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올 연말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편성을 위해 탐사보도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시간대 이동을 추진하자 “편성규약 위반”이라는 구성원 반발이 일고 있다. ‘창’에 대한 잦은 편성 변경이 탐사보도프로그램을 홀대한다는 불만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KBS는 오는 12월부터 1TV 주말 오후 9시40분대에 ‘태종 이방원’ 편성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해당 시간대엔 일요일 ‘시사기획 창(이하 ’창)’과 더불어 토요일 ‘세계는지금’ 등 시사보도·교양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창’ 제작진은 25일 미디어오늘에 “사측의 시간대 변경 추진을 제작진은 지난주 소문으로 들어 알게 되었다”며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존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임에도 사장 교체기에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22일에도 ‘창’ 기자 14명 일동이 성명을 내어 관련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이들은 “방송법에 따른 KBS 방송 편성규약상, 프로그램 취재 및 제작 실무진은 편성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며 “제작진 전원은 물론 부장까지 이 과정을 전달받지 못해 제작진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명백한 규약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KBS. ⓒKBS
▲KBS. ⓒKBS

 

▲KBS 탐사보도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대표 이미지. 사진=KBS 홈페이지 갈무리
▲KBS 탐사보도프로그램 '시사기획 창' 대표 이미지. 사진=KBS 홈페이지 갈무리

멀티플랫폼 편성제작회의 운영지침에 따라 대하드라마 편성은 방송 3개월 전 안건에 올려 편성제작회의를 열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창’ 기자들은 “박태서 시사제작국장은 방송을 한달여 앞둔 어제(21일) 윤진규 멀티플랫폼편성국장으로부터 편성 변경 계획을 들었다고 한다. 직속 책임자인 김종명 보도본부장은 ‘오늘(22일) 처음 들었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그렇다면 제작진과 보도본부 의견을 완전히 배제한 채, 도대체 누가 편성 의사결정에 참여했단 말인가. 혹은 앞으로, 누가 제작진과 협의할 심산이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현재 추진 중인 편성안이 통과되면 ‘창’은 최근 3년간 세 번째 편성 이동이 이뤄지게 된다. ‘창’의 방영시간은 2019년 9월 화요일 오후 10시대에서 토요일 오후 8시대로, 올해 1월부터는 일요일 오후 9시40분대로 옮겨졌다.

관련 비판은 KBS 기자 조직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25일엔 KBS기자협회·전국기자협회가 공동 성명을 내어 양승동 사장과 한창록 편성본부장, 김종명 보도본부장 등의 책임을 물었다. “정통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재방송 편성 시간대나 심야시간으로 이리저리 바꾸며 ‘헐값 땡처리’하는 처사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사장은 당장 ‘창’ 팀의 요구에 답하라. 어물쩍 넘어가려면 KBS 전국기협과 기자협회원들을 밟고 가야할 것”이라 요구한 것이다.

KBS 사측은 이제 논의가 시작된 시점이며 협의를 이어겠다는 입장이다. 박현민 KBS 멀티플랫폼편성국장은 통화에서 “대하드라마나 미니시리즈처럼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고 권리관계가 복잡한 프로그램은 보통 두 번에 나눠서 편성제작회의를 한다. 프로그램을 몇부작으로 할지, 전체적인 기획 방향은 어떨지 등은 7월 둘째 주에 상정해서 심의를 했다”며 “(정확한 편성 시간대는) 매월 수시조정을 한다. 대하드라마(태종이방원)는 12월11일 방영이 예정돼서 6~7주 정도 남아 있다. 12월에 바뀌는 프로그램은 제작진에게 편성안을 제안하고 이의가 있으면 협의를 시작하려 했는데 먼저 문제제기가 이뤄진 상황”이라 밝혔다. 11월 예능 편성 부분조정과 관련해서도 2~3주간 협의가 지난주에 마무리 됐다는 설명이다.

이어서 그는 “오늘 ‘창’ 담당 CP, 팀장과 1차 협의를 했다. 편성 자리를 옮기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현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검토해봐야 할 거 같다”며 “대하드라마 자리가 전체 편성에서 가장 큰 효과를 봐야 할 것이기에 ‘9시뉴스’ 뒷자리를 생각했던 것도 검토를 한 사항이지만 제작진이 이의제기를 하면 다시 들여다보고 대안이 있는 자리도 살펴보겠다. 그럼에도 1차 검토안이 최선이라면 다시 설득을 하고 얘기를 하는 과정이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박 국장은 “편성과 제작은 항상 긴장관계가 있다. 제작하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내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하기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전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하드라마는 사회 각계에서 수신료 가치를 실현하는 방안 중 하나로 줄기차게 요구했기에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데 제작진 입장에선 서운할 수 있다. 살펴보지 못한 부분들을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장 교체기에 논란이 불거진 만큼 향후 선임될 신임 사장에게도 입장 표명이 요구될 가능성이 있다. KBS기자협회·전국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KBS 저널리즘의 가치와 위치를 지키는 것이 새 사장 앞에 놓인 사명이다. 당장 불거진 ‘창’ 문제는 한 프로그램의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KBS 저널리즘의 현재를 방증하고 있다. 이에 대한 책임감이나 해답이 없다면 사장실에 편히 오는 일은 바라지 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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