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 상전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한 OTT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OTT는 현재 콘텐츠 전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방송과 ICT를 총괄하는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걸쳐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25일 방통위가 OTT해외진출 사업으로 편성한 예산이 문화체육관광부 사업과 유사하다고 지적하는 등 관계 부처간 사업이 중복되는 문제를 우려했다.

#2
유료방송 재허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심사를 전담하지만 방통위의 동의를 받는 이중구조다. 2018년 과기정통부는 케이블SO 충북방송에 재허가를 결정했으나 방통위는 대주주의 공적 책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며 ‘부동의’ 결정을 내렸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7년  ‘SO 복수 지역채널 허용’ 등 규제완화를 추진했으나 방통위가 사전동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그러자 미래부는 사전동의를 받을 사안이 아니라며 재반박했다.

#3
2016년 ‘단통법 보조금 상한선 폐지설’이 불거졌을 때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미래창조과학부 담당자는 “상한선 인상은 없다”고 못 박은 반면 방통위 담당자는 “계속 검토하고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고 밝혀 기자들이 재차 두 관계자에게 관련 질의를 해야 했다. 700MHz 황금주파수 할당을 두고 미래창조과학부는 ‘통신사 판매’를 방통위는 ‘지상파 할당’을 주장해 이견을 보였다.

‘방송통신ICT 분야’ 부처의 업무 중복 및 충돌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부처 분할을 계기로 시작된 논쟁에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환경을 맞아 매체 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교통 정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미디어 부처가 이대로 운영돼선 안 된다는 지적 또한 쏟아지고 있지만 주장하는 이에 따라 목적성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차기 대선후보 가운데는 홍준표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사실상 가장 먼저 ‘미디어 기구’ 개편 공약을 냈다.

홍준표 후보는 현행 체제를 “구시대 미디어 통신조직과 비효율적인 칸막이식 규제 체계”로 규정하며 “방통위는 완전히 독립된 미디어통신위로 개편해 각 부처로 분산 내지 중복된 기능을 조정 통합하여 디지털 글로벌 시대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방통심의위는 공정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위상과 권한 운영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 홍준표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24일 '언론자유 확대를 위한 방송개혁 공약'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홍준표 캠프
▲ 홍준표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24일 '언론자유 확대를 위한 방송개혁 공약'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홍준표 캠프

국민의힘은 오는 3일 토론회를 열고 차기 정부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발제를 맡은 성동규 전 여의도연구원장(중앙대 교수)은 OTT 등 산업 진흥 측면의 미디어 기구 개편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당 차원의 차기 미디어 정부 기구안이 제시되면 향후 확정될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학계에서도 차기 정부 조직개편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22일 정보통신정책학회,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한국미디어경영학회가 마련한 공동 토론회 자리에서 이상원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민간 영역에서 혁신성장을 담당하는 독임제 부처 ‘정보미디어부’와 공적 영역의 '공공미디어위원회'의 양대 기구로 재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정보미디어부를 “ICT・미디어 산업 혁신성장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무게의 중심이 ‘산업 중심 독임제 부처’에 있는 안이다. 

홍준표 예비후보는 ‘위원회’로, 이상원 교수는 ‘독임제’로 제시했지만 공통적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산업논리를 강조했다.

다만, 이상원 교수는 공론화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한 개방적, 공개적 논의 절차를 함께 강조했다. 이상원 교수는 “공론화를 위해 전문가 위원회를 설치하고 시민이 참여해 감시를 제도화하고 조직 개편 후 영향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공론화를 한다면 공공기관, 인력, 조직, 예산을 다 공개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으로도 투명성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정부 때 시작한 ‘방송통신 융합’ 미디어 부처 논의는 이명박 정부 때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한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주요 기능을 다시 분리해 과학기술부와 합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신설했다. 이후 방통위는 지상파, 종편 등 인허가와 광고 및 편성 규제, 이용자 정책을 주로 맡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유료방송 인허가, 유료방송 플랫폼 및 통신 규제, 인터넷 진흥 등을 주로 맡아왔다.

▲ 박근혜 정부 때 형성된 미디어 관련 조직 구성도. 자료=이상원 경희대 교수.
▲ 박근혜 정부 때 형성된 미디어 관련 조직 구성도. 자료=이상원 경희대 교수.

‘합의제 기구’ 방통위 실험, 평가 선행돼야

지금처럼 산업 중심 논의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상황에선 ‘중심’을 잡아야 한다. 특정한 부처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실험적인 시도였던 ‘방통위 체제’에 대한 평가와 향후 개편을 논의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글로벌 OTT를 이유로 거대 사업이 필요하다며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주장이 나오고, 방통위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면서 공공성을 위한 역할이 무력화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다”며 “사업자 입장에선 거대 부처를 만들어 진흥, 지원 정책을 바라는 상황이다. AI, 메타버스 등 정부가 주도해서 시장을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사업자가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불확실한 시장을 키우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기초과학과 방송통신 등 이질적인 분야를 아우르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사진은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VR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내세우며 기초과학과 방송통신 등 이질적인 분야를 아우르는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했다. 사진은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에서 VR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 연합뉴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산업 뿐이 아니라 산업과 지원, 규제를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합의제 기구만으로는 안 되니 독임제 기구가 필요할 수 있고, 독임제와 합의제가 공존하는 방향이 적절할 수도 있다”며 “중요한 건 현행 합의제 기구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10년 넘게 지속된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평가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10년 이상 유지될 조직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김동원 실장 역시 “각 부처나 학회, 산업계 등이 각자 유리한 방식의 조직개편을 논하는 방식보다는 전반적 방향성을 논의하는 미디어개혁위원회와 같은 기구 설립을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는 방송개혁위원회를 통해 통합방송법 제정 결실을 냈다. 참여정부 말기와 이명박 정부 초에는 국회 방송통신특위를 통해 미디어 기구 개편을 논의했다.

지난해 31개 언론·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이하 시민네트워크)도 주요 과제로 미디어 기구 개편안을 제시한 바 있다.

시민네트워크는 △ 3개 미디어 부처의 방송·신문·광고 등 미디어 업무를 통합한 ‘통합 미디어위원회’ 신설안 △ 미디어 산업 진흥과 지원업무를 맡는 문화ICT부(독임제)와 방송사 인허가와 규제, 심의 기능을 전담하는 미디어위원회(합의제)로 이원화하는 안 △ 이명박 정부 때와 같은 통합 방송통신위원회안 등을 병렬적으로 제시했다. 시민네트워크는 규제, 진흥, 지원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기구를 강조하면서도 ‘시청자 이용자 권리’에 방점을 뒀다.

독립적 구조와 운영은 필수 요소

제도 개선과 더불어 미디어 기구의 ‘정치 과잉’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 방통위라는 합의제 기구 실험은 제도적인 면에선 진일보했지만 ‘인사’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최시중·이경재 등 정치권 출신 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모두 정치인 출신이 ‘정부여당 추천’을 받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 연합뉴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미디어 부처와 법제 논의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운영과 비전, 실천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며 “전문가 중용이 필요한데 현재 제도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정치권에 연이 닿은 인사의 선임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구조와 시스템 부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미디어 기구 지배구조를 수술할 필요도 있다. 2007년 미디어규제기구 개편을 앞둔 가운데 참여정부가 제시한 ‘초안’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정부는 국가청렴위원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방송위원회 등의 선임 방식을 차용해 방통위 상임위원을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과 미디어를 정치로부터 독립시키려는 ‘의지’가 ‘제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선 ‘개헌’ 논의에 맞물린 ‘독립기관’안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2018년 공개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보고서는 ‘국회’ ‘정부’ ‘사법부’ 등 3부 체제에 ‘독립기관’을 더하는 ‘분권형 정부제’를 제안했다. ‘분권형 정부제’는 미디어통합부처인 언론·통신위원회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은 독립기관 지위를 부여하고 헌법상 ‘행정권이 정부에 속한다’는 조항을 삭제해 정치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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