기사수가 적습니다. 오히려 제평위 조치가 부당하다는 논조의 기사가 더 많고요. 여야 대선후보들도 일제히 제평위 공격에 나섰더군요. 정의당 마저 그러니 할말을 잃었습니다. 다른 언론사들은 자기들도 해왔던 짓이라 그렇고 정치권은 연합뉴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어 그렇다지만,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를 언론사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아닐까요. 언론 수용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떨까요.

기사형 광고? 돈받고 쓴 기사!

미디어오늘을 포함한 대다수 언론이 이 사태와 관련해 '기사형 광고'라는 말을 씁니다. 기사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광고물이란 뜻인데, 광고주와 언론사의 입장을 담고 있습니다. 이조차 광고의 한 유형으로 보는 것이죠. 그리고 이 사태를 부적절한 광고 사건 정도로 느끼게 합니다. 언론 수용자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연합뉴스가 보도자료를 베껴쓴 수천건의 게시물은 엄연히 '기사'였습니다. 다만 누군가로 부터 청탁과 돈을 받고 그 대가로 쓰여진 기사죠.

그리고 언론사와 광고주로서도 광고가 아닌 '기사'로 보여지길 바랬던 거지요. 그로인해 더욱 높아질 광고효과와 청탁대가를 노린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도 '기사형 광고' 보다는 '돈 받고 쓴 기사'라는 말이 더 본질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언론계와 정치권에 다시 물어봅시다. 스스로를 언론인이라고 말하는 사람 중 '기사형 광고가 왜 문제냐?'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돈받고 기사쓰는게 왜 문제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더라도 대놓고 그러지는 못하겠지요. 그리고 정치권. 제평위의 이번 조치는 오랜 시간 조직적으로 수천 건의 기사를 거/래/해왔던 언론사에게 더이상 언론으로서의 자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재갈물리기"(이재명)이고,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로서의 업무를 제약하는 결정"(윤석열)입니까? 여전히  제평위의 결정은 "과도한 조치"로서 "재검토" 되어야(정의당) 합니까?

부적절한 기사? 범죄적 기사!

형법상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죄를 말합니다. 연합뉴스는 불특정다수의 독자들에게 기사로 가장한 광고를 배포했고(기망) 그 대가로 홍보 대행사로부터 막대한 금전적 수익을 챙겼으니, 사기에 가깝습니다. 다만 사기가 되려면 기망에 의한 재산 피해가 있어야 하는데, 홍보 대행사는 속아서 광고비를 지급한 것도 아니었고 재산 피해를 입기는 커녕 광고 효과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연합뉴스가 사기죄로 처벌받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형법상 '배임수재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을 취득하는 죄를 말합니다. 이번 사태처럼 돈을 주고 기사를 청탁하는 행위는 대법원도 인정한 '부정 청탁' 입니다.

만일 기자가 돈을 받은 대가로 기사를 쓰거나 쓰지 않는다면 배임수재죄로 처벌 받습니다. 실제 그런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기자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언론사에게 들어가면 배임수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언론사에게 기사 작성이 '타인의' 사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사 작성 대가로 기자가 돈을 받으면 처벌되지만 언론사가 돈을 받으면 처벌이 안되는 이상한 상황인셈이죠.

그래서 결국 연합뉴스가 이번 사태로 '형사처벌'을 받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부정청탁금지법도 회사에게 직접 적용이 되지는 않습니다.  신문법에 "기사와 광고를 혼동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구분해 편집"하라는 의무규정이 있으나 처벌 규정이 없습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수천건의 기사가 '불법' 기사임은 분명하지만 처벌대상이 되지는 않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2000여건의 기사가 '범죄적' 기사가 아니라 할수 있을까요? 언론 수용자 입장에서 기사 작성 대가로 기자가 돈을 받은 것과 언론사가 돈을 받은 것을 구분할 이유가 있을까요? 오히려 기자 개인이 그랬을 때보다 언론사 전체가 조직적 반복적으로 그랬을 때, 죄질이 더 안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 연합뉴스 기사형 광고 논란 타임라인. 디자인=안혜나 기자
▲ 연합뉴스 기사형 광고 논란 타임라인. 디자인=안혜나 기자

정파성과 상업성을 뛰어넘는 문제

흔히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 두가지로 '정파성'과 '상업성'을 꼽습니다. 특정 정파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기사가 많고(정파성), 대기업 등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 혹은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기사가 많다(상업성)고들 하지요. 그런데 기사 작성을 대가로 직접 돈이 오가는 상황에서 정파적이다, 상업적이다, 라는 비판은 좀 새삼스럽습니다. 직접 돈을 받고 기사를 쓰기도 하는 마당에 다소 정파적이고 상업적이면 어떻냐는 주장은 꽤 그럴듯 하지 않은가요?

여러모로 이번 연합뉴스 사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근간을 흔드는 사태가 아닐런지요. 그 사회적 신뢰라는 것이 결국 언론의 존재 기반일테고요. 그럼에도 특히 언론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번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대단히 혼란스럽습니다. 솔직히 '언론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에 대한 잣대가 무뎌지고 또 무뎌지다 보니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나, 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여전히 사태의 심각성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한번쯤 언론 수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니, 차라리 그 수용자들 마저 이번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상을 상상해 보시지요. 기자들이 돈 받고 기사쓰는 게 뭐 그렇게 큰 문제야, 원래 기자들이 그런 사람들 아니었어?! 라는 인식이 만연한 세상 말입니다. 생각만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