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숨진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가 전씨의 재임 중 고통과 상처를 입은 이들에 남편 대신 사과한다고 밝혔으나 오월 단체와 희생자 유족들은 “이게 사과냐”며 반발했다. 광주나 5·18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어 무슨 잘못에 사죄한다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탓이다.

유족과 오월단체 당사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하라고 볼 수 없다”며 “절대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다, 전두환은 죽어서도 심판받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순자씨는 27일 오전 영결식장에서 가족대표로 나와 “오늘 장례식을 마치면서 가족을 대신해,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깊이 사죄를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씨는 “6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부로서 함께 했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하직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며 “남편은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했다. 또 화장해서 북녘땅이 보이는 곳에 뿌려 달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돌이켜보니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나신 후 저희는 참으로 많은 일을 겪었다”며 “그럴 때마다 남편은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과 어디에도 광주시민들이나 유족, 또한 5·18 학살 책임과 발포명령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사죄 한마디 안한 전두환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지자 떠밀리듯 한 사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와 유가족들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씨와 유가족들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훈 5·18유족회장은 27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5·18 언급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게 사과냐.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국민의 분노를) 회피하려고 사과의 모양새를 냈다. 진정성과 진실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원수도 고인이 되면 애도하지만, 나는 전두환에는 (애도)할 마음이 없다”며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행불자 가족이 많다. 그들의 암매장이라도 해서 가족품에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허삼수나 허화평 같이 살아남은 전두환 측근들이 지금이라도 발포명령자와 학살 진상규명에 나서고 대신해서 사죄하고, 증언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회장은 “나는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다”며 “고인이지만 용서할 수 없다. 파렴치한 일을 많이 한 전두환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안다. 그 행위를 지속적으로 진상규명해 나가고, 형사사건은 본인 사망으로 기각되겠지만 민사사건은 계속 진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도 이날 오후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순자 사과를 두고 “그 정도 사과를 수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과할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과거 전씨가 백담사에 쫓겨갈 때 했던 정도의 사과”라고 지적했다.

조 이사는 “사과받아야 할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이후 해야할 일이 있다”며 “왜곡되고 그릇된 내용이 많이 담긴 전두환 회고록부터 폐기처분해야 하고, 29만원 밖에 없다는 얘기를 가족들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이사는 “특히 오월 학살과 관련해 아직도 가족이 시신을 찾지 못한 행불자 가족도 있고, 끔찍하게 학살된 가족은 아직도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전두환 가족들의 구체적인 사과와 사죄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 이사는 “이런 게 없다면 사과 발언만으로 진전성 느낄 수 없고, 피해자 유족들이 위로받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순자씨 사과의 의미를 두고 조 이사는 “국민의 분노가 크기 때문에 분노에 대한 최소한의 답을 한 것이라고 보인다”며 해석했다.

‘편안한 모습으로 하직해 감사하다’는 표현을 두고 조 이사는 “오히려 정반대다. 학살자,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다. 국민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비참한 모습이 아니냐. 그렇지 않으면 정호용이 왜 미국으로 도망갔겠느냐. 그런 것을 살피고 고려하지 않는 무감각한 표현이 아니겠느냐”고 개탄했다. 조 이사는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반증이며, 국민의 분노가 남아있다고 느끼니 역설적으로 편안히 갔다고 한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가 27일 영결식에서 전두환 대신 사죄의 말을 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가 27일 영결식에서 전두환 대신 사죄의 말을 하고 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조 이사는 전두환의 죽음을 두고 “전두환이 사망했다고 해서 국가폭력의 범죄, 심판, 진상규명 등 역사적 심판은 끝나지 않는다”며 “죽었어도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사)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사)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서울지부, (사)5‧18민주화운동구속부상자회 서울지부, 삼청교육대 전국피해자연합회,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공작 진실규명추진위원회, 김사복기념사업회, 안병하추모사업회, 평화무궁화클럽, 평화재향군인회 등 전두환 정권 피해자 단체들도 이순자 사과를 비판하면서 불의한 재산의 사회환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5공 피해자인 우리가 볼 때 그 어떤 피해자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며 “5‧18뿐만 아니라 삼청교육대, 학생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 백골단에 의한 노동탄압과 철거민 탄압 등 전국에 걸쳐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의 진정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전재국이 지난 2013년 9월10일 선언한 추징금 완납 약속을 이행하고, ‘전두환 등 신군부 부정축재 환수특별법’을 제정해 불의한 재산을 환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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