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사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을 반발을 무릅쓰고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광주 출신 국회의원과 금속노조 등 노동계는 강하게 성토하는 등 반대 목소리를 냈다. “국민이 준 권력을 국민을 학살하는 데 쓴 자에 예우를 갖출 수 없다” “북방정책 등 성과가 있다해도 반란과 학살을 덮을 수 없다”는 비판이다. 

정부 대변인인 김정배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27일 오전 국무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김부겸 국무총리가 전날 서거한 노태우 전 대통령께 애도를 표하는 것으로 모두말씀을 시작했다”며 “김 총리가 ‘고인께서는 제13대 대통령으로 재임하시면서 국가 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며, ‘정부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하여 국민들과 함께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김 차관은 “김 총리가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에 장례 절차를 소홀함 없이 준비해 주기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국립묘지 안장은 하지 않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노 전 대통령을 두고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하여 역사적 과오가 있으나,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하였으며, 형 선고 이후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되었다”며 “다만, 국립묘지 안장은 관련 법령에 따라 하지 않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27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시민 분향소에서 한 남성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에 마련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시민 분향소에서 한 남성이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장 장례위원장은 김부겸 국무총리이며 행정안전부장관이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주관한다. 장례 명칭은 ‘故 노태우 前 대통령 국가장’이며, 장례기간은 5일장으로 10월26일부터 10월30일까지다.

국회의원들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반대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이날 정부 발표이후 내놓은 성명에서 “군인의 신분으로 국가권력을 뒤엎고 권력을 찬탈한 반란의 수괴, 권력을 잡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시민을 학살한 살인마, 6월항쟁으로 문을 연 사회민주화의 행진을 공안정국으로 가로막고 민중운동을 탄압한 독재자, 권력을 사유화하고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축적한 범죄자. 노태우의 죽음 앞에 붙을 수식어는 결코 추모와 애도가 될 수 없다”며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분노와 원한으로 그의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금속노조는 “인간 노태우는 학살자”라며 “광주 망월동의 무덤이 쿠데타 지휘자 노태우의 죄를 증명할 뿐 아니라 대통령 노태우는 장례식장의 벽을 뚫고 한진중공업노조 박창수 위원장의 시신을 탈취한 도적이며, 대낮에 대학생을 때려죽인 살인자”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노태우와 전두환의 차이가 종이 한 장 만큼도 안되듯이 노태우의 국가장은 학살자 전두환의 국가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한국인과 한국 현대사에 대한 가장 처절한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민주당이 김대중 정권 이래로 민주당 정권이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며 민중은 민주당에 결코 그런 권능을 부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동구남구갑)은 26일 오후 국회 운영위원회 소관 청와대 대상 국정감사에서 “내란죄, 천문학적 비자금 17년형. 5·18 책임이 노태우에도 있다”며 “절대 다수 국민들은 국민이 준 국가권력을 국민을 학살하는데 쓴 자에 국가장의 예우 갖춘다는 데 누구도 납득할 수 없다”며 “정부가 국민 정서 위반, 갈등 증폭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반대했다. 윤 의원은 “사면복권이 이뤄졌다고 하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역사의 심판에 시효가 없다”며 “대한민국의 정의를 세우는 문제”라고 촉구했다.

같은당의 조오섭 의원(광주 북구갑)도 이날 윤 의원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5월학살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역사적 단죄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장의 예우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서는 안 된다”며 “전두환과 함께 5·18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책임자 중 한명이며, 반란수괴, 내란수괴, 내란목적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받은바 있는 중대 범죄자”라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광주와 국민 앞에 진심어린 사죄와 참회가 없는 찬탈자이자 학살의 책임자를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루고 국립묘지에 안장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정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광주에서 중고교를 나온 오기형 의원(서울 도봉구을)도 페이스북에 올린 ‘국가장도 없고 국립묘지 안장도 없습니다’라는 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아들이 5·18에 사과하고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등 평가할 만한 성과도 기억한다”면서도 “그렇다고 내란과 학살을 덮을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반대에도 청와대가 노태우 국가장에 나선 까닭이 뭘까. 정권 말 선거를 앞두고 보수층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7일 오후 브리핑에서 ‘진보진영과 오월 단체의 반대 입장과 우려에도 국가장으로 결정한 배경이 뭐냐’는 기자 질의에 “시민단체에서 나온 성명서들도 저희가 검토를 했고, 여러 가지 것들을 종합적으로 복합적으로 고려했다는 말씀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7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노태우 전 대통령 추모 메시지 등과 관련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7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노태우 전 대통령 추모 메시지 등과 관련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고 박경미 대변인이 전했다. 이 같은 애도 메시지를 낸 것이 국민통합의 의미냐는 질의에 청와대 관계자는 “해석은 언론과 국민의 몫”이라고 답했다.

애도 메시지가 왜 하루 뒤에 나왔느냐는 질의에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 운영위도 있었고, 오늘 빈소가 공식적으로 차려진 것으로 안다”며 “여러 요소들이 결합돼 오늘 추모 메시지를 내게 됐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국가장 결정에 이견은 없었다고 했다.

‘국가장으로 결정했는데도 대통령이 왜 조문을 가지 않느냐’, ‘조문 안기로 한 결정에 이견은 없었냐’는 청와대 출입기자의 질의에 이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이견은 없었다”며 “내일 오전에 순방 떠나시고, 오늘 오후에 중요한 다자 정상회의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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