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사망설’이 또 등장했습니다. 10월23일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글로브’는 미국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쿠데타를 통해 김 위원장을 축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9월19일 도쿄신문이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 행사(9월9일)에 등장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역”이라는 기사를 낸 지 한 달 만에 김 위원장 ‘신병 이상설’이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국내 언론은 곧바로 사망설과 대역설을 인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반복되는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설’을 언론이 어떻게 보도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반복된 외신 받아쓰기

▲ 10월24일,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글로브’ 표지를 보도한 한국경제
▲ 10월24일,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 ‘글로브’ 표지를 보도한 한국경제

미국 글로브 보도를 가장 먼저 인용한 언론은 한국경제로  <“북 김여정, 쿠데타로 김정은 제거 후 대역 사용”…미 타블로이드 보도>(10월24일 정인설 기자)입니다. 한국경제는 글로브가 “미국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지난 5월6일부터 6월5일 사이 비밀 쿠데타를 일으킨 김여정에 의해 살해됐다’고 보도”했으며 “지난달 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행사 때 갑자기 등장했는데 이때는 대역 인물”이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김정은과 9월 행사(북한 정권수립 기념일) 참석자는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안면인식 기술을 통해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지난해부터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지만 “가짜 뉴스로 판명 났”고 국정원이 “이번 글로브 보도에 대해서도 ‘미국 언론에서 보도한 북한 쿠데타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덧붙였습니다.

뉴스1 <“북 김정은 사망?… 9·9절 등장은 대역”-미 타블로이드>(10월24일 정윤미 기자)는 ‘미주간지 글로브’가 “최신호 1면에 ‘김정은은 죽었다!’”고 보도했으며 “이번 호에서 타블로이드판 두 페이지 분량을 할애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1면에) 밝은 표정의 김 위원장 모습이 담긴 사진 2장”과 “하단에는 작게 김 부위원장 사진도 첨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매일신문 <또 ‘김정은 사망설’… “북 김여정, 올해 5, 6월 김정은 살해”>(10월24일 이수현 기자)도 한국경제 기사와 동일한 내용으로 글로브 보도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경제와 달리 반복된 ‘김정은 건강 이상설’은 가짜뉴스로 판명 났으며 이번 사안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국정원의 주장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매일신문이나 뉴스1을 보는 독자는 ‘김여정 쿠데타설’을 사실이라고 오인할 수 있게 만드는 문제 보도입니다.

▲ 10월25일,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 홈페이지 사진을 보도한 여성신문
▲ 10월25일,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 홈페이지 사진을 보도한 여성신문

여성신문 <미 언론, ‘김정은 후계 준비’ 추측 보도.… 국정원 “사실 아냐”>(10월25일 유영혁 기자)는 미국 인터넷신문 비지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SIDER)가 “김여정의 쿠데타설 보도에 이어 이번에는 ‘후계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고 전했습니다. 여성신문은 비즈니스인사이더의 “추측성 보도”라면서도 “북한이 김정은 없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 것”, “지난 1년간의 전개는 북한이 비공개로 김정은이 정말로 사라질 날을 준비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는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이어 글로브 김여정 쿠데타설 보도까지 덧붙여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재생산했습니다.

외신 보도라면 검증 없이도 믿을 만한가

북한 내부정보 취재가 어렵다고 해도 언론은 대북 보도의 경우 최소한 사실관계 확인을 해야 하며, 알려지지 않는 보도를 인용할 땐 도움 될 정보를 함께 실어 독자 이해를 도와야 합니다.

중앙일보 <미 매체 “김여정이 김정은 죽였다” 쿠데타설에 국정원 반응은?>(10월24일 박현주 기자)은 “실제 김 위원장이 6월 이후 공개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글로브 보도와 달리 김 위원장은 8월 28일 청년절을 맞아 청년들을 만나 사회주의 사상을 강조한 뒤 기념사진도 찍었다”며 글로브 보도의 허점을 짚었습니다.

뉴데일리 <“김여정 쿠데타, 김정은 사살설…사실 아니다” 국정원, 외신 보도에 신속대응>(10월25일 전경웅 기자)은 정작 “해외에서는 이 보도에 무관심하다”며 글로브가 “1년 전에도 같은 보도로 공식 석상에서 웃음을 샀다”고 비판한 미국 블로그 ‘보잉보잉’ 의견을 함께 보도했습니다.

파이낸셜뉴스 <김여정의 김정은 제거 쿠데타설… 국정원 ‘사실무근’>(10월24일 김경수 기자)은 “글로브는 그동안 주로 전세계 유명인들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죽어가는 영국여왕이 윌리암 왕세자를 왕으로 세우려 한다고 1면 보도했”고 “부시 전 대통령의 코카인 연루설, 호텔에서 포착된 오바마와 미녀 등 자극적인 기사를 써왔다”고 짚었습니다.

김정은 신병 이상설 적극 보도한 세계일보·MBN

김정은 위원장 신병 이상설을 전한 국내언론 보도를 분석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정은’을 검색한 결과, 9월 19~20일 도쿄신문 대역설을 인용한 기사는 34건이고 10월 24~25일 글로브지 사망설 보도를 인용한 기사는 50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일보, MBN은 김정은 신병 이상과 관련된 보도를 매번 2건씩 보도할 정도로 가장 적극적이었습니다. 뉴시스, 서울신문, 중앙일보, 한국경제, SBS도 10월 글로브의 사망설 보도를 2건씩 받아썼습니다.

▲ 9월19~20일, 10월24~25일, 네이버 기준 김정은 신병 이상설 보도한 언론.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9월19~20일, 10월24~25일, 네이버 기준 김정은 신병 이상설 보도한 언론.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세계일보 <홀쭉해진 김정은, ‘대역’ 썼나… 의혹 제기한 일 언론>(9월19일 김태훈 기자), 세계일보 <‘다이어트는 최고의 성형?’ 김정은 대역 가능성 제기한 일 언론>(9월20일 현화영 기자)은 모두 도쿄신문 보도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내용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계일보 <국정원, ‘김여정 쿠데타’ 미 타블로이드 보도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10월24일 이도형 기자), 세계일보 <“김여정, 쿠데타로 김정은 제거 후 대역 썼다”… 미 글로브 보도에 우리 정부 “사실 아냐”>(10월24일 강민선 온라인 뉴스 기자) 역시 미국 글로브 보도를 전달한 유사 기사였습니다.

뉴시스, 매일신문, 서울신문, 중앙일보, 한국경제, MBN, SBS 역시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으로 보도했습니다.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이 기사로 재생산되면 이슈는 과장되고 비슷한 내용의 저질 기사만 난립하게 됩니다. 이를 경계해야 할 언론은 이번에도 이런 관행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북한뉴스 검증 ‘패싱’ 관행, 한 달 전엔 ‘김정은 대역설’

▲ 오보로 판명난 북한 관련 기사. 위부터 MBN(2020년 4월21일), 연합뉴스(2015년 05월12일), 조선일보(2013년 8월29일)
▲ 오보로 판명난 북한 관련 기사. 위부터 MBN(2020년 4월21일), 연합뉴스(2015년 05월12일), 조선일보(2013년 8월29일)

김정은 사망설, 고위 인사 처형설 등 북한 관련 헛소문은 언론의 단골 오보 레퍼토리입니다. 1986년 조선일보 김일성 피살설 오보, 2013년 현송월 총살설 오보, 2020년 국내 언론이 대거 받아쓴 CNN 김정은 사망설 오보 등에서 볼 수 있듯 북한 관련 보도에서 사실 검증은 ‘안 해도 그만’이 된 지 오랩니다. 북한의 특수성 탓에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지만, 검증을 할 수 없다면 기사를 쓰지 않거나, 최대한 여러 취재원에게 사실 가능성을 확인해보는 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입니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전에도 언론은 글로브 보도를 받아쓰기한 것과 판박이 기사를 냈습니다. 9월 19일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9·9절) 행사 때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본인이 아니라 대역일 수 있다는 의혹을 도쿄신문이 제기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연합뉴스 <“살 쏙 빠진 김정은 혹시…” 도쿄신문, 대역 의혹 제기>(9월19일 박세진 기자)에서 시작된 ‘김정은 대역설’ 옮겨쓰기는 이데일리, 경향신문, 디지털타임즈, TV조선, MBN, 서울신문, 머니투데이 등 총 34개 매체에서 반복됐습니다. “전했다”, “주장했다”, “거론했다”며 외신을 ‘복붙(복사붙여넣기)’ 수준으로 받아썼습니다.

이들 보도를 보면, 도쿄신문은 ‘대역설’ 근거로 “한국 국방부에서 북한분석관으로 일했던 고영철 다쿠쇼쿠대학 주임연구원의 주장” 하나를 내세웠고,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는 북한정치학자 의견도 함께 실었는데요. 기사 안에서도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제목엔 ‘대역설’을 앞세웠습니다. 더불어 도쿄신문과 이 신문이 언급한 두 학자의 주장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최소한의 검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제 <[천자 칼럼] 가게무샤(影武者)>(10월25일 홍영식 대기자)는 사실 여부가 불분명한 9·9절 김정은 대역설을 두고 “분명한 것은 ‘가게무샤’설이 나오는 자체가 김정은 체제가 불안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가게무샤’는 ‘적을 기만하거나 아군을 장악하기 위해 세우는 대역’을 뜻하는 일본말인데요. 각종 ‘설’이 난무하는 건 이를 검증조차 하지 않고 받아쓰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태도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는 게 게 먼저 아닐까 싶습니다.

게으른 북한 뉴스 취재, 남북관계 걸림돌 된다

‘김정은 대역설’과 관련해 검증 없는 받아쓰기 등이 난무한 가운데 MBN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두 번째로 작성한 <[픽뉴스] 시민 울린 지하철 방송·또 폭행 논란·미래세대 위한 목소리·김정은 대역 의혹?>(9월19일 박자은 기자)은 최소한의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해당 보도는 통일·북한 문제를 다루는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인터뷰해 “일본 신문이 가게무샤(대역) 식 얘기를 너무 많이 하니까” 등의 발언을 전하며 “도쿄신문은 종종 선정적으로 북한 소식을 전하기도 해서, 일각에선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충분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북한 관련 국내 전문가에게 해당 사안을 질문하고, 도쿄신문 북한뉴스를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 10월9일, 도쿄신문 ‘김정은 대역설’ 보도의 신빙성을 따져본 MBN
▲ 10월9일, 도쿄신문 ‘김정은 대역설’ 보도의 신빙성을 따져본 MBN

뉴스타파 <북한 뉴스 해부>(7월2일 강혜인 기자)는 북한 관련 국내 기사 2만 3천여 건을 분석해 ‘출처’가 어디인지, 그 ‘출처’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지 분석했습니다. 어떤 인물이 가장 많이 북한 관련 기사 소스로 나오는지 집계한 결과, 1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고 2위가 익명의 ‘관계자’였습니다. 심지어 이 익명의 관계자는 ‘관계자’, ‘고위 관계자’, ‘핵심 관계자’부터 ‘소식통’, ‘외교소식통’, ‘대북소식통’, ‘한미일 소식통’, ‘한미관계 소식통’, ‘한국 정부 관계자’, ‘익명의 관계자’, ‘미국 정부 관계자’, ‘익명의 미국 관리’, ‘고위 외교관’, ‘중국 관계자’ 등 이름도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기사 신뢰도는 낮고 정체불명의 소식이 난무한 것입니다.

북한 관련 취재가 쉽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다양한 취재원을 확보하고 최대한 교차 검증하며 오보를 줄여나가는 게 불가능하진 않습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한국언론이 외신을 과도하게 신뢰하고 있고, 북한 관련 취재원을 한국언론이 그만큼 많이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오보 원인로 꼽았는데요. 북한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충분히 취재를 해왔는지, 나아가 저널리즘 기본원칙을 지키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왔는지 언론이 되돌아보기를 바랍니다.

 

※ 모니터 대상 : 2021년 9월19~20일, 10월24~25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김정은’ 키워드 검색 후 나온 결과 중 관련 보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