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단시간에 넷플릭스 시리즈 1위에 오른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웹툰 원작을 어떻게 영상화할지 기대와 우려를 모았던 작품이다. 인간에게 죽음을 예고하고 이를 실행하는 지옥의 사자, ‘죄인’을 지옥에 보내는 ‘시연’ 장면, 최규석 작가의 작화가 살렸던 염세적 분위기가 잘 구현되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19일 공개된 ‘지옥’은 웹툰의 줄기를 따라가면서도 넷플릭스향 콘텐츠의 특성을 보였다. 지옥의 사자는 기괴하지만 적당히 혐오스러웠고, 사실상 살해 장면인 시연은 액션에 초점을 맞춰 연출됐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어느 정도 견디면서 볼 수 있을 수준의 시각적 연출이 어두운 이야기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지옥’의 여러 장면 중에서 예상치 못하게 눈에 들어온 배역이 갓난아기였다. 시리즈 중반부 이후 등장하는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기는 신생아실을 시작으로 극중의 여러 장소를 오간다. 곤히 잠을 자거나 가끔은 웃고 또 울기도 하는 아기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 아기가 아닌 CG로 만들어진 아기이기 때문이다.

그래픽으로 아기를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액션 장면 등의 촬영 시 유아 및 청소년의 신체적 보호를 도모하고, 제작 환경 및 일정에 따른 크리에이티브적 논의를 바탕으로 해당 장면들은 그래픽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포스터 ⓒNetflix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옥' 포스터 ⓒNetflix

글로벌 플랫폼으로 소비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가 폭력적 설정이 다분한 콘텐츠에 미성년자, 특히 갓난아기 배역을 실제 사람으로 등장시키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국제사회에선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미성년자의 연예 활동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헐리우드’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미성년자가 연예산업 활동을 하려면 출연자, 보호자, 고용주가 노동청 허가를 받아야 한다. 1개월 이하 영아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의 연령증명서 및 건강소견서가 첨부돼야 영화촬영장에 고용될 수 있다. 연령대별로 일할 수 있는 최대 시간과 시간대도 세부적으로 제한된다.

유럽연합 지령은 14세 이하는 연 40일, 그 이상의 미성년자는 연 80일 이상 노동에 종사할 수 없도록 한다. 2세 이하는 작업 여하를 막론하고 관련 활동이 불가하다. 독일, 영국 등도 미성년자는 허가를 얻어 활동할 수 있으며 연령대별 세부 활동 여건이 규정돼있다.

한국도 대중문화예술산업법에 따라 15세 미만 청소년의 연예활동은 1주일에 35시간 이하까지 가능하며,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불가하다. 종종 아이돌 그룹의 미성년자 멤버가 일부 활동에서 제외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 밖에 세부적인 내용이나 통일된 규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의 표현의 자유나 예술성은 당연히 고려해야 하지만 아동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표현을 해야 한다면 여러 대안이 고민돼야 한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아기를 인형으로 등장시킨 사례가 있다”며 “최근 조금씩 한국에서도 글로벌 인권 트렌드에 맞춰가는 추세가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라 밝혔다. 

다만 그는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법제화된 내용이 없어 개별적 양심에 맡기는 상황”이라며 “콘텐츠가 (상업적으로) 잘 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보니 이런 논의가 밀리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전했다.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고지글 갈무리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고지글 갈무리 

한편 최근들어 국내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서 ‘동물 복지’를 고려했다는 고지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웨이브 오리지널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경우 관련 회차가 시작하기에 앞서 “동물 관련 장면은 연출된 상황이며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촬영했다”고 알린다.

현재 국내에서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의 동물권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환경의 문제점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동물권 행동 카라(KARA)’가 영화·방송·뉴미디어 종사자 157명 상대로 진행한 ‘촬영현장의 동물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5%가 ‘가이드라인 없이 동물을 촬영했다’고 밝혔다. 촬영현장에서 동물이 처한 환경에 대해선 69%가 ‘나쁘다’고 답했다.

이에 카라는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과 지난해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공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를 비롯한 관련 가이드라인이 강제조항이 아닌 만큼 현장에서의 자발적인 준수 노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OTT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소비 비중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 제작된 콘텐츠가 언제든 세계로 진출하기 수월해졌다.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과에 대한 기대가 여느 때보다 높은 지금, 그 빛이 바라지 않도록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의 권익 보호 논의도 선진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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