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남녀 편 갈라서 싸우라고 고사를 지내는군요. 이게 기삿거리 되는 내용인가요?”, “기사 수준 매우 낮네 진짜”, “호기심만 자극하는 이런 옐로우 뉴스만도 못한 걸 기사라고 올리고 있냐. 기레기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겠다”, “커뮤니티 글 기사화 좀 그만해라. 인터뷰하고 진짜인지 확인하고 쓰고. 여기가 개인 블로그냐?” 등.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베껴 쓴 기사들에 달린 댓글들이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확인 취재 없이 그대로 베껴 보도한 기자들이 독자들의 뭇매를 맞았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이라는 인용 문구에 한 번의 취재 과정 없이 이 같은 기사를 쓰는 이유는 기사 조회 수 때문이다. 조회 수는 포털(네이버, 다음)·광고 등 여러 면에서 언론사 수익과 직결된다.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 책 이미지.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 책 이미지.

‘기레기를 피하는 53가지 방법’ 저자인 송승환 중앙일보 기자는 “언론 스스로 가장 값비싼 신뢰라는 가치를 몇 푼 안 되는 클릭 수와 바꿔서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대부분의 언론사에는 속보만 담당하는 인터넷뉴스팀이 있는데, 여기서는 발제, 작성, 출고를 모두 스스로 한다. SNS에 뜬 어떤 화제를 베껴서 쓰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일단 속도를 따라잡고 여론의 관심을 선점하기 위해서인데, 이런 뉴스를 계속 접하는 시민들은 이제 ‘뉴스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 기자는 커뮤니티 받아쓰기 기사 제작 과정 말고도 ‘직접 취재한 기사’들이 어떻게 보도되는지 알려준다. 직접 취재한 기사는 커뮤니티 받아쓰기 기사와 취재 과정이 확연히 다르다. 언론이 작동하는 방식, 기사를 만드는 과정 등을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야 언론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더 정확해질 것으로 봤다.

저자는 중앙일보와 JTBC에서 지난 6년간 기자 생활을 하며 취재한 53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형 사건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2016년 중앙그룹에 입사한 그는 사회부 사건팀에 배치돼 서초경찰서를 출입하게 된다. 같은 해 5월17일 밤늦게 1진인 L선배는 그에게 “거기에 오늘 살인범 한 명이 잡혀 왔다. 살해 동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알아와라”라고 지시한다. 그는 L선배 지시를 가볍게 생각한 후 “확인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서초경찰서 기자실에 있는 침낭에 들어가 푹 잔다. 다음 날 한 신문사 사회면 톱에 “여성이란 이유로… 묻지마 아닌 ‘여혐’ 살인” 기사가 보도됐다. 그는 이 사건을 이후로 어떤 사건도 소홀히 보지 않게 됐다.

제보자 입을 열기 위한 수차례의 ‘뻗치기’ 경험도 등장한다. 홍만표 전 검사장의 법조비리 사건을 보도하기 위해 무턱대고 취재원을 찾아간 사건, 이명박 정부 당시 UAE 비밀 군사협정 취재를 위해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 집 앞에서 기다렸던 일화, 195억원을 재단에 기부한 황필상 구원장학재단 이사장이 140억원 세금 폭탄을 맞은 후 대법원 승소 뒤 했던 인터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염병하네”를 외친 특검팀 입주 건물 청소노동자 임애순씨를 수차례 설득해 인터뷰했던 일화 등이 책에 담겼다.

▲2018년 1월9일자 중앙일보 3면.
▲2018년 1월9일자 중앙일보 3면.

저자는 독자가 기사의 서술어에 집중하면 기자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검찰이 확보했다’는 표현은 행위 주체가 검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검찰과 업계 등에 따르면 ~~했다고 한다’는 표현은 범죄 혐의에 대해 기자가 직접 서술하지 않고 검찰과 업계 입을 통해 전달하는 걸 의미한다. ‘말했다’, ‘주장했다’, ‘전했다’. ‘알려졌다’ 등 간접적 표현을 쓸수록 아직 확인 단계에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독자가 기사를 읽을 때 이런 점을 알고 서술어에 집중하면 기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6년 8월25일자 중앙일보 12면.
▲2016년 8월25일자 중앙일보 12면.

그는 꼭 알아야 할 중요한 보도는 ‘알고 싶게’ 써야 한다고 했다. 과거 자신이 타사 기자보다 재미없게 썼던 기사를 예로 들며 “저널리즘이 가장 효과적일 때는 심각함과 재미 그 중간에 있을 때라는 점을 어려운 기사를 쓸 때일수록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틴 배런 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도 지난달 29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다시, 저널리즘’ 콘퍼런스에서 디지털 전환 성공 사례를 설명하며 “기자가 쓰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설명해준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신문 기사같이 엄마에게 설명한다면 ‘누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느냐’고 엄마의 반문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품질은 편집자(데스크) 실력과 비례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기자가 정직하고 투명하게 객관적인 방식으로 글을 써도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자기 취재와 글의 허점은 스스로 발견하기 어렵단 것”이라고 말한 뒤 “아무리 훈련된 기자라도 치열한 현장 속에서 경주마처럼 취재 경쟁을 벌이면 자신도 모르게 주관적인 표현이나 관찰이 들어가고 현장 분위기에 동화되기 마련이다. 결정적으로는 편집자가 얼마나 오류를 잘 찾아내고 고치는지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짚었다.

‘기레기’는 개인적으로 탄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다. 독자들이 기사 같지 않은 기사를 썼을 때 시민들은 기자를 ‘기레기’라고 욕하는데, 이건 기자 개인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정치부 막내 기자로 있던 어느 날, 한 선배가 그에게 유력 정치인 아들 A씨가 선거에 나올 수 있다고 알려줬다. A씨는 그에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고, 그는 선배에게 “발제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기사는 나갔다.

그는 “A씨는 그해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틀리게 됐다고 나쁜 기사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A씨가 출마 의사가 없다는 걸 알고도 마치 출마할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썼던 그 기사는 분명 나쁜 기사였다”고 설명한 뒤 “언론사의 아이템 발제와 채택, 누락은 절대 개인적이지 않다. 그 언론사의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목표를 지면에 가장 돋보이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오랜 관행과 제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레기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넘어서서 언론의 관행과 제도를 이해하고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성장해야 ‘제도화된’ 기레기의 탄생이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커뮤니티 받아쓰기 기사든 직접 취재한 기사든 기사는 기자 개인에 의해서만 탄생하지 않는 걸 알게 된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이 추천사에서 말했듯 이 책은 “좋은 기자가 되기를 꿈꾸는 언론인 지망생, 언론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시민들, 현장 기자들의 고뇌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선배 기자들과 경영진”에게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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