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기호사진연감 자료협조 요청”

올해 7월 위와 같은 제목으로 인천·경기 지역 시군구청에 기호일보 사장 명의의 공문이 발송됐다. 공문에는 기호일보의 웹하드 주소와 아이디, 비밀번호 등이 적혀있었다. 기호일보는 왜 자사 웹하드 정보를 인천·경기 지역의 시군구청에 제공했을까.

연감은 해당 신문사들이 1년간 발생하거나 변동한 인천·경기 지역에 대한 일이나 통계, 인물 정보 등을 요약 정리해 한데 묶어 발행하는 정기간행물이다. 기호일보는 인천·경기 지역 종합일간지다. 지역 신문이 만드는 연감은 지역의 각종 정보를 업데이트해 정리하는 기록물이자, 동시에 ‘수익사업’이기도 하다. 미디어오늘 취재를 종합하면 기호일보는 기자들이 각자 맡고 있는 출입처에 ‘기호사진연감’을 팔라고 한다. 이 연감은 한 권당 20만원이다. 기호일보 인천 본사에서 근무하는 기자들은 ‘기호사진연감’을 팔면 권당 인센티브로 4만원(20%)을 받고, 인천 본사 외의 근무지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권당 인센티브로 6만원(30%)을 받는다.

▲지난 9일자 기호일보 17면에 실린 ‘2021 기호사진연감’ 광고.
▲지난 9일자 기호일보 17면에 실린 ‘2021 기호사진연감’ 광고.

기호일보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천일보, 경인일보, 경기일보 등도 매년 연감을 만들어 판매한다. 기호일보 연감이 다른 언론사들이 발행한 연감과 차별화된 점은 ‘사진’ 위주라는 것이다. 기호일보가 공문에 자사 웹하드 정보를 제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해당 사진들은 한글파일에 붙이지 마시고 각각 jpg 이미지 원본 파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청사 전경 사진, 도·부도지사, 시·부시장, 구·부구청장, 각 국·과장, 읍·면·동장 증명사진. 해상도 좋은 사진으로 부탁드린다.”, “활동사진=행사나 특색사업 등의 활동사진 5매~7매(사진설명 필요).” 등.

기호일보가 인천·경기 지역 시군구청에 발송한 공문에는 일정 급수 이상 공무원들의 사진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호일보 측은 공문을 통해 사진 제공을 공식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라 강제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천·경기 지역 시군구청 공무원들은 언론사가 요청해 무턱대고 거절하기 어렵고,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제공한 사진을 단순히 책으로 엮었다는 이유로 20만원씩 주고 사야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최근 경기도에서는 이 연감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

“2021 기호사진연감 구입 협조 의뢰”

기호일보는 연감 제작을 위한 사진 자료협조 요청 공문과 함께 연감을 사달라는 공문까지 덧붙여 보냈다. “앞으로도 더욱 깊은 관심과 지도편달 있으시길 바라며 책임 있는 언론으로서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아래와 같이 귀사(청)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1. 도서명 : 2021 경인지방자치기호사진연감. 2. 금액 : 200,000원.”

▲‘2017년 기호사진연감’.
▲‘2017년 기호사진연감’.

인천·경기 지역 시군구청 소속 A공무원은 “우리가 기호일보 웹하드에 직접 들어가 자료를 기호일보에 주고 우리가 사야 하는 희한한 구조다. 공무원들이 자료를 정리해서 주면 그쪽에서는 그 자료로 책으로 만들어서 다시 사라는 건데 이상하지 않냐”고 지적한 뒤 “음식점에서 기성품을 끓여다 주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새로운 요리를 하는 게 아니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기호일보가 노력한 게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호사진연감’은 인천·경기 지역 시군구청 이외에도 대학, 기업, 단체 등 수백 곳에 판매되고 있다. A공무원은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이 연감이 효용 가치가 있나. 책이 두꺼우니 모니터 받침대 정도로 쓰고 있다. 의무적으로 사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5 기호사진연감’에 실린 공무원 사진들.
▲‘2015 기호사진연감’에 실린 공무원 사진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에 대해 인천·경기 지역 시군구청 소속 B공무원은 “협조요청 공문을 받아 자료를 모아서 주고 있다. 일일이 구성원들에게 물어보고 사진을 주는 건 아니다. 언론사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다 보니 오래전부터 이 연감을 만든 거로 아는데, 사진을 관례로 제공해왔던 것 같다. 연감을 사서 펼쳐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말했다. A공무원도 “사진이 실리는 분들도 자신들의 얼굴이 연감에 찍히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자신들이 공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이해하고 넘어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오늘은 연감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문제’와 ‘공무원에게 사진 등 정보를 받아 되파는 행위’ 등에 대해 묻자, 한창원 기호일보 사장은 “그 건에 대해 알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답을 제가 할 순 없다. 회사 다른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문의를 해달라”고 말했다. 기호일보 출판부장은 “공무원 사진 등 자료를 강제로 받는 건 아니다. 공문으로 요청을 해서 받는 거다. 안 주는 곳은 안 받는다. 강제도 아니고 공문을 통해 요청을 드리는 부분이고 주는 것만 받아 작업하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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