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 노태우씨의 장례가 30일 끝났다. 장례 기간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언론에 따라 보도 양상은 호칭에서부터 엇갈렸다. 언론은 그의 ‘공’과 ‘과’를 함께 언급했지만 보수언론에선 비판적인 목소리에 주목하기보단 ‘통합’과 ‘화합’에 방점을 찍으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TV조선·채널A 제목에 “보통사람 노태우” 
JTBC ‘항의 시위’ MBC ‘지속 사과 요청’ 강조

지난 30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노태우씨 영결식이 엄수됐다. 이날 방송사 메인뉴스는 일제히 이 소식을 다뤘지만 방식에 차이가 컸다.

TV조선과 채널A 메인뉴스 보도는 유사했다. 주요 방송사 7곳 가운데 두 방송사만 메인뉴스 첫 리포트를 통해 영결식 소식을 보도했다. TV조선의 리포트 제목은 “‘보통사람’ 노태우 파주에 잠들었다”, 채널A의 경우 “올림픽공원서 ‘보통사람’으로 떠나다”로 노태우씨의 슬로건 ‘보통 사람’을 강조한 제목도 비슷했다. 두 방송사는 이어지는 리포트를 통해 ‘엇갈린 평가’를 다루기도 했다.

'보통 사람'을 부각한 채널A와 TV조선의 영결식 보도
'보통 사람'을 부각한 채널A와 TV조선의 영결식 보도

반면 다른 주요 방송사들은 제목에 ‘보통 사람’을 언급하지 않았다. JTBC 뉴스룸과 MBC 뉴스데스크는 ‘비판적 목소리’를 제목에서부터 담았다. JTBC 뉴스룸은 “88올림픽 무대서 노태우 영결식... 인근선 항의시위” 리포트를 통해 ‘항의 시위’를 제목에 담았다. 앵커 멘트를 통해서도 “국가장을 반대하는 항의 시위도 있었다”고 부각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노태우 영결식.. ‘직접 하지 못한 사과 이어가야’” 리포트를 냈다. 김부겸 총리가 영결식에서 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고인이 직접 하시지 못했던 사과를 이어가 주시기 바란다”는 발언을 부각한 것이다. 

MBC뉴스데스크와 JTBC 뉴스룸의 영결식 보도
MBC뉴스데스크와 JTBC 뉴스룸의 영결식 보도

김부겸 발언 중 ‘진실의 역사’ 뺀 TV조선

이날 김부겸 총리는 과오를 지적하는 발언을 여러차례 강조한 뒤 ‘통합’을 말했다. 그런데 TV조선은 ‘과오’를 언급한 대목을 보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통합’ 발언도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한차례 편집해 내보냈다.

우선 JTBC, MBC, 채널A는 노태우씨에 비판적인 다음 발언을 리포트에 내보냈다.

“유족 여러분들께서는 오늘 국가장의 의미와 국민들의 마음을 잊지 마시고, 지금처럼 고인이 직접 하지 못했던 사과를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JTBC)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유족들은) 고인이 직접 하시지 못했던 사과를 이어가 주시기 바랍니다.”(MBC)

“우리가 애도만 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풀어야할 숙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큰 과오를 저지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채널A)

다른 방송사들은 ‘통합’ 발언을 리포트에 다뤘는데, TV조선의 보도만 튀었다.

“오늘의 영결식은 고인을 애도하는 자리이자,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TV조선)

“고인을 애도하는 자리이자, 새로운 역사, 진실의 역사,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KBS, SBS, MBN)

김부겸 총리의 발언. TV조선은 발언 가운데를 편집해 내보냈다.
김부겸 총리의 발언. TV조선은 발언 가운데를 편집해 내보냈다.

김부겸 총리는 ‘진실의 역사’로 가는 성찰을 함께 언급했다. 노태우씨가 ‘유언비어’를 5·18민주화운동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등 진실을 직시하지 않은 점을 고려한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TV조선은 이 대목만 편집했고, 총리 발언을 전하며 “빛과 그림자를 남긴 고인의 마지막을 화해와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라고 부연했다. 전후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요약이다. 

박남선씨 조문에 ‘화해’ ‘통합’ 1면 강조 보수언론
“박씨 개인 입장” “‘유족 대표’는 오보” 반박 나와

일부 언론은 5·18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가  조문을 한 사실에  크게 의미부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오보와 왜곡이 이어지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28일 1면에 박남선씨 조문 소식을 사진과 글 기사로 전하며 “빈소 찾은 5·18 시민군 ‘이제 화해하기를’” 기사를 썼다. 중앙일보 역시 1면에 박남선씨 사진과 함께 “노태우 사죄 유언, 화해 통합의 빈소 열었다”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는 “오늘을 기점으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는 박남선씨 발언을 전하며 “박씨의 바람처럼 적어도 이날 빈소 풍경은 사과와 용서, 화해에 가까웠다”고 했다.

28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1면 갈무리
28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1면 갈무리

뉴시스, 채널A 등 일부 언론은 그의 직함을 ‘유족대표’로 썼다. 채널A는 “(조문객 중) 박남선 5·18 유족대표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고 했다. 채널A는 박남선씨 인터뷰 장면과 함께 ‘유족 대표’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박남선씨의 입장은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그의 입장이 5·18 유족과 광주 시민사회의 대표 입장처럼 다뤄지자 ‘반박’이 나온 사실도 중요하다. 5·18유족회는 입장을 내고 “(박씨는) 5·18민주유공자 유족회 활동을 한 사실도 없고, 유족회 대표·회장도 아니다”라며 ‘유족대표’라는 호칭은 오보이고, 이날 조문도 개인 행동이었다고 밝혔다. 

박남선씨를 '유족대표'라고 잘못 보도한 채널A 리포트 갈무리.
박남선씨를 '유족대표'라고 잘못 보도한 채널A 리포트 갈무리.

10월28일 광주일보는 “5·18 시민군 박남선씨 노태우 조문에 오월단체 부글부글” 기사를 내고 “국가장을 결정한 데다 5·18 유족이 노씨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면서 화해·용서의 계기가 됐다는 취지의 보도까지 터져나오면서” 관련 단체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기사에는 박남선씨는 본인이 유족대표라는 직함을 말한 적 없다고 밝힌 대목도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5·18 유족회의 반박 입장을 보도하지 않았고, 채널A 역시 직함을 정정하지 않았다.

광주일보 기사 갈무리
광주일보 기사 갈무리

‘별세’와 ‘사망’ ‘전 대통령’과 ‘씨’ 표현부터 갈렸다

노태우씨와 그의 죽음에 대한 표현도 언론마다 엇갈렸다. 10월26일 사망 당일 메인뉴스에서 지상파 3사가 일제히 ‘사망’ ‘숨졌다’고 한 반면 종편4사는 ‘별세’라고 표현했다. JTBC를 제외한 종편3사 메인뉴스는 제목에 ‘별세’라고 표기하는 등 강조했다. 다음날인 27일 한겨레, 경향신문은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별세’했다고 보도해 차이를 보였다. 별세는 윗사람이 사망했을 때 쓰는 표현이다.

사망에 대한 표현은 대체로 고인에 대한 평가와 결부됐다. 노태우씨 사망 다음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그의 삶을 정리하는 기사를 통해 고인의 문제가 된 회고록 문제를 제대로 짚지 않는 등 다른 언론과 차이를 보였다. 

26일 채널A 뉴스A와 KBS뉴스9 리포트. '별세', '사망'이라는 표현을 각각 썼다.
26일 채널A 뉴스A와 KBS뉴스9 리포트. '별세', '사망'이라는 표현을 각각 썼다.

호칭도 엇갈렸다. 방송 메인 뉴스 보도를 보면 SBS, MBC, JTBC는 ‘노태우씨’라고 불렀고 신문 가운데는 한겨레가 지면에서 ‘노태우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을 혼용했다. 경향신문은 지면에선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부른 반면 온라인 기사에는 ‘노태우씨’를 혼용했다. 보수신문, 그리고 KBS와 TV조선·채널A·MBN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다만 KBS와 MBN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고 언급하면서도 함께 군사 반란을 일으킨 전두환씨를 향해선 ‘전두환씨’라고 했다.

전직 대통령 호칭 문제는 논쟁적인 면이 있다. ‘씨’라는 호칭을 쓰는 언론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금고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하지 않는다’는 규정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 학살의 책임자인 점 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씨’ 표현이 이들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한 경우도 있다.

경향신문은 ‘독립언론실천위원회’ 차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도 파면됐을 때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전 대통령으로 썼다. (중략) 누군가가 보기에는 감정적인 대응으로 비칠 수 있다”,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다루는 게 의미가 있는데 굳이 호칭을 격하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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