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SBS 무단협 사태가 오늘(25일)로 23일째다. 일부 데스크를 포함해 90여명에 이르는 보도본부 구성원이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성명에 참여한 가운데 SBS 사측은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25일 오후 4시 기준, SBS 보도본부 소속 3~19년차 기자들이 기수 성명을 통해 SBS 경영진의 임명동의제 폐기 요구와 무단협 사태를 비판했다. 지난 21일 3년차(24기)를 시작으로 총 11개 기수 구성원 총 89명이 사내 전산망 ‘기자실’ 게시판에 성명을 올렸고 이후에도 기수별 성명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SBS는 지난 3일부터 무단협 상태에 놓였다. SBS 경영진은 올초부터 단협에 명시된 사장 등 경영진 임명동의제 폐기를 요구해왔다.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 조건부 재허가를 받은 직후부터다. SBS 노사는 2017년 10월13일 방송사 최초로 대표이사 사장을 비롯한 방송의 편성·시사교양·보도 부문 최고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도입에 합의한 뒤 이를 단협에 명시한 바 있다.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서울 목동 SBS 사옥 로비 농성장에서 본부 점퍼를 입고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SBS본부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서울 목동 SBS 사옥 로비 농성장에서 본부 점퍼를 입고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SBS본부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가 임명동의 폐기를 완강히 거부하자 SBS 측은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단협) 해지를 통고했고, SBS본부가 이에 이달 초 기존 단협 만료 직전 타협안을 내놨으나 사측이 거부했다. SBS 노사는 무단협 사태 이후 오는 27일 만나 3차 본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다.

4년차 기자들은 성명에서 “2017년 10월, SBS는 한국 방송 최초로 사장 임명동의제를 도입했다. 당시 박정훈 사장은 직접 ‘임명동의 절차가 방송 독립의 역사를 새롭게 쓴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했다”며 “SBS의 경쟁력을 쌓아 온 4년, 사측은 돌연 말을 바꿨다. 누가 무단협 사태를 초래했는가, 누가 화합의 틀을 깨고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느냐”고 밝혔다.

2011년 입사한 기자들은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다. 이제 행동에 나서자”며 “공정 방송을 훼손하는 세력을 도려내자”고 밝혔다. 2010년 입사한 기자들은 “사측은 임명동의제 무효화를 위해 노동자의 기본 권리와 자주적인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단체협약을 볼모로 잡는 만행을 자행했다”며 “지금의 무단협을 방치한다면 사측은 전에 겪어보지 못한 싸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2년 입사한 기자들은 “사상 초유의 무단협 사태는 노조 파괴행위”라며 “SBS 기자로서 공정방송을 논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얘기하는 기사를 쓴다는 것이 한 없이 부끄럽다”고 했다. 2003년 입사한 11기 기자들도 “우리는 후배들에게 (2017년 임명동의제 도입 전) 그 때 그 상처를 남겨주고 싶지 않다. 조용히 묵묵히 있다고, 분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임명동의제 폐기 겁박을 당장 멈추라”고 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조합원들에게 “되찾자 단체협약”이라 적힌 사원증 케이스를 차고, 본교섭 전날인 26일엔 언론노조 SBS본부 바람막이를 입고 출근할 것을 요청했다. SBS본부 특보 갈무리
▲언론노조 SBS본부는 조합원들에게 “되찾자 단체협약”이라 적힌 사원증 케이스를 차고, 본교섭 전날인 26일엔 언론노조 SBS본부 바람막이를 입고 출근할 것을 요청했다. SBS본부 특보 갈무리

SBS 보도본부 소속 기자 185명(희망퇴직 예정자 제외) 가운데 89명이 성명에 참가한 가운데 SBS 보도본부 데스크 일부도 기수에 따라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25일 조합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대주주와 경영진은 회사 가장 높은 층에 앉아 바닥부터 울리는 구성원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며 “언제나 그랬듯 우리를 SBS의 ‘주체’가 아닌 ‘부품’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정 본부장은 “우리가 뭉치는 만큼, 행동하는 만큼 바꿀 수 있다”며 조합원의 동참을 호소했다. 정 본부장은 조합원들에게 “되찾자 단체협약”이라 적힌 사원증 케이스를 차고, 본교섭 전날인 26일엔 언론노조 SBS본부 로고가 박힌 바람막이를 입고 출근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 사측은 무단협 사태 규탄 움직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에 답변하지 않았다. SBS 경영위원회는 무단협 사태 이후 지난 8일 공지문을 통해 “이런 제도(임명동의제)가 존속한다면 언제든지 소모적 논쟁이 반복될 수 있고 회사 미래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노조의 입장을 지지하든 회사 입장을 지지하든 직원 개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자신들이 한 행위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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