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신문은 기자의 글을 지면에 담고 방송은 기자의 말을 영상에 담는다. 과거 기자가 희소할 땐 기록 자체가 중요했다. 기록하는 사람에게 권한이 부여됐고, 시민들은 ‘열심히’ 그 기록을 찾아 읽어야 했다.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기록하는 사람이 누구의 관점인지가 중요해졌다. 권력의 기록이 아닌 시민의 기록이 필요했다. 1989년 민주화 이후 옥천군민들이 ‘우리의 신문’을 만든 이유다. 

기록은 다 같은 기록이 아니다. 기록한다고 누구에게나 전달되지 않는다. 기록하는 사람은 ‘기자’에 한정된다면 신문은 읽지 못하거나 읽지 않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옥천신문이라는 단일 매체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났다. 직업 기자가 아닌 사회적 소수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문화예술에 특화한 전문잡지도 있어야 했다. 신문보다 긴 호흡의 기록도 필요했고 인터넷 없이도 소통 가능한 라디오가 코로나 이후 주목받고 있다. 

기록의 주체는 옥천신문 기자에서 점점 다수의 주민으로 확대하고 있다. 오는 12월 옥천FM 공동체라디오가 개국하면 지역주민들이 직접 라디오 프로그램에 스피커로 나설 예정이다. 이제 옥천에서 지역언론은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매체를 뛰어넘었다. 옥천신문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고 일자리 창출까지 담당하고 있다. 지역신문은 무너져 가는 지역사회를 살리고 행복한 옥천을 만들 수 있을까. 지난 19일 옥천신문사에서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를 만났다.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 1989년 옥천신문 창간호. 사진=장슬기 기자
▲ 1989년 옥천신문 창간호. 사진=장슬기 기자

 

-청소년기자단에서 출발한 소수자신문 ‘옥수수’도 옥천신문이 만들었다는데, 어떤 신문인가?

“공론장에서 소수자들은 특별한 일이 있거나 특정한 날이 아니면 나오지 못한다. 일상적으로 만나려는 시도다. 장애인, 이주여성, 노인, 청소년, 청년들이 직접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청소년 기자들이 쓴 기사를 1면으로 낸다. 청소년기자단 담당하는 인턴기자가 3명 정도 있다.”

-옥천신문 구독하면 같이 보내주나?

“그렇다. 옥천신문(24면)이랑 ‘옥수수(16면)’, 생활정보지인 ‘오크(24면)’지까지 매주 보낸다. ‘오크’는 생활정보지다. 새로 가게 열면 가게소식, 구인구직, 유기견·유기묘 정보, 집 소개 등을 싣는다. 옥수수는 향후 사단법인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에 넘겨 후원자들에게 보내려고 한다.”

▲ 소수자신문 '옥수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길벗체를 쓰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소수자신문 '옥수수'.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길벗체를 쓰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11월19일 기준 옥수수 15호를 발행했다. 그 이전 청소년기자단은 언제부터 운영했나?

“역사는 20년이 넘었는데 하다가 말다가 했다. 이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원고료를 지급했다. 참여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기사 한건당 1만 원씩 주기로 했다. 매주 토요일 1시에 모인다. 전체 인원은 40여명인데 매주 모이는 인원은 열댓명이다. 누구든 기자할 수 있으니 일단 오면 된다. 와서 기사를 쓰고 검토받아서 기사가 지면에 나오면 원고료를 받는다. 초등학생 기자도 확보해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기자단을 만들어 ‘스스로 말하게 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노인과 장애인 기자단도 만들 예정이다. 소수자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연습 공간이다. 아직 비마이너처럼 전투적이진 않지만 일상적으로 취재원을 많이 만나는 중이다. 나중엔 매서운 기사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미디어플랜’을 고민하고 있는데, 왜 필요한가?

“고민한 지 오래됐다. 로컬푸드에 관심이 많았다. 국가의 식량자급률이 중요하듯 지역에도 지역 식량자급률을 위한 푸드플랜이 필요하다. ‘역사’라는 말에서 ‘사(史)’는 ‘입구(口)’와 ‘사람인(人)’의 결합이다. 입은 먹고 말하는 일을 하는데 먹는 건 경제, 말하는 건 정치다. 먹거리와 말을 시민의 힘으로 가져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역사 아니겠나. 옥천의 로컬푸드는 농민들이 주도하고 있고, 말과 글은 32년전 옥천군민 220여명이 만든 옥천신문으로 가지고 있다. 사회적기업 ‘고래실’을 인큐베이팅 해서 월간 ‘옥이네’ 잡지를 만들었고, 생활정보지 ‘오크’지도 발행하고, 소수자 매체 ‘옥수수’도 있지만 인쇄매체는 한계가 있다. 자본력이 없어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초과학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읽지 못하는 사람은 들어야 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봐야 한다. 매체별 균형이다. 미디어플랜은 공론장에서 소외되는 사람들도 빈틈없이 공론장에 다 올라올 수 있도록 미디어의 문턱을 없애려는 계획이다. 전체 공론장에서 누가 소외됐는지 판단하고 무얼 해야할 것인가의 문제다. 필요하면 한글이나 문해력 교육도 하고, 라디오나 TV를 준비하는 이유다.”

▲ 지난 8월6일자 옥천신문 광고
▲ 지난 8월6일자 옥천신문 광고

 

-방송도 준비하나?

“12월21일 청암송건호기념사업회에서 옥천FM 공동체라디오 개국하는데 이때 TV도 같이 개국할 예정이다. IPTV에서 지역방송 하고 있는 곳이 있더라. 옥천이 시골이라 KT를 많이 보니까 KT IPTV 789번을 얻었다. 별칭이 옥천방송 OBN, 익숙하게 ‘풀빵굽는 오븐’이라고 부른다. 풀뿌리 방송이니까 풀빵, OBN은 오븐. 옥천은 시골에다가 인구 5만명이라고 뉴스에도 안 나온다. 우리도 공영방송 수신료 똑같이 내는데 어쩌다 보도자료 베낀 뉴스만 나온다. 청주방송, 대전방송도 옥천신문이랑 기자 수 비슷해 올 여력도 안 될 것 같다. 방송은 돈이 많이 들지만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겨서 좋은 일이다. 나중엔 기상캐스터, 아나운서, 작가도 뽑고 일러스트나 사진작가도 뽑으면 청년들이 미디어 관련 일을 하러 대도시에 가지 않아도 되고 지역의 기록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옥천만의 지역방송이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과일가게, 슈퍼 등을 가면 종편을 켜놓는다. 다이어트방송, 먹방, 연예인 스토킹하는 식의 프로그램 나오는데 넋 놓고 보게 된다. 시간을 빼앗기는 거다. 사실 아무런 쓸모가 없다. 대신 지역정보가 나오는 방송이 있으면 좋지 않나. 군의회도 생중계하고. 옥천은 기자들이 이미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서 방송할 내용은 많다. 전국노래자랑, 쇼미더머니를 옥천에서 진행해도 된다. 여력이 되면 옥천의 조기축구도 중계하고 싶다. 지금의 미디어는 내가 사는 지역을 부정하고 배반하게 만든다. 청년들은 대도시로 떠난다. 지역에 대한 자긍심으로 지역에 살게 만들어야 한다.”

▲ OBN 옥천방송은 옥천FM공동체라디오와 IPTV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OBN 페이스북
▲ OBN 옥천방송은 옥천FM공동체라디오와 IPTV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OBN 페이스북

 

-이러한 고민이 언론계 내부에서도 부족했다.

“공영방송을 혁신하고 수신료를 올린다면서 KBS 지역방송국을 폐쇄하고 메가시티 방송국을 만든다는데 그래선 안 된다. 시군단위마다 풀뿌리 단위로 방송을 만들어야 한다. 주민들과 밀접하게 해야 하는데 언론사 문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옥천뿐 아니라 전국의 각 지역에서 이러한 미디어플랜이 필요해보인다. 

“‘옥천이 공동체미디어에 특화됐다’는 표현은 거부한다. 옥천에만 있을 게 아니라 전국 어디에나 이러한 공론장 미디어플랜이 있어야 한다. 지역신문 지원하겠다며 지역신문발전기금 나눠주고 끝날 게 아니다. 지역신문 하나 살리기 위한 게 아니라 목적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다. 거기서 지역신문은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문화체육관광부뿐 아니라 행정안전부도 결합해야 한다. 건강한 풀뿌리 민주주의 없는 지방자치는 지옥이다.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가 필요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지역신문의 사례를 수시로 모아 연구해야 한다. 저널리즘스쿨 출신들이 건강한 지역신문이 없는 지역에 가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새로운 지역신문이 생기도록 촘촘하게 기획해서 망가진 풀뿌리 공론장을 재건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커뮤니티저널리즘센터’가 공적인 영역에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지금 지역신문발전기금 사무국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맡는데 기금을 위한 독립사무국이 필요하다. 지리상으로 전국 한가운데 있는 옥천에서 할 의향이 있다. 커뮤니티저널리즘스쿨도 하고 있으니까. 가칭 월간 ‘풀뿌리’라는 잡지를 만들어 풀뿌리 언론의 사례만 모아도 콘텐츠가 엄청나지 않겠나.” 

-옥천에도 보도자료만 받아쓰는 지역신문사가 있나.

“있다. 그리고 지방일간지들은 다 (관에서 나온) 보도자료 받아쓴다. 포털에서 ‘옥천’ 검색해보면 그렇다.”

-광역단위의 지방언론사들이 포털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자사 플랫폼을 죽이면서 포털에 들어가면 결국 자극적인 뉴스를 써서 클릭질 장사를 하게 된다. 뉴스는 변질이 되고 네이버 자회사가 되는 꼴이다. 스스로 추구했던 가치나 지향을 포기하는 현상을 (언론계가) 너무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기사형광고 송출로 포털에서 강등된) 연합뉴스도 마찬가지다. 300억 원 지원받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데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당장의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사업, NIE 구독료, 미디어리터러시 등 중요한 사업, 직접 지원을 넓혀야 한다. 소외계층 구독료 지원은 1~2월에 끊긴다. 예산 특성이라며 3월부터 12월까지만 지원한다. 끊기지 않고 1~2월에도 지원하면 좋겠다. 올해부터 ‘지역사회 연계채용’ 사업을 시작했는데 지금 옥천신문 인턴기자들도 이 제도로 뽑았다. 넉넉하게 지원을 해서 지역신문이 인력을 늘리면 좋겠다.”

▲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신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사진=옥천신문
▲ 19일 충북 옥천군 옥천신문사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는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사진=옥천신문

 

-지발위에선 지원을 위해 객관적인 기준을 설정해야 형평성에 맞는데 그러다 보면 사이비언론과 건강한언론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신문을 계속 보고 있는데 시민단체들 면담해보면 금방 확인된다. 비판기사들 읽고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구분된다. 지역을 잘 모르니까 하는 얘기다. 자신들 노력 부족을 얘기하지 않고 구분이 어렵다는 건 게으르다는 뜻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모든 미디어에 도전하고 싶다. 책부터 사진, 단편과 장편영화, 단막 프로그램까지. 작은 영화관을 위탁해 영화제도 하고 싶고, 연예기획사도 만들고 싶다. 지역연예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굳이 서울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옥천에 곧 박물관이 생기는데 미술관, 소극장도 생기면 좋겠다. 대도시에서 한번 와서 공연해주는 게 아니라 지역의 이야기로 자발적인 콘텐츠 순환을 보고 싶다. 어설퍼도 우리의 것으로 하면 좋겠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지역에 남아서 재밌게 일하고 지역에 사는 게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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