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89) 전 대통령이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사망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제12대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1988년~1993년)을 지냈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인 김재규에 살해됐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같은 해 12월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켰다. 이 쿠데타에 노 전 대통령도 가담했다. 또 이듬해 전두환 정부 당시 발생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도 가담했다.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95년 10월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았다. 당시 박계동 민주당 의원의 폭로를 발단으로 검찰은 그해 11월 대검찰청으로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다. 조사 결과 기업 총수 40여명으로부터 비자금 4100억원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수감된 사상 첫 전직 대통령이 됐다. 그는 전 전 대통령과 달리 2629억원의 추징금을 완납했다. 그러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27일자 아침신문 1면.
▲27일자 아침신문 1면.

공도 분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분출한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했다. 재임 중 소련 해체기를 맞아 북방 외교를 펼쳤다. 1988년 서울 올림픽도 치렀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남북 기본합의서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 채택, 경제 성장 등이 그의 업적으로 거론된다.

한겨레·경향, 5·18 왜곡 회고록과 사과 않은 점 비판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에 노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한 부분을 정정하지 않고,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적 사과하지 않은 점을 꼬집었다.

▲27일자 한겨레 1면.
▲27일자 한겨레 1면.
▲27일자 한겨레 5면.
▲27일자 한겨레 5면.

한겨레는 5월 단체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는 5면 기사에서 “노씨와 광주의 악연은 5·18 당시부터 시작됐다. 1980년 5월21일 새벽, 발포를 의미하는 계엄군의 자위권(자기보호) 발동이 결정됐던 회의 자리에 노씨는 전씨 등과 함께 참석했다. 1980년 8월 전씨 뒤를 이어 보안사령관에 취임한 노씨는 희생자 유족 사찰과 분열 유도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한겨레는 이어 “노씨는 생전 광주학살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 펴낸 회고록에서는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 씨를 말리러 왔다’는 유언비어를 듣고 시민들이 저항했다‘며 책임을 시민들에게 돌렸다. 5·18단체는 회고록 정정을 촉구했지만 노씨 쪽은 반응이 없었다”며 “노씨 가족은 그동안 여러차례 광주를 방문해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광주 시민사회는 회고록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27일자 경향신문 4면.
▲27일자 경향신문 4면.

경향신문은 4면 기사에서 “12·12 쿠데타, 거액의 비자금 은닉 등 그림자가 너무 커 공은 과에 묻혀버렸다. 국민들은 그를 전두환과 함께 쿠데타의 주역으로 여긴다”고 쓴 뒤, 그가 비자금 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 된 후 “12·12 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도 커졌다. 그는 그해 ‘광주사태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가 ‘발언을 용서해달라’고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의 사과에도 오월단체는 진정성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나타낸다. 노 전 대통령의 2011년 회고록에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는 문구를 수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쓰지 않고 사과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비록 아들 재헌씨가 ‘병상에서 고갯짓과 눈깜박임으로 소통하는 아버지의 뜻’이라며 광주를 찾아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지만 5·18에 대한 사죄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가족·지인들의 사죄와 진상규명 협조는 계속돼야 한다. 더불어 전두환씨의 각성을 촉구한다.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과 국립묘지 안장을 두고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민의에 따라 엄중히 결정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27일자 경향신문 사설.
▲27일자 경향신문 사설.
▲27일자 한겨레 사설.
▲27일자 한겨레 사설.

한겨레는 사설에서 “그의 죽음을 흔쾌한 마음으로 추모할 수 없는 것은 신군부의 12·12 권력 찬탈과 5·18 광주시민 학살 등 전두환 독재정권 당시 그가 저질렀던 죄과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며 “신군부 실세로서 자신 또한 책임이 무거운 1980년 5월의 학살과 관련해 그는 광주 시민과 국민에게 한번도 직접 사죄하지 않았다. 2011년 펴낸 <노태우 회고록>에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 시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국립묘지에 안장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치권 일부와 사회 일각에서 재임 시절의 성과와 국민 통합의 필요성을 들어 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국립묘지에도 안장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결코 안 될 일이다. 지금은 그저 ‘자연인 노태우씨’의 죽음을 조용히 애도하면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중앙, 광주에 직접 사과하지 않은 점 비판 없어

중앙일보, “문 대통령이 애도 메시지 내지 않았다” 짚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세 매체의 보도에는 차이가 뚜렷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노 전 대통령의 왜곡 회고록에 대한 비판과 직접 광주 시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없었다.

▲27일자 조선일보 4면.
▲27일자 조선일보 4면.
▲27일자 동아일보 4면.
▲27일자 동아일보 4면.

그나마 동아일보는 광주 시민들에게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4면 기사에서 “노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 재헌씨는 2019년 이후 매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 사죄의 뜻을 표해 왔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면과 3면, 4면, 5면, 6면 총 5개 면에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다뤘다.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이 별도의 애도 메시지를 내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중앙일보는 3면 기사에서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 별세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은 별도의 애도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 실시 여부와 문 대통령의 예우 방식이 연동된 부분이 있다’며 ‘예우에 대한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대통령의 메시지를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27일자 중앙일보 3면.
▲27일자 중앙일보 3면.
▲27일자 중앙일보 사설.
▲27일자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노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사설을 썼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노태우 제13대 대통령이 어제 별세했다. 대통령 중 드문 연성 리더십의 소유자였던 고인은 국내적으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를 지나 명실상부한 민주화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사적으론 냉전체제가 무너져 내리는 전환기에 선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는 이어 “고인의 집권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 역사가는 ‘선악의 사고를 넘어서야 넓은 영역이 보인다’고 했다. 고인의 공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야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 시대로부터 배울 수 있다. ‘보통 사람’이길 원했던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27일자 조선일보 사설.
▲27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의 업적에 대해 열거하다가 마지막에 현 집권 세력에 대해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을 계기로 성립된 1987년 체제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현 집권 세력은 군사 독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독선과 독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제왕적 대통령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를 바꿀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성장과 복지, 시장과 노동 사이의 균형점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미·중 충돌은 1990년대 동구 공산권 붕괴에 버금가는 충격파를 전 세계에 던지고 있다. 우리 안보의 근간이던 한·미 동맹도 예전 같지 않은데 북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 이런 전환기적 위기를 맞은 나라 사정이 한 세대 전 노태우 시대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국내적인 세력 교체기를 관리했던 인내의 리더십, 동서 대결의 낡은 질서가 무너지는 세계의 변화를 앞서 읽었던 혜안의 통찰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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