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에서 화제를 모은 보도가 있다. 한국일보 어젠다기획부 마이너리티팀이 올해 1월 시리즈물로 내놓은 ‘중간착취의 지옥도’라는 보도다. 중간착취는 용역 파견업체 소속 노동자가 인건비를 떼인 것을 의미한다. 지옥도는 착취를 가능케 한 간접고용 실태 관련 법을 가리킨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만난 노동자만 100명. 콜센터 상담원, 경비원, 폐기물 수거 노동자 등 한국 사회는 인건비를 떼이는 지옥 소굴이라 불릴 만했다. 내 이웃 일이고 내 가족 일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업체들은 중간착취 규정 미비하다는 점을 악용했다. 합법과 불법 경계가 흐릿해 당사자조차도 떼인 인건비가 얼마인 줄 모르는 상황은 참담하기까지 했다.

[관련 사이트 : 한국일보 중간착취의 지옥도-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에게 들었다]

▲ 한국일보 ‘중간착취의 지옥도-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에게 들었다’ 홈페이지 갈무리
▲ 한국일보 ‘중간착취의 지옥도-간접고용 노동자 100명에게 들었다’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일보 보도가 빛을 발한 건 임금 착복 실태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안을 찾아 나섰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중간착취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을 염두에 뒀고 국회와 고용노동부, 지방자치단체를 찾았다. 의혹 제기, 폭로 등 전통적 저널리즘 요소를 넘어 대안을 마련해 현실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특히 기자들이 중간착취 문제를 알리고 바로잡는 법을 개정하기 위해 국회 상임위원을 찾는 ‘입법 로비’ 과정을 기사화한 건 시리즈의 백미다. 기자는 특권층에 해당하고 이 때문에 ‘입법 로비의 문턱은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지적한 대목은 저널리즘 가치의 무게를 되돌아보게 한다. 중간에서 인건비를 떼어간 업체와 계약을 해지한 공공기관(전북도청)이 있다는 보도는 중간착취를 막기 위해선 사회적 노력이 필수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한국일보 보도를 계기로 중간착취 근절 법·제도 토론회가 열리는 등 정치권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비판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솔루션 저널리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일보 보도는 저널리즘 가치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보도의 ‘설계자’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이런 좋은 보도를 독자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일보 스스로 “좋은 독자와 좋은 기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언론이 반성할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갱신된다”며 “동시에 다른 쪽에선 좋은 기사들이 독자에게 발견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도 사실”(김혜영 한국일보 커넥트팀장)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언론은 정치인과 인플루언서 발언을 전하는 인용 보도와 정치 중계 보도에 심혈을 기울이는데 이는 포털 중심의 뉴스 유통 구조와 결합해 악순환하고 있다.

▲ 1월25일 한국일보 “‘간접고용’ 족쇄… 이달도 200만원 떼였습니다”
▲ 1월25일 한국일보 “‘간접고용’ 족쇄… 이달도 200만원 떼였습니다”

레거시 미디어는 뉴미디어와 구분되어 ‘낡은 플랫폼’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한국일보 보도와 같은 좋은 보도가 나쁜 보도 틈을 비집고 독자 눈을 사로잡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 됐다. 그렇다고 한국일보 보도 의미가 축소되지는 않는다.

지난해 종이신문 열독률(최근 신문을 본 사람의 비율)은 10.2%에 불과하지만 모바일과 PC 등으로 신문을 읽는 결합열독률은 89.2%에 이른다. 한국일보가 인터렉티브 기법을 활용해 중간착취 지옥도 시리즈를 소개한 것도 좋은 기사를 읽히기 위한 노력이다.

기자 개인이 나쁜 기사를 쓰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데스크가 효용성을 따지며 트래픽만 좇는 나쁜 기사를 종용해도 기자가 중심을 잡고 저널리즘 가치를 설파할 수 있어야 한다.

기자 특권과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우리 이웃의 진짜 문제를 살피는 눈도 가져야 한다. 좋은 기사와 더불어 좋은 기자를 기억하는 독자도 분명 있다. 중간착취 지옥도를 보도한 기자의 이름은 남보라, 박주희, 전혼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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