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는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내는 기자들이 정작 자기 조직에는 침묵하는 경향을 깨야 한다는 자성이 나왔다. 29년 기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한국일보를 떠난 이희정 전 한국일보 기자가 남긴 고언이다. 

이희정 전 기자는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2021 저널리즘 주간 ‘다시,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뉴스룸 민주주의’ 세션의 좌장을 맡아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던졌다. 세션에 참여한 기자 4명도 자사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이날 컨퍼런스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2021 저널리즘 주간 ‘다시, 저널리즘’ 컨퍼런스. 사진=정민경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2021 저널리즘 주간 ‘다시, 저널리즘’ 컨퍼런스. 사진=정민경 기자. 

이희정 전 기자는 “만 29년 기자 생활을 돌아보니 기자로서 세상에 매스를 들이댄 일보다 조직을 향해 짱돌을 던지는 일을 많이 한 것 같다”며 “수습기자 때부터 품었던 질문은, 외부를 지적하는 뉴스룸 내에서 정작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는 것”라고 말했다.

이 전 기자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지면은 막아야 할 것 아니야, 지금 방송은 나가야 할 것 아니야’라는 말이 문제”라며 “특히 디지털 환경으로 넘어가면서 뉴스는 분초를 다투고 언제나 써야 할 기사는 넘쳐난다”고 말했다. 결국 ‘바빠서’ 뉴스룸 내 민주주의는 항상 후순위로 밀린다는 말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김영희 한겨레 문화부 선임기자는 뉴스룸이 변하지 않는 것에 “(한국 언론은) 조직 내 다양성을 확대하는 것이 어떻게 콘텐츠 질과 독자 확대로 이어지는지 데이터를 갖고 있지 못하는 등 확신의 경험이 적다”며 “우리가 옳다고, 민주적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에 대해 독자들은 다양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내부 다양성 위해 보고서 내는 뉴욕타임스

무엇을 시작해야 뉴스룸 내 민주주의를 확대할 수 있을까.

이 전 기자는 “기자 채용부터 다양한 인종, 성별, 출신을 선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2월 뉴욕타임스가 자사 조직 내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을 뜻하는 영어 단어의 첫글자를 딴 조어) 진단과 발전 방안을 담은 문서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며 “우리의 저널리즘, 우리의 비즈니스, 그리고 우리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조직 내 다양성이 저널리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 기자는 한국 언론사가 조직 다양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뉴스룸 민주주의 세션에서 속한 조직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 등을 이야기하는 기자들. 사진=정민경 기자.
▲뉴스룸 민주주의 세션에서 속한 조직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 등을 이야기하는 기자들. 사진=정민경 기자.

이 전 기자는 “뉴스룸 내 무능하지 않은 리더십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부족하다”며 “뉴스룸 아래에서부터, 솔직하고 깊이 있게 직시하는 것부터, 첫발을 떼라”고 말했다. 다양성 보고서를 제작하는 것이 어렵다면, 내부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부터 해보라는 것이다.

토론자인 최미랑 경향신문 기자는 언론사 직종 내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나는 뉴콘텐츠팀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면이 아닌 다른 플랫폼을 통해 뉴스를 만들려면 기자뿐 아니라 개발자, PD, 디자이너 등이 필요하다. 이런 인력을 충원할 때 여전히 언론사는 시혜적으로 충원한다”며 “다양한 직종을 충원해야 한다는 요구는 그저 다양성을 위함이 아니다. 언론사 생존을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편집회의 발언 공개하는 SBS 주인의식 고취”

회의적인 이야기만 오간 것은 아니었다. 이날 이희정 전 기자는 각 언론사가 ‘뉴스룸 민주주의’를 위해 해오고 있는 노력을 알려달라고 제안했다.

한성희 SBS보도본부 사회부 시민사회팀 기자는 “SBS는 편집회의 내용을 모두 공개한다”며 “부장급 이상의 선배 기자들이 큐시트에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순서를 어떻게 할지 발화자와 상세한 워딩까지 모두 공개한다”고 밝혔다.

한 기자는 “이렇게 편집회의를 공개하면 기자들이 내 기사가 왜 들어가고 빠지는지 알 수 있고 내가 하는 일에 주인 의식을 더욱 가지게 된다”며 “또 조직 내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준다. 내가 만난 많은 기자들로부터 자신들의 조직도 편집회의를 공개하면 좋겠다는 부러움을 많이 샀다”고 말했다.

최미랑 기자는 경향신문의 젠더 데스크 신설과 자사 보도를 비평하는 독립언론실천위원회 제도를 언급했다. 최 기자는 “데스크로 승진할 때 젠더 데스크나 소통 데스크, 디지털 국장 등 조직 내 변화를 위해 노력한 구성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 등을 도입한다면 더욱 좋겠다”고 제안했다.

위재천 KBS 기자는 KBS기자협회 역할과 다양한 외부 전문가를 뉴스룸에 채용한 사례 등을 밝혔다. 김영희 한겨레 기자는 젠더와 소통 데스크, 레드위원회 등 시도를 언급했다.

이희정 기자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기자들 사이에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는 말이 매우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이 말은 떠나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우리 조직 이야기, 못나고 아픈 이야기도 쏟아내고 더 많은 조직 이야기가 펼쳐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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