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무력화 이후 (신문들이) 무가지를 전국에 뿌리고 있다. 인기투표처럼 됐다. … 지금처럼 인지도‧호감도 조사처럼 하면 무가지 천국이 될 것이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무가지 관련해선 저희도 골머리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지난 21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무가지’ 이슈가 떠올랐다. 문체부는 지난 7월 ABC협회 부수 공사가 신문사들의 유료부수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풀리기’를 방치했으며, 그 결과 신뢰할 수 없는 지표를 내놓고 있다며 정부광고 집행에서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무가지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ABC 유료부수 지표 대신 정부광고 집행 핵심지표로 등장한 ‘이용률’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문이용자조사 시기에 맞춰 중앙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 등이 지하철역 등을 중심으로 무가지를 배포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매일경제가 부평역에서 무료로 신문을 배포하는 모습. ⓒ김의겸 의원실
▲매일경제가 부평역에서 무료로 신문을 배포하는 모습. ⓒ김의겸 의원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무료배포 행위로 조사에 혼란을 준다면 자본력이 풍부하고 배달망이 확실한 기존 상위권 언론사가 유리하고, 소수 일부 중앙지만의 ‘부익부 빈익빈’ 재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신문 이용 경로 조사’를 통해 무가지에 따른 열독률을 가려내겠다고 했으나 무가지를 뿌리지 않는 신문사들 입장에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만간 발간 예정인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부수 인증제도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책임연구자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에서 무가지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는 업계 관계자 심층 인터뷰 결과 “ABC자료는 신문사들의 줄 세우기만 할 뿐 실질적으로 광고 집행기준으로 전혀 활용되지 않고 있었다”면서 “버려지는 신문이 많아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인데 부수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신문사 소유주의 마인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공개된 순위에 따라 영향력이 인식될 수 있어 신문사 입장에서는 자존심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고 쓸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부수를 인증받기 위해 가능한 시도들을 한다”고 분석했다. 연말에 공개될 열독률 조사가 5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최초의 전국 조사인 만큼 그 결과에 따라 신문사의 ‘순위’가 매겨질 가능성이 높아 일부 신문사들이 무가지 홍보 등 ‘총력전’에 나선 모양새다. 이런 식이면 유료독자보다 많은 종이신문을 찍는 현실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는다. 

때문에 ABC협회 부수조작 논란 이후 정부기관이 내놓은 첫 번째 보고서에 담긴 개선 방안에 눈길이 쏠린다. 보고서는 “인쇄 매체도 ABC공사부수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용률을 기반으로 광고를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으며 “신뢰할 수 있는 각 매체사별 도달률 자료가 필요하다. 경영지표나 이용률에 기반을 둔 정량지표를 사용하거나, 매체사의 공적 신뢰수준인 사회적 책무실천 활동과 같은 정량지표를 활용한 대안적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같은 제안을 바탕으로 문체부가 ‘정부광고제도 지표 개선안’을 내놓고 신문‧광고업계 등을 상대로 의견수렴 중이다. 

▲한국ABC협회.
▲한국ABC협회.

그러나 해당 보고서는 궁극적으로 새로운 부수인증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용률(열독률)조사는 광고 도달률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일종의 영향력 지표여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부수인증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보고서는 “ABC제도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원인을 제거해야 하는데, 현행 한국ABC협회 조직을 통해서는 달성이 어렵다”면서 “매체사와 광고주간 합의를 토대로 새로운 부수인증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현실적으로 광고주들이 기존 ABC협회에서 탈회한 다음, 새 기구를 만드는 주체로 나선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현재 매체사들의 ABC협회 탈회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보고서는 “(새로운 부수공사는) 인쇄 매체의 부수공사를 넘어 다양한 플랫폼에서의 이용률에 대한 통합공사로 확대되어야 한다. 신문기업은 이제 디지털영역에서의 정보제공사업자로 전환하고 있는데, 공사방식만 종이신문에 머물러 있는 상황은 산업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대응방식”이라고 지적한 뒤 “향후 민간주도 공사기구에서 조사하는 통합이용률은, 부수인증은 물론 협회 가맹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인구통계학적인 특성과 이용행태 조사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신문에 대해서는 매출액, 자체 취재 및 기사 비율, 기자들에 대해 정상적으로 일정 수준 임금을 지급하는 등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유료 구독이나 판매 부수는 세무 회계자료나 구독료 납부액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부수인증 기준도 현재의 발행부수와 유료부수 중심에서, 유료든 무료든 실제 독자에게 도달한 유통부수로 변경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문체부가 새로운 정부광고 집행 지표 마련 과정에서 참고할 가능성이 높은 이번 보고서는 미국의 AAM이나 독일의 IVW처럼 병렬적으로 지면부수‧전자부수‧인터넷이용률을 공표하는 방식을 소개하면서 “바람직한 것은 미국과 독일처럼 도달률과 이용률, 이용행태조사를 하나의 민간조사기구에서 담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선영 문체부 미디어정책과장은 “앞으로 부수는 정부광고 집행기준으로 활용하지 않는다”고 못 박은 뒤 새로운 민간 부수인증기구가 구성될 경우 “목적과 방향을 보고 인쇄매체 산업 지원 측면에서 (재정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으며 “이 경우 현장 의견수렴부터 시작해 정책적 지원 및 활용 여부 등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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